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 나에게 있어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개봉 소식을 접한 이후부터 영화관에 들어서기까지 가장 긴 시간이 걸린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한동안 일정도 바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매를 하기까지 이렇게 오래 망설이게 만든 영화는 처음이었다.
필름 속에 담겨있을, 가늠할 수 없는 슬픔과 그 속에 녹아 있는 한 사람의 생애를 관객으로서 손쉽게 관람해도 괜찮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좋은 의미든 그렇지 않든, 영화관을 떠나서도 오래도록 남을 영화임이 확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정신질환에 의해 달라진 한 가족의 삶을 담고 있다. 의사이신 부모님과 늘 우수하고 남동생에게 자상했던 누나는 1983년 조현병이 발병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학업을 중단하고, 부모님과 함께 지내면서도 폐쇄적이었던 당시 시대 분위기와 완고한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오랜기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지 못한다. 이 영화의 감독인 남동생은 2001년부터 가족의 모습을 촬영하여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는데, 장장 20여 년간 이어진 기록이 모여 다큐멘터리 영화의 형식으로 2024년, 세상에 공개되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영화의 마지막,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장면이었다.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누나를 상담실로 데려오지 못하고 좌절하던 어린 아들은, 어느새 장성하여 노인이 된 아버지에게 오랫동안 품어온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아버지는 어머니의 반대로 누나를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지만, 누나에게 병원 치료가 필요했던 것 같다고, 그렇지만 아예 실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누군가에겐 이 장면이 극심한 분노를 일으킬 수도 있겠다. 아무리 1930년대에 태어나서 폐쇄적인 시대 분위기를 겪었다고 해도, 의사로서 딸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돕지는 못할망정, 방임에 가까운 행동을 보였던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므로.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이를 변호할 생각은 없지만, 여기선 조금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전에 참석했던 북토크에서 신형철 평론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비극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는 시점과 그 사건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를 보면서 이 문장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되었다. 아버지는 딸의 질병이 발생한 시점에는 이를 외면했으나 뒤늦게 이해하게 되었고, 아들은 아버지의 선택을 원망했지만 모든 것이 지난 시점에서는 어느 정도 아버지의 마음을 짐작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모두 한참 늦어버린 이해라서 안타깝고 서글플 뿐이다.
무거운 주제를 가진 영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에 슬픔만이 가득한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3개월 간의 입원 치료를 거친 누나는 눈에 띄게 호전되어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수준까지 회복된다. 누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점성술 관련 카드를 직접 구매하고,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고, 불꽃놀이를 감상하며 동생의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는 등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누나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에도, 누나의 곁에는 평소 좋아하던 물건을 관에 넣어주며 그동안 고생했다. 덕분에 행복했다 등 애정이 담긴 인사를 건네주는 가족과 지인들이 있었다.
좋은 영화는 단편적인 이야기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모두 담은 채로 관객을 만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다소 무겁더라도, 누나와 가족들의 삶을 모두 관객에게 체험하게끔 만든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고 쉽게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편들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누군가의 삶에는 항상 나름의 이유와 최선이 존재하고, 한 사람의 생애를 집중해서 되짚어 본다면 이를 헤아릴 수밖에 없으므로.
환자의 케이스를 다루면서 진단을 내리는 방식의 공부를 하다 보면 종종 환자의 '삶'
은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본과 생활을 거치면서 꽤 많은 양의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이 영화를 보면서 환자의 진단 이후의 '삶', '회복' 등에 대해서는 아직 더 많이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의학이 방대한 이유는 한 사람의 생애를 모두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의학의 세계 속에서 때론 지치더라도, 활자 너머에 있는 환자의 삶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환자가 미처 말하지 못한 여백이 남아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텍스트 너머 기록되지 못한 환자의 삶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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