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espiratory Syncytial Virus, 이하 RSV) 백신이 첫 등장을 앞두면서 백신 명가로 알려진 글로벌 대기업들간에 새로운 경쟁구도가 예고되고 있다.
이전부터 RSV는 감염병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백신 필요성을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 상용화된 제품이 없었다는 점에서 임상 현장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상황.
GSK와 화이자가 올해 상반기 미국 식품의약국 허가를 받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사노피와 아스트라제네카도 장기지속형 항체 니르세비맙(제품명 베이포터스)에 대해 유럽 의약품청(EMA) 허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올해부터 본격적인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영유아 RSV 언젠가는 걸린다…임상현장 미충족 수요 높아"
RSV는 전염성 바이러스로 감염시 폐와 호흡에 영향을 미치며 주로 어린 유아나 특정 만성 질환이 있는 경우, 노인에게 잠재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 질환이다.
RSV 기관지염은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으로 영아 입원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며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호흡곤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이 높은 상황.
소아감염학회 최영준 총무이사(고대안암 소청과)는 "RSV는 생후 1~3살까지 50~60%가 걸리며 3살까지는 100%걸린다고 볼 정도로 발생률 자체가 매우 높다"며 "단순히 감기로 그치지 않기 때문에 보호자의 간병 등 사회적 비용에 따른 부담 역시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 RSV는 미국에서만 매년 약 210만 명의 외래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5만 8000건의 입원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RSV는 매년 약 10만2000명의 어린이가 사망하고 있는 상황. 이 중 약 절반은 생후 6개월 미만의 유아이며 대부분은 개발도상국으로 알려져 있다.
최 총무이사는 "소아 RSV는 전통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특정 시기에 걸리는 아이들의 독감이라고 보면 된다"며 "발생률 즉, 모수가 크기 때문에 고위험군이나 중증도 발생도 같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8개 시·도 보건환경연구원 및 77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최근 4주(2023년 1월 15~2월 11일)간 RSV 검출률 현황을 살펴보면 2023년 3주차 5.5% ▲4주차 9.6% ▲5주차 11.3% ▲6주차 6% 등으로 4주 누적 8.2%의 검출률을 보였다.
이를 호흡기 바이러스 종류로 살펴봤을 때 ▲코로나 바이러스(16.9%) ▲인플루엔자 바이러스(11.4%) ▲코로나19 바이러스(10.7%)에 이은 4번째로 높은 수치였다.
이러한 RSV 특성에 때문에 질병관리청은 예방을 강조하기 위한 정보 전달과 고위험군 영유아의 빠른 진료와 검사를 강조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RSV 예방 백신은 없는 상황이다. 기존에 사용 가능했던 예방제는 RSV 시즌 동안 5회 투여되는 주사제로서 가장 고위험 영아에게 제한된 환경에서 사용하도록 권장됐으며 대부분의 영아는 대상이 되지 않았다.
최 총무이사는 "역사적으로 볼 때 RSV 백신은 1960~1070년대에 개발이 시도됐지만 접종 후 RSV가 더 심해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관찰되면서 개발 난이도가 높은 백신에 속했다"며 "기존에는 만성 폐질환 등 4개월 미만의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접종하는 수동 항체가 있었지만 한 달에 한 번씩 맞아야하고 반감기가 짧은 문제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RSV 백신 소아영역 기대감 최고치…"나온다면 권할 듯"
이처럼 소아영역에서 RSV가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예방백신의 등장은 시장성은 물론 임상적인 측면에서도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것은 사노피와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한 니르세비맙이다.
니르세비맙은 기존에 접종이 이뤄지던 예방 약물과 같은 장기지속형 항체로 엄밀히 따지면 백신은 아니다. 인체 내부에 수동 항체를 넣어줘서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기전은 앞서 존재했던 예방제와 같은 기전이지만 반감기를 획기적으로 늘려 효과를 높인 것.
즉, 니르세비맙은 전통적인 형태의 백신은 아니지만 예방 접종과 목표나 작동 원리는 비슷한 셈이다.
니르세비맙은 MELODY 3상 임상시험과 MEDLEY 2상/3상임상을 바탕으로 미숙아 또는 만성폐질환 등을 가진 영아는 물론 건강한 영아를 대상으로도 RSV 발생을 각각 70.1%, 74.5% 낮췄다.
이 같은 연구를 바탕으로 지난해 11월 니르세비맙은 유럽에서 허가를 취득했으며, 미국에서는 올해 3분기에 승인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노피는 올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화이자의 경우 전통적인 백신의 형태로 영유아 RSV 백신에 가장 앞서고 있는 상태다.
