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성 위암은 오랜 기간 임상현장에서 신약 불모지로 분류됐다. 그동안 위암 영역에서 새로운 치료제 개발을 위해 다양한 임상 연구가 진행됐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종양 특성상의 이질성(heterogeneity)으로 인해 치료제 효능 자체를 입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면역항암제와 더불어 표적치료제까지 도입되면서 임상현장 치료전략에 변화를 불러왔다.
위암 치료 패러다임이 이제 항암제 활용이 없어서는 안 될 위치에 놓인 것이다.
문제는 급여와 동반진단 등 국내 건강보험 제도상의 걸림돌로 인해 아직까지 임상현장에서 이들 치료제를 활용하기에는 한계도 여전하다. 최근 이를 모를 리 없는 제약사들은 문제 해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치료 지형도 바뀐 위암 치료
13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글로벌 제약사들이 보유한 치료제들이 전이성 위암 분야에 국내 허가를 따내며 임상현장에서 활용이 가능해졌다.
대표적인 치료제를 꼽는다면 단연 한국MSD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다.
키트루다는 전이성 HER2 양성 위암 1차 치료로 허가를 받은 데 이어 올해 3월 HER2 음성 위암에까지 적응증을 확대한 바 있다. 이로써 키트루다는 HER2 양성과 음성 위암 모두에 허가를 따낸 최초 면역항암제 옵션으로 임상현장에 자리했다.
전이성 HER2 양성 위암의 경우 2023년 유럽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회의(ESMO Congress 2023)에서 발표된 'KEYNOTE-811'이 바탕이 됐다.
구체적으로 중앙 추적 관찰기간 28.4개월 후, 키트루다·트라스트주맙 및 항암화학요법 병용요법군(10.0개월)은 트라스투주맙 및 항암화학요법만 투여한 환자군(8.1개월)에 비해 질병 진행 또는 사망위험을 28% 감소시켜, 진행성 HER2 양성위암전체환자군(ITT)에서 PFS를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개선했다.
특히 KEYNOTE-811 연구의 경우 연세암병원 라선영 교수(종양내과)가 주도한 임상이 바탕이 돼 글로벌 임상으로 확대된 케이스다.
여기에 키트루다는 HER2 음성 위암 1차 치료에서 PD-L1 발현율과 상관없이 항암화학요법 대비 임상적 유용성을 입증해 올해 3월 허가를 받았다.
허가 기반이 된 KEYNOTE-859 임상 결과, 중앙추적 관찰기간 31개월 시점에서 키트루다·항암화학요법 병용요법의 전체생존기간(OS) 중앙값은 12.9개월로, 항암화학요법 단독요법의 11.5개월 대비 높았으며, 사망 위험을 22% 감소시켰다.
키트루다가 면역항암제로서 위암 치료패더라임 변화를 불러왔다면 표적치료제로는 아스텔라스 빌로이(졸베툭시맙)를 꼽을 수 있다.
빌로이는 전세계 최초로 승인된 클라우딘 18.2 표적 치료제로, 위에서 발현 및 노출되는 단백질인 클라우딘 18.2와 결합해 작용하는 면역글로불린 단일클론항체다.
국내 허가를 통해 빌로이는 클라우딘 18.2 양성이면서 HER2 음성의 절제 불가능한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위선암 또는 위식도 접합부 선암인 환자에 대한 1차 치료로서 플루오로피리미딘계 및 백금 기반 화학요법과의 병용요법으로 사용이 가능해졌다.
빌로이의 적응증 허가는 클라우딘18.2 양성, HER2 음성인 절제 불가능한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위선암 또는 위식도 접합부 선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3상 시험인 SPOTLIGHT와 GLOW 연구를 기반으로 이뤄졌다.
SPOTLIGHT 연구 결과, 빌로이 투약군의 무진행생존기간(PFS) 중앙값은 10.61개월로 대조군 8.67개월 대비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을 약 25% 낮췄다. 2차 평가변수인 OS 중앙값은 빌로이 투약군이 18.23개월, 위약군 15.54개월로 빌로이 투약군에서 유의하게 증가했다.
라선영 대한암학회 이사장(연세암병원 종양내과)은 "국내 4기 위암 유병 환자가 1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첫 클라우딘18.2 표적 치료제가 허가돼 제한적이었던 전이성 위암 치료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며 "치료 옵션 확대의 의미와 더불어 생존율이 답보 상태에 놓인 전이성 위암 치료에 있어 기존 화학요법 대비 유의미한 mOS 개선으로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을 약 25% 낮춘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라고 강조했다.
제도 발목 잡힌 치료제들
키트루다 적응증 확대와 빌로이 도입으로 국내 전이성 위암 치료전략도 변화 됐지만, 제도적 걸림돌로 인해 임상현장에서 제대로 쓰일 수 없는 상황.
키트루다의 경우 급여 첫 관문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 문턱을 좀처럼 넘지 못하고 있다. 17개에 달하는 적응증에 급여를 신청, 적지 않은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될 수 있다는 이유로 암질심에서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태다.
지난 8월 기준, 키트루다는 총 17개 암종에 33개 적응증 국내 허가를 받는 동시에 암질심에 총 17개 적응증에 대해 보험급여를 신청한 바 있다. 지난해 13개 적응증에 대해 급여를 신청한 후 올해 ▲MSI-H 위암 ▲MSI-H 담도암 ▲HER2 양성 위암 ▲HER2 음성 위암까지 4개 적응증을 추가한 상황이다.
또한 한국MSD는 지난 10월 위암을 포함한 17개 적응증의 급여 기준 확대를 위한 새로운 재정분담안을 제출하며 올해 내 급여기준 설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참고로 심평원은 오는 18일 올해 마지막 암질심이 개최될 예정.
다만, 아직까지 위암 적응증에 대해서는 제대로된 급여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올해 암질심을 통과하지 못하면, 키트루다의 급여 신청 건은 햇수로 3년째에 접어 들게 됩니다.
한국MSD 관계자는 "급여가 인정되는 최신 치료제가 없는 위암, 삼중음성 유방암, 두경부암 등의 환자들은 임상적 유용성을 충분히 입증한 키트루다의 치료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며 "이번에 제출한 재정분담안에는 올해 초 추가로 급여 확대를 신청한 위암 적응증도 포함돼 있다. 반드시 마지막 암질심에 논의됐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빌로이도 키트루다와 내용은 다르지만 사정은 비슷하다. 치료제를 활용하기 위해선 동반진단이 필수인데 관련 내용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
심평원이 클라우딘18.2를 진단하는 로슈진단의 동반진단 검사방법인 면역조직화학검사(IHC)에 대해 급여 검토과정에서 해당 검사방법을 신의료기술평가 대상으로 볼 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신의기술평가를 받아야 한다면 이를 검토하는 기간 동안 급여 적용과는 별개로 빌로이도 임상현장에서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셈이다.
라선영 이사장은 "빌로이의 동반진단 검사방법이 신의료기술평가 대상으로 결정되면, 치료제의 국내 도입이 길게 1년까지 지연될 수 있다. 표적항암제와 동반진단은 필연적으로 함께 가야 하지만, 현행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가고 있다. 학회 차원에서 정책개선을 강하게 촉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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