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이 1년 5개월 만에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의대생들이 복귀를 공식화하고, 전공의들도 기존 7대 요구안에서 완화된 3대 요구안을 내놓으면서 대화 재개를 위한 환경이 조성되는 분위기다.
2024년 2월 시작된 의정 갈등은 의대 증원 정책에 대한 반발을 넘어, 제도 설계, 추진 방식, 행정 조치 등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며 초유의 상황으로 확산됐다. 의대 증원 이전부터 있었던 왜곡된 의료체계에 대한 의료계 불만과 지역·핵심 의료 붕괴 상황 역시 이런 갈등의 기폭제가 됐다.
이제 국회와 정부, 의료계가 본격적인 협의에 착수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21일 메디칼타임즈는 의과대학 교육부터 전공의 수련까지 큰 변화를 몰고 온 지난 17개월 간의 과정을 짚어봤다.
■의대 증원에 의대생·전공의 집단 이탈…투쟁 최고조
지난해 2월 6일 보건복지부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을 발표하며, 2025학년도 정원을 기존 3058명에서 2000명 늘린 총 5058명으로 증원하겠다고 밝혔다.
의대 증원은 2035년 예상되는 의사 부족분에 대비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됐지만, 구체적인 정원 배분 기준과 수련·교육 인프라 확보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즉각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전공의들 역시 연이어 사직서를 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사직 전공의는 단 1주일 만에 7000명을 넘어섰다. 전국 의대생들도 대대적인 휴학에 돌입하며, 전국 40여 개 의대의 학사 운영이 사실상 마비됐다.
이어 같은 해 3월 3일 여의도에서 의대생·전공의를 주축으로 개원의·봉직의·교수들이 참여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전국 16개 시도의사회와 직역의사회가 총동원됐고, 주최 측 추산 2만여 명이 운집했다.
같은 시기 전국 의대 교수진도 단체로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지금 상태에선 학생들에게 수업을 할 수 없다"며 진료 축소, 사직 검토 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일부 대학에선 사직서 제출이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론은 급격히 악화했다.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수련병원 진료가 사실상 마비된 상황에서, 교수들까지 사직한다면 교육은커녕 중증·응급 진료까지 멈출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면서다.
당시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집단이기주의에 의한 것이며 사명감 없이 환자들을 버리고 있다"는 여론이 팽배하던 시기였다. 의료계 투쟁 과정에서 일부 의사들이 국민 정서에 반하는 발언을 한 것 역시 이런 여론에 불을 지폈다.
6월에 접어들면서 주요 의대 교수들의 사직 논의가 조직적으로 확대됐다. 이윽고 주요 의대 교수협의회들이 수백여 명의 사직서 제출 의사를 연달아 전하면서 공백 우려가 커졌다.
이 시기 정부는 전공의를 대상으로 업무개시명령을 공식 발동하고, 명령 불이행 시 의료법에 따른 행정처분을 경고했다. 복지부는 수련병원에 미복귀 전공의 명단 제출을 요구했고, 검찰은 의료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개시했다. 하지만 이런 강제적 조치는 오히려 의정 갈등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6월 26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청문회가 의료계에 반격 기회를 제공했다. 정부 의대 증원 정책이 충분한 근거 없이 추진됐다는 사실이 공론화된 것.
실제 의대 실태조사와 교육 여건 평가에 대한 자료나, 2000명 증원 결정 과정에 대한 서류가 공개되지 않으면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역시 절차상의 문제를 인정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 여론도 "의사들의 문제 제기에 다소 설득력 있다"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청문회 이후 정부 비판 기류…계엄령으로 양상 대전환
이후 복지부는 7월 들어 행정명령을 보류하겠다며 강경 기조에서 선회했다. 업무개시명령은 유지하되, 사법 조치나 자격정지 같은 강제 행정은 자제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의료계 반발이 여전해 대화는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 국민의힘은 11월 여야 의정협의체를 출범하고 의료계 참여를 촉구하는 등 적극적인 러브콜에 나섰다. 하지만 이 협의체가 사전 협의 없이 조직됐고, 위원 구성으로 봤을 때 보여주기식에 불과하다는 판단에 의료계 참여가 불발됐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의정 갈등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든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였다. 2024년 12월 3일, 윤 대통령은 국가 위기 상황 대응을 이유로 비상계엄을 발동했고, 이에 국회는 계엄 해제 결의안과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동시에 처리했다. 여야를 막론한 반발에 탄핵안은 신속히 가결됐고, 이후 정치권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에 돌입했다.
계엄령 선포 이후 윤 전 대통령은 내란 예비음모 및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1월 말 신병이 확보됐다.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탄핵을 인용해 파면을 확정했다.
그동안 의정 갈등은 정치적 격랑에 가려져 소강상태에 빠졌다. 국정의 초점이 권력 남용 여부와 위헌 논란으로 이동하면서, 의대 증원 문제와 의료계와의 갈등 해소는 국회 논의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이 시기 의료계는 내부에서도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대화 복원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정권 교체로 대화 기조 본격화…의료계 의견 수용 관건
이후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공식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대화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의료계와의 신뢰 회복을 위해 충분한 대화와 합리적 타협을 통해 의료개혁의 사회적 합의를 이루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육 당국에도 의대생 복귀를 위한 후속 조치를 지시했으며, 정부 차원의 의료개혁 공론화 및 전문가 참여 구조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복지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 역시 의정 갈등 해소를 위한 대화 필요성과, 이 과정에서 의료계 의견을 수용하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의료계 역시 이런 정부 변화를 진정성 있는 대화 의지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실제 전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는 국회 및 대한의사협회와 함께 의대생 전원 복귀 선언 공동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어 대한전공의협의회 역시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고, 기존 7대 요구안에서 완화된 ▲필수의료 정책 재검토를 위한 협의체 구성 ▲수련환경 개선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 등 3대 요구안만을 남기기로 의결했다. 이는 정부와의 실질적 협상을 염두에 둔 결정으로, 사실상 갈등 해소를 위한 실마리를 제공한 것.
이제 공이 정부로 넘어간 만큼, 복지부 장관 임명 이후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의료계 요구가 얼마나 구체화하고 어디까지 수용되느냐가 의정 갈등의 향방을 가를 전망이다.
의협은 이번 사태를 단순히 의정 갈등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국민 건강권과 직결된 구조적 위기로 인식해달라는 입장이다. 의대생 교육 정상화는 단순히 학업 복귀 문제가 아니라, 보건의료 인력 양성과 직결되는 구조적 과제라는 것.
대한의사협회 김성근 대변인은 "의대생이 안정적인 교육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책무다.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우리나라 의학교육 체계 전체가 심각한 손상을 입을 수 있다"며 "학생들과 전공의들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남은 문제는 다양한 대화 채널을 통해 풀어나갈 수 있다"고 촉구했다.
이어 "대학은 교육과정을 새로 짜야 하고, 정부도 정책적 입장을 전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미래를 위해 현명한 결정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며 "의사는 결코 국민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의사 양성 역시 단절돼선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의료를 위해 모든 국민이 관심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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