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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자로'가 바꾼 릴리 R&D 지도 '질병 차단·GLP 확장'

발행날짜: 2026-06-04 05:30:00

특허 절벽 선제 방어? 한미·녹십자 잇따라 '조 단위' 픽업
단순 물질 도입 넘어 '지분 인수+장기 CMO' 결합 새 패러다임

[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글로벌 비만·당뇨 치료제 시장의 절대강자로 떠오른 일라이 릴리(Eli Lilly)가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자산을 연이어 사들이며 영토 확장에 나서고 있다.

'마운자로(Mounjaro)'와 '젭바운드(Zepbound)'의 폭발적인 글로벌 흥행으로 확보한 막대한 현금(실탄)을 바탕으로, 한국 바이오텍의 지속형 플랫폼과 백신 자산을 차세대 글로벌 성장 동력으로 낙점한 모습이다.

특히 최근 일주일 새 단행된 계약은 글로벌 빅파마의 R&D 드라이브가 단순한 대형 M&A를 넘어 '질병의 원천 차단'과 'GLP 기반 모달리티 확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일라이 릴리는 최근 GC녹십자에 이어 한미약품과 계약을 발표하며 해당 자산들을 성장 동력으로 낙점한 모습이다.

'비만 성공방정식' 희귀질환에 심는다

4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일라이 릴리는 한미약품이 개발 중인 단장증후군(SBS) 치료제 후보물질 '소네페글루타이드(HM15912)'에 대해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 독점적 개발 및 상업화 권리를 인수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의 총 규모는 선급금 7500만 달러(약 1000억원)를 포함해 최대 12억 6000만 달러(한화 약 1조 7000억~1조 8000억원)에 달하는 메가 딜이다.

임상 2상 단계에 있는 소네페글루타이드는 한미약품의 독자적인 지속형 바이오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가 적용된 GLP-2(Glucagon-like peptide-2) 유사체다. 장 세포 성장 촉진 효과가 뛰어나 희귀 질환인 단장증후군 환자의 영양분 흡수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전을 가진다.

업계에서는 릴리의 이번 도입을 두고 'GLP 시장의 지배력 수평 전개'로 해석하고 있다. GLP-1 유사체 기반의 비만·당뇨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릴리가 이미 검증된 인크레틴 호르몬 유사체 설계 능력을 바탕으로 소화기계 희귀질환 분야까지 세력을 넓히겠다는 의도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바이오텍 대표는 "릴리는 마운자로를 통해 GLP 기반 약물의 대량 생산과 임상 개발, 규제 기관 대응 노하우를 세계에서 가장 잘 축적한 기업"이라며 "한미약품의 기술력과 릴리의 GLP 상업화 역량이 결합될 경우 가장 확실한 시장 선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이번 딜이 성사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미약품 딜에 앞서 불과 일주일 전 발표된 GC녹십자의 미국 관계사 '큐레보(Curevo)' 인수 건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M&A 모범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릴리는 총액 최대 15억 달러(약 2조 3000억원)를 투입해 큐레보 지분 전량과 차세대 대상포진 백신 후보물질 '아메조스바테인(amezosvatein, CRV-101)'을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큐레보 지분 20.3%를 보유했던 GC녹십자는 거래 종결과 함께 약 46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하며 투자금 대비 17배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

시장이 주목하는 부분은 단순한 지분 매각 대금 규모가 아닌 '계약의 구조'다.

GC녹십자는 릴리와의 계약 승계를 통해 향후 상업화 성공에 따른 추가 마일스톤과 매출 비례 로열티를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결정적으로 '글로벌 상업화 물량 일부에 대한 위탁생산(CMO) 권리'를 따냈다.

국내 제약사가 물질 발굴 후 미국 현지 자회사(스핀오프)를 통해 글로벌 임상을 키우고, 이를 빅파마에 매각하면서 '단기 현금 확보'와 '장기 생산 파트너십'을 동시에 쥐게 된 최초의 모델이다.

큐레보가 개발한 아메조스바테인은 임상 2상에서 글로벌 독점 품목인 GSK '싱그릭스'와의 헤드 투 헤드(Head-to-Head) 비교를 통해 효능은 대등하면서도 부작용(내약성)은 현저히 낮춘 데이터를 뽑아내며 릴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릴리는 이 물질을 내년(2027년) 즉시 임상 3상에 진입시킨다는 계획이다.

일라이 릴리는 최근 마운자로의 성공을 밑바탕 삼아 라이선스 계약 및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릴리 연구소의 최고 과학 및 제품 책임자 겸 사장인 다니엘 M. 스코브론스키(Daniel M. Skovronsky) 박사는 이번 백신 기업 인수의 본질에 대해 예방의학적 관점의 R&D 드라이브임을 명확히 했다.

그는 "수십 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흔한 감염이 신경 질환, 암, 불임 등 수년 후에 나타날 수 있는 질병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항생제 내성이 세균 감염 치료 능력을 약화시키면서 백신 접종이 점점 더 유일한 예방책이 되고 있다. 기업의 플랫폼과 연구진을 릴리의 글로벌 규모와 결합함으로써 이러한 흐름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국 AI·오픈이노베이션 흡수, 한국 플랫폼 낙점

최근 2~3달간 이어진 릴리의 글로벌 R&D 행보를 복기해 보면 철저하게 계산된 포트폴리오 다각화 전략이 읽힌다.

릴리는 올해 상반기에만 홍콩 인실리코 메디슨(AI 기반 신약 발굴, 27.5억 달러), 중국 하이스코 제약(초기 다중 타깃 공동 연구, 30.5억 달러) 등 중화권 바이오텍의 빠른 초기 R&D 인프라를 흡수하는 동시에, 스웨덴 카무루스(아밀린 수용체 기술)와 한국의 한미약품·녹십자를 통해 임상 단계가 진척된 확실한 '플랫폼 및 모달리티'를 저점 매수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특히 만성 감염원이 추후 치매, 뇌졸중, 암 등 중증 질환의 트리거가 된다는 점에 주목해 백신 기업 3곳(큐레보, 리마텍, 백신컴퍼니)을 동시 인수하며 만성 질환의 씨앗을 미리 막는 '상류(Upstream) 차단' 예방의학 기조를 뚜렷이 했다.

이 같은 빅파마의 대전환 속에서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은 단순한 변방의 후보물질 공급처가 아닌, 글로벌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필수적인 '플랫폼 기지'로 격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릴리의 거침없는 행보는 과거 화이자나 머크 등 선 세대 빅파마들이 겪었던 특허 절벽(Patent Cliff)을 현금이 가장 풍족할 때 선제적으로 방어하겠다는 의지"라며 "글로벌 임상 데이터와 독보적인 플랫폼 기술을 입증해 낸 국내 기업들에게는 향후 빅파마의 오픈 이노베이션 러브콜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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