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둘러싸고 의료계와 정부가 심각한 인식차를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당연지정제를 완화 또는 폐지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는 반면, 의료계는 의사 10명중 7명이 폐지를 원하고 있다며 자유계약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율계약제를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의사의 67%가 찬성했다고 한다. 의사들이 당연지정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수치다.
의료계는 당연지정제에 대해 의료인의 전문적 자율성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국민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제한하고 있는 악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 이제도는 비록 합헌 판례가 있기는 하지만 법률적으로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도 이 제도가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면서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의료계의 기대를 부풀렸다.
정부는 그러나 지난 4월19일 '국민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언제, 어디서나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으면서 모든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확고히 유지하는 등 현행 건강보험의 틀을 유지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면서 제주특별자치도에 영리병원을 허용해도 당연지정제는 손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의사의 82.3%가 당연지정제가 폐지되고 자율계약제가 도입되더라도 건보 환자를 진료하겠다고 응답한 통계도 있고 보면, 당연지정제 완화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부의 입장은 정책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 당연지정제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의료산업을 성장동력으로 육성할 수 있다는 말인가. 손질하지 않고서는 현재의 단계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당연지정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의료인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된다. 또한 고급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국민 대다수의 의견도 고려해야 한다. 공공의료망이 탄탄하게 구축된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벌인 후 완화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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