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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료판례칼럼

진료기록부에 ‘백옥주사’ 써도 될까?

오승준 변호사(BHSN 대표)
발행날짜: 2024-11-07 05:00:00

진료기록부에 ‘백옥주사’, ‘신델라주사’ 등 주사제의 명칭을 기재한 사례

  • 진료기록부를 잘못 작성했을 경우 수정할 수 있을까?

의료법 제22조 제1항은 의료인에게 환자에 대한 진료 내용을 정확히 기록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의료인은 환자의 주된 증상, 진단 및 치료 내용과 같은 의료행위와 관련된 사항과 소견을 상세히 기록하고, 반드시 서명을 해야 한다. 의사는 진료기록부 작성에 있어 일정한 재량권을 가지고, 꼭 언제까지 진료기록부를 작성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진료 목적에 맞추어 충분히 상세하게 기록이 이루어져야 한다.

진료기록 작성을 법률이 원하는 만큼 상세하게 하지 못하거나, 실수로 잘못된 기재를 하였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

#사례 1

의료법 제22조 제1항에 규정된 진료기록부의 상세기록 의무를 위반할 경우,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에 의거하여 자격정지 15일의 처분이 내려질 수 있고, 그와 별도로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의사 A는 환자에게 생리식염수, 판피콤프, 아스코르브산 등을 혼합한 주사제를 투여하고 진료기록부에 “백옥주사”라고 기재한 것을 비롯하여, ‘샤넬주사’, ‘알파워주사’, ‘숙취플러스주사’, ‘와인주사’, ‘마늘주사’, ‘ABC주사’, ‘신델라주사’와 같이 임의로 설정한 주사제 명칭만을 기재해 왔다. A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주사제는 피부과 등에서 널리 사용되는 것으로 그 구성성분과 배합비율 등이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고, 진료기록부에 환자의 인적사항, 증상, 진단내용, 치료내용, 진료일시를 모두 기재하였기 때문에 이런 기재 방식이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보건복지부는 의사 A와 같이 주사 명칭만 기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A에게 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을 예고하였다. A는 억울함을 호소하여 구제받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사 A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구제받지 못하였다. 서울행정법원은 “의사가 진료기록부를 작성하도록 하는 이유는 환자의 상태와 치료 경과를 정확히 기록하여 지속적인 치료에 활용하고, 다른 의료인에게도 정보를 제공해 환자가 적절한 의료를 받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면서(대법원 1998. 1. 23. 선고 97도2124 판결 참조), A가 주장하는 성분 및 배합비율이 의약계에서 통용되는 방식임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또한 단순한 주사제 명칭만으로는 어떤 약제가 어떻게 혼합되었는지 파악하기 어렵고,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경우 이전 치료 내용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A가 진료기록부에 상세 기록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하며, 이에 따라 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도 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서울행정법원 2021구합88784 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취소 사건, 1심에서 확정됨).

#사례 2

한의사 B는 몇 년간 특정 환자군에게 하루에 두 첩씩 한약을 처방해왔다. 이처럼 반복적인 처방이 습관이 되다 보니, 어느 날 한 환자에게 1첩만 처방했어야 할 상황을 실수로 2첩이라고 전자차트에 입력했다. 이후 이 환자와 갈등이 발생하며 B는 진료기록부 허위 기재 혐의를 받고 경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

의료법 제22조 제3항에 따르면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작성할 경우 자격정지 15일의 처분이 내려질 수 있다. 상황이 급해진 B는 차트를 수정해 1첩만 처방한 것으로 기록을 바꾼 후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갔다. 그러나 수사관은 두 가지 다른 기록을 가리키며, “하루 2첩을 처방한 차트와 1첩을 처방한 차트가 모두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는 허위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B는 실수였다고 해명했으나 이를 뒷받침할 논리를 찾지 못했다.

B는 반복적인 업무 속 실수였다고 주장했지만, 경찰과 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B는 벌금형과 함께 자격정지 처분을 받으며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시사점 및 법률적 조언

아마도 위 두 가지 사례를 보며 뜨끔한 의료인들이 많을 것이다. 둘 다 개원가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실수이지만, 대부분은 사건으로 이어지지 않아 무사히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실수는 항상 잠재적인 위험을 안고 있다. 만약 현장 실사나 현지 조사를 받게 되거나, 환자와의 분쟁이 발생해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게 된다면 문제가 커질 수 있는 상황들이다.

특히 병·의원 사건을 수행하다 보면, 차트를 대충 작성하는 의료인을 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중에는 “이래도 괜찮은가?” 싶을 정도로 무성의하게 작성된 기록도 있다. 일부 의료인은 병원의 기밀이라는 이유로 약품의 배합 비율을 기록하지 않기도 하는데, 이는 진료기록부의 본래 목적과 어긋나는 행동이다.

판례가 강조하는 것처럼, 진료기록부는 환자의 상태와 치료 경과를 정확히 기록하여 지속적인 치료에 활용하고, 다른 의료인들이 환자에 대한 정보를 참고해 적절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목적을 이해한다면, 진료기록부에 어느 정도로 상세한 기록이 필요한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하고 성의 있는 기록은 의료의 질을 높이고, 나아가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례 2에서 B의 행동이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의료법은 고의적인 허위 기재를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실수로 잘못 기재한 경우까지 엄하게 처벌하려는 의도는 없다. 따라서 B가 실제 사실에 맞게 차트를 수정한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의 B의 대처는 적절했다고 보기 어렵다. 수사 도중에 차트를 수정하는 행위는 누구에게나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자칫 증거를 조작하려는 시도로 비칠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순간에는 차트를 수정하기 전에 변호사와 상담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두 사례는 병원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실수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에게 면허 정지 처분을 내리는 것은 과도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러한 판례를 소개하게 되었다. 사실, A나 B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의료인들이 조사관을 잘 설득한다면 무혐의 처분을 받는 사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례들이 주는 교훈을 바탕으로, 의료인들이 한 번 더 스스로의 진료기록 기재 습관을 점검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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