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깨달음에는 그 시기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교육과정으로 예를 들자면, 인수분해는 선행 학습으로는 잘 와닿지 않지만 14살쯤 정규 수업을 통해 접할 때 이해가 잘 된다.
인간관계에서도, 불가피한 갈등의 순간이 찾아올 때 혼자 판단하기보다 대화를 해보아야 한다는 깨달음은 부딪힘을 감수하고 대화해 본 이후에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깨달음은 텍스트로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얻기까지의 과정과 경험이 있어야만 다가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은 일이 하나 있었다.
대학교 합격증서를 받은 날, 나는 이제야말로 '어른'이라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더 이상 어른들의 잔소리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은 것을 온전히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지금껏 동경해 왔던 순간이 내 눈앞까지 성큼 다가왔고 해방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학생이라는 정체성이 사라지진 않았다. 패기와 무모함, 근거 없는 용기를 지닌 고등학생의 내 모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내가 학생과 선생 사이, 그 오묘한 경계선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과외를 하면서부터 실감하게 되었다.
잘 푼 문제라면 잘 가르치리라 믿고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공부를 잘하는 것과 설명을 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지식의 온전한 전달은 요원한 일이었고, 수업할 때 쉽게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만나면 답답했다. '나는 이렇게 안 했는데'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생이었던 내가, 어느새 '이래서 요즘 애들은…'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아이들이 처음 배우는 개념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해도 그러려니 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말과 생각을 조심하게 되었다. 나의 말 한마디, 태도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점점 학생의 눈보다 선생의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 무렵, 이런 나의 변화를 알아차리게 해 준 책을 읽었다. 육상부 학생과 체육 선생님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였다. 선생님은 요즘 아이들은 금방 포기하고, 힘든 훈련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며 질려 있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성적만 강요해 자신들의 힘듦에는 관심도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삐걱대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런데, 나는 그 선생님에게서도, 그리고 학생에게서도 모두 내 모습이 보인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이전까지는 학생이었기에, 이런 부류의 글을 보면 어른들이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꼰대라며 이름 붙이고 반발하는 학생들에게만 몰입하게 되었다. 사실 그때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과외를 하다 보니 학생들에게 '조금만 더 해보자'라며 채근하고 성적이 안 나오면 속상해 한마디 하던 나의 모습이 이야기 속의 체육 선생님과 겹쳐 보였다. 이중적인 내 모습이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자연스러웠다. 결국, 모두 겪어 보고서야 두 입장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압박감도, 어른들의 답답함도 모두 진짜였다.
우리는 종종 서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자신이 옳다며 대화 자체를 차단하곤 한다. 학생들은 '꼰대'라며 귀를 막고, 어른들은 '요즘 애들'이라며 벽을 세운다. 그렇게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에 몰두하다 대화는 하지 못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두 입장 모두 옳다. 어쩌면 뻔한 결론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그 뻔한 대답이 정답임을 이제야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서로가 자신의 입장을 말하느라 바빴던 시간 속에서, 나는 이제까지 내가 맞다고 믿는 순간에서 눈을 감고 귀를 막아버렸던 것 같다.
결국 중요한 건 함께 대화하고 이해하는 일이다. 미묘한 경계선 위에서 두 입장을 모두 겪어 보고서야,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대학생이라는 경계선에 서 있다는 건, 한쪽의 목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를 오가며 균형을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학생일 때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흘려듣기 일쑤였고, 어른들의 시선에선 아이들의 투정이 철없어 보이기 쉽다. 하지만 그 사이에 서 본 나는, 두 목소리 모두 진실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의 내가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지금의 이 감각을 잊지 않고 싶다. 서둘러 어느 한쪽에 서기보다 그 경계선 위에서 양쪽을 바라보려 한다. 이해는 그곳에서 시작되니까. 그래서 나는 대학생이라는 이 경계선, 지금의 나를 천천히 음미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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