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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지 않게

충남의대 1학년 김태훈
발행날짜: 2024-11-18 05:00:00

충남대학교 본과 1학년 김태훈
투비닥터 부대표

출근 시간에 4호선 하행선 지하철을 타 본 적이 있는가? 상계, 노원, 수유, 미아, 길음에서부터 밀려오는 통근자들과 함께 섞여들어, 그들이 대부분 내리는 2호선 환승역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 겪는 숨 막히는 동행은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더군다나 길음역에서부터 동대문역까지의 4~5 정거장 동안 출입문이 열리는 방향은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으로 계속 번갈아 가며 바뀐다. 그 중간역에 내릴 수 있을지는 사람 사이를 지나다닐 수 있는 유연성과 양해를 구하는 목소리의 호소력에 달려 있다.

당신의 종착지가 2호선에 있다면 군중과의 불편한 동행은 연장된다. 한 정거장, 두 정거장 지나칠 때마다 그날의 동행자들이 줄어드는 모습에 조금씩 숨통이 트인다. 운이 없는 날에는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앉지도 못한 채 아침부터 불쌍한 다리를 혹사한다.

4호선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나의 불편함과 고통을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자. 서울시의 교통 체계를 바꾸기는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왼쪽과 오른쪽이 번갈아 열리고 닫히는 출입문의 방향을 바꿀 수도 없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에게 이 상황을 알려보는 건 어떨까?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보며 개인 수준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분명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자신의 몸으로 불편함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과 이를 간접적으로 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끼리의 느슨한 공감은 가능하겠으나, 역시 충분한 이해는 어렵다.

나는 김포골드라인 이용자들의 고통을 잘 모르고, 그들도 4호선의 고통을 잘 모른다. 그렇기에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알리고, 이러한 문제를 모르는 이들과의 소통해야 한다. 문제들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왜 그것이 문제이며, 왜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쌓아야 한다. 나와 똑같은, 혹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이들과 함께하며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우리는 한계를 마주한다. 이 거대한 문제가 하루아침에 바뀔 리는 만무하다. 거대한 문제의 크기에 대비되는 작은 개인은 지속적으로 무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바뀌지도 않을 문제를 붙들고 나의 나약함을 계속해서 느낄 바에, 차라리 출근 시간에 4호선을 타지 않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일까?

의학도로서 의대생들이 직면하고 있는 의료계 내의 문제점들이나 현 의정 갈등 상황도 그러하다. 학생 한 명이 할 수 있는 활동의 범위는 제한적이다. 바이탈과 기피 현상, 환자들의 서울 편중 현상, 높아지는 법적 리스크 등, 우리는 꼬일 대로 꼬여버린 상황에 처해있다.

지난 상반기에 나는 나름대로 현 상황을 의대생의 입장에서 설명하기 위해 부대표를 맡고 있는 젊은 의사 비영리단체 투비닥터 내의 활동들에 참여했다. 관련 주제들을 다룬 단행본 제작이나 이주영 의원님을 모시고 의대생과 전공의들을 위한 토크 콘서트를 기획해보기도 했다.

책을 쓰고, 행사를 기획하며 느낀 보람이라는 밀물이 빠진 후 나에게 남은 건 허탈감이었다. 이런 활동을 한다고 무엇이 바뀌었을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명쾌한 결과물을 얻지 못했던 것 같다. 여기서도 결국 한국 의료계를 떠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일까?

시간이 지나고 학생에 불과한 내가 방대한 의료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활동하는 것이 찻잔 속의 태풍은 아닐지, 그러한 활동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가 거대한 영향력을 끼치지 않았을 수는 있어도,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갔던 동료들, 그리고 그 결과물을 봐주었던 적지 않은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생각을 하게 만들었지 않았을까?

중요한 건 그 생각이 연속성 있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에게 남은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남을 것'에 집중하니 끊임없이 피어오르던 허탈감이 점점 줄어들었다. 앞으로 우리는 스스로의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된다. 동료들과 이어지고, 우리의 공동체가 어떤 방향성으로 가는 것이 옳을 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고 상생할 수 있는 젊은 의사들의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면, 크나큰 문제 상황 앞에서 느껴지는 개인의 무력감도 덜어질 수 있다. 행사 한 번, 단행본 한 권에서 끝나지 않고, 서로가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동료들과의 협력을 통해 혼자서는 막막하던 일들이 조금씩 수월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함께 하는 고민이 꼭 정책적인 주제일 필요는 없다. 창업에 관련된 것이든, 본인의 연구에 관련된 것이든,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 젊은 의사들 사이의, 더 나아가 젊은 의사와 기성 의사들과의 연결이 필요하다.

그게 가능한 의사들의 성장과 혁신, 연결의 생태계를 투비닥터와 함께 만들어가고자 한다. 의사들은 의료 분야 내의 핵심 주체로서 의료 시스템을 좋은 방향성으로 이끌어 갈 의무가 있다. 당사자로서 다양한 방법을 물색하고 더 나은 환경을 향해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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