현재 화이자는 임산부에게 RSV 백신을 접종해 출생 후 영아를 RSV로부터 보호하는 백일해 예방접종과 같은 방식을 채택한 MATISSE 임상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
연구결과 생후 90일 동안 의사가 검진한 RSV로 인한 중증 하기도감염에 대한 백신 효능은 81.8%로 분석됐다. 6개월 추적기간 동안 실질적인 효능은 69.4%였다.
화이자는 비록 두 번째 1차 평가변수에 대한 통계적 성공 기준은 충족되지 않았지만 생후 90일까지 영아에서 의사가 검진한 하기도 감염에 대해 57.1%의 예방 효과를 보였다는 점에서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효능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서울 대학병원 감염내과 A교수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영유아를 대상으로 접종을 했을 때 개발이 어려웠던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산모를 대상으로 임상 디자인을 구상했을 것으로 본다"며 "RSV가 가장 취약한 경우가 신생아, 영아기이기 때문에 산모 접종을 통해서 면역을 제공해준다는 점은 좋은 옵션이라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또한 최 총무이사는 "예방률이 낮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RSV가 10만 명당 몇 명 걸리는 것이 아닌 대부분 걸리는 질환이라는 게 핵심"이라며 "가령 100명의 아이들이 걸린다면 감염을 절반 이상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임상적, 사회적 차원에서 긍정적이다"고 강조했다.
노인 RSV 백신 시각 교차…질병 관심 관건
그렇다면 RSV 예방백신의 또 다른 옵션인 노인의 경우는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현재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노인예방백신은 모두 6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영유아와 마찬가지로 기존에 백신이 존재하지 않았다.
개발 경쟁에서 가장 앞서고 있는 곳은 GSK로 AReSVi-006 3상임상 결과 60세 이상 성인에서 RSV 하기도감염에 대한 전반적인 효능이 82.6%로 높게 나타나면서 미국 식품의약국에 가장 빠르게 허가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GSK 엠마 윔슬리 CEO는 "RSV 백신을 50년 이상 기다려 왔던 만큼 이는 매우 중요한 과학적인 성과다"고 강조한 상황.
GSK의 RSV 고령자 백신 후보물질은 승인될 경우 RSV 감염으로 인한 하기도감염으로부터 60세 이상의 성인을 보호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백신이라는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화이자 역시 RENOIR의 결과를 기반으로 FDA에 성인 RSV 백신 허가신청을 한 상태다.
RENOIR 임상 중간분석결과에 따르면 2개 이상의 증상으로 정의된 RSV 관련 하기도감염에 대한 백신 효능은 66.7%, 3개 이상의 증상으로 정의된 중증 RSV 하기도감염에 대한 백신 효능은 85.7%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최근 모더나가 고령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 표적 mRNA 백신 mRNA-1345의 ConquerRSV 임상 3상에서 83.7%의 백신 효능을 확인하면서 RSV 시장 경쟁을 예고했다.
모더나는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상반기에 허가 신청을 추진할 계획이다. 5월에 심사 결과가 나오는 GSK와 화이자보다는 출시가 늦을 수 있지만 mRNA 플랫폼이라는 점을 앞세워 시장공략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노인 RSV의 경우 영유아와 비교해 시장성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부호가 붙어있다.
한양대병원 감염내과 김봉영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면역이 저하됐거나 고령층이라면 RSV로 인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신생아나 영유아만큼 주목받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질병 부담에 대한 평가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얼마만큼의 효과를 줄 수 있을지는 추가적인 조사나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결국 영유아 대비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RSV 백신은 출시되더라도 즉각적인 시장 확장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노인 RSV에 대해서는 관심 자체가 없었던 만큼 백신의 등장으로 관심이 높아진다면 실제 수요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 임상현장의 판단이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당장 RSV 백신 경쟁에서 앞서고 있는 것은 사노피&아스트라네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적으로 미충족 수요가 높은 신생아와 영아 분야에서 효과를 볼 수 있는 RSV 예방제에 이미 허가를 받았고(유럽). 허가받을 예정(미국)인 만큼 선제적인 출시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후에는 고령층과, 신생아를 대상으로 적응증을 가지고 있는 화이자가 두각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특히, 다른 경쟁 제약사들이 하나의 적응증만을 가지고 있으며 직접 경쟁자인 GSK가 임산부를 대상으로 한 RSV 백신 연구에서 안정성을 이유로 중단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특수성을 당분간 더 누릴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국내 백신 제조사 관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개념의 'RSV 백신' 타이틀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하는 분석도 많다"며 "향후 노인 RSV 백신에 대한 시각과 필요도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여부에 따라 전체적인 RSV 시장 경쟁 판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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