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과 4학년 마지막 실습을 위해 서울로 이사 온 지 이 주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벽 한쪽과 천장의 경계에 새로 생긴 물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까치발을 하고 손으로 꾹꾹 촉진하자 습하고 들뜬 벽지가 푹푹 눌렸다. 불길한 예감이 스쳐 곧바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집주인은 바로 수리 기사를 부르겠다고 했다. 집에 늦게 돌아오자 젖은 벽지는 바삭하게 말라 있었다. 별일 아니었어,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러나 이튿날 새벽에 나를 깨운 건 톡, 톡 창문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였다. 전등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서 바닥에 고여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닦을 생각도 못 하고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았다. 이틀 만에 다시 우리 집을 방문한 수리 기사는 문제의 윗집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종종 갸우뚱했는데 그때마다 인터넷에서 본 누수는 쉽게 안 잡힌다느니, 벽을 다 뜯어내서야 겨우 잡았다느니 하는 글들이 떠올라서 가슴을 졸였다.
"사장님 어디서 새는 거예요?"
"잘 모르겠네…분명 여기가 새서 정말 뜯어고쳤거든요?"
사장님이 발로 탁탁 치는 곳에는 바닥을 뜯고 시멘트로 메꾼 자국이 있었고,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 위에 물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고조되는 불안에 나는 질문을 쏟아냈다.
"이번에 수리하면 고쳐지는 거예요? 수리해도 안 잡힐 수도 있어요?"
"아뇨 뭐…. 한번 볼게요, 봐야죠"
미적지근한 대답을 하고 사라지는 수리 기사 뒤로 남아 있는 무수한 질문을 삼키느라 속이 메슥거렸다. 답답한 마음에 벽지를 다시 촉진해 본다. 더 축축해지고 이제는 옆으로 번지기까지 한다. 벽을 이번에는 퉁퉁 타진해 본다. 그렇게 해도 이 콘크리트 안으로 뭐가 지나가는지, 어디서 뭐가 터져서 새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 이 건물에 조영제를 주입해서 통째로 CT에 넣어보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그런다고 보일지도, 보인다고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제 얼룩은 더 빠른 속도로 번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 등을 타고 내려오는 기분이 들어, 나는 외래 진료실에서도 허리를 곧게 펴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신환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난소 문제로 타 병원에서 결장절제술을 한 후로 화장실에 너무 자주 가고 싶은 것이 걱정되어서 찾아온 환자였다. 교수님은 왜 그런 증상이 있는 건지, 지금 먹고 있는 약은 어떤 건지, 약은 어떨 때 먹으면 되는 건지 찬찬히 설명해 주셨고, 환자는 자신이 먹던 약과 같은 약 하나만 처방받아 가면서도 환한 표정으로 연거푸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면서 진료실을 나갔다.
이어지는 따뜻한 분위기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을 때쯤, 교수님이 왜 온 건지 의아해하시면서 다음 환자를 불렀다. 문이 왈칵 열리고 한 여자가 뛰어들어와서 바로 침대 위에 엎어졌다. 뒤따라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쫓아 들어왔다. 환자는 지난달 교수님께 치루 수술을 받은 환자였는데 재발해서 외래를 앞당겨서 방문한 것이다.
"아니, 왜 다시 새는 거예요? 그때 완전히 없앤 게 아니에요?"
"그때는 깨끗하게 다 수술했습니다"
환자의 남편은 답을 스스로 정해서 들어온 성난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러니까, 수술이 실패했다는 거잖아요. 그렇잖아요"
날 선 남편의 말에 교수님도 더 참지 않으셨다. 그렇게 환자를 보내고 냉랭한 진료실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간호사 선생님이 문을 조심히 열었다.
"교수님 진료 의뢰서 달라고 하셔서…. 다른 병원으로 가시겠다고…"
나는 성난 환자의 남편과 다정한 교수님의 입장이 모두 이해되는 모순적인 마음에 빠졌다. 나도 곧,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기대와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환자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 몸의 일이 된다면 나도 여지없이 그들이 될 것이다. 나는 다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 수리했는데 다시 새는 것이 이해가 안 되고, 그 수리 기사가 제대로 하는 건지 믿음이 잘 가지 않으며, 이번에도 재발할까 봐 걱정되고 힘들다고 호소하고 싶었다.
"그분이 그 집을 지은 분이라서 제일 잘 아는 분이세요. 사실 다른 사람도 불러봤는데, 구조를 잘 몰라서 자기가 손대기 어렵다고 하셔서… 이번 한 번만 믿어 보는 게 어때요?"
할 말이 없었다. 그 집을 지은 사람도, 그 구조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물이 새는 이유를 단번에 잡아내지 못했는데 인간이 만들지도 않은 사람의 몸은 어떨까. 어떤 문제는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최선을 다해도 다시 새고, 다시 곪는다. 의사가, 혹은 수리 기사가 건네는 "완전히 고쳤습니다"라는 말은 앞으로 영원히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신이 내려준 보증서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내가 가진 지식과 기술을 동원해 당신의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그리고 다시 무너지더라도 기꺼이 다시 고쳐내겠다는 선언이다.
그 선언은 언제나 부정당할 수 있고 그때 환자 의사 관계는 위기를 맞는다. 그때 다시 곪았을 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원인을 찾아내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고치려는 의사, 그리고 그 목소리를 믿어주는 환자가 모두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같은 수리 기사를 기다리기로 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집주인의 말에 깊은 책임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공사를 거친 후로 물은 더 새지 않는다. 벽지까지 다시 발라 주시겠다고 해서 집에 돌아와 보자, 같은 색의 벽지가 없었던 탓인지 드레이프 같은 초록색의 벽지가 우습게 발라져 있었다. 그 벽을 바라보면서 그 부부를 생각한다. 그들이 '완벽한 수술'을 찾아 여러 병원을 전전하고 있지 않기를, 더 이상 새지 않는 일상을 이른 시일 내에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곧 의사가 될 나 역시, 나의 수고가 빈번히 무용으로 돌아가더라도 기꺼이 다시 초록 벽지를 덧대어 고쳐주는 끈질긴 의사가 될 수 있기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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