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기나긴 실습이 끝난 본과 4학년이다. 우리는 실습을 돌며 저마다 다른 경험과 기억을 갖게 되고 나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있다. 그건 의학적 지식도, 교수님의 호통도 아니다.
바로 첫 코드블루다.
"코드블루, 코드블루, 8xx호, 순환기내과, 성인"
당시 나는 내과 실습 중이었고 전공의 선생님에게 콧줄 삽입법을 교육받고 있었다. 코드블루가 울리고 전공의 선생님은 "따라오려면 얼른 따라와"라며 정말 빠른 속도로 뛰어갔다.
8xx호는 일반병동이었고 중환자실이 아니었다. 그건 의식이 온전한 환자가 갑자기 심장이 멈췄다는 걸 뜻했다. 10명이 훌쩍 넘는 의사와 간호사가 정말 부산하게 움직였다. 어느새 내가 따라가던 전공의 선생님은 가슴압박을 하고 있었고 더 이상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안색의 환자는 침상에 누운 채 내 앞을 지나 처치실로 옮겨졌다.
내 앞에는 심폐소생술을 하는 의사, 받는 환자 말고도 초점을 잃은 나의 눈동자 앞으로 계속해서 지나가는 간호사와 폐동맥색전증으로 보이는 CT 사진이 띄워진 모니터, 그리고 보호자인 환자의 어머니가 있었다. "하나 뿐인 자식이에요. 제발 살려주세요"라며 어머니는 주저 앉았다.
10분 쯤 되었을까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쯤 환자는 자발 순환이 회복되었고 집중 치료를 위해 더 큰 병원으로 전원되었다. 그 환자는 40대 여성, 심정지의 원인은 폐동맥색전증이었다.
나는 그 이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드나드는 여러 상황들을 보게 된다. 중환자실에서, 응급실에서, 일반병동에서.
그때마다 머리가 새하얘지는 느낌을 받았다. 붓으로 머릿속 도화지에 무언가를 그리려 하는데 물감이 투명해서 아무 것도 써지지 않는다고 하면 적당할 것 같다.
대부분의 의대생은 실습을 거치며 코드블루를 한 번 이상은 겪게 된다. 나는 전공의 선생님을 빠르게 뒤따라 갈때만 해도 코드블루는 '열심히 실습에 참여하는 의대생으로서 필요한 경험'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 앞에서 환자가 심폐소생술을 받는 모습을 본 이후 이건 의대생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필요했던 경험이었다.
의사는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특권을 갖는다. 그래서 의대생은 더더욱 그 경계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생각을 많이 해야되는 것 같다.
죽음의 문턱에서 환자와 함께한 건 의대생인 나에게 가장 강렬한 형태의 환자와의 교감이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환자의 죽음에 무덤덤하지 않으면 좋은 의사가 될 수 없다고. 급박한 상황에서 냉철한 판단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의도로 나온 말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무덤덤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아직도 그 코드블루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다. 삶과 죽음, 그 경계에 있는 파란색 도화지 위에 여전히 다른 색을 칠하지 못하는 나는 아직 새파랗게 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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