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게 수술동의서를 받았다 하더라도 단순히 동의서를 보여주고 서명을 받은 것에 불과하다면 설명의무를 다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어려운 의학용어가 많고 내용이 추상적인 수술동의서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면 환자에게 자기선택권을 줬다고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부산지방법원은 최근 관상동맥 조영술 및 성형술을 받다 사망한 환자의 유가족들이 의사의 과실을 물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의사에게 위자료를 배상할 것을 주문했다.
18일 판결문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핵심은 과연 의사가 수술 중 과실이 있었는지, 또한 사망까지 일어날 수 있는 수술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는지가 관건이었다.
환자가 수년에 걸쳐 2차례나 관상동맥성형술을 받았지만 좌회선지의 폐쇄가 심해 유도철선이 통과할 수 없어 모두 실패로 끝났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유가족들은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잘 관찰하고 확인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시술을 강행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의사는 환자의 상황과 당시의 의료수준, 또한 경험에 따라 자신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진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며 "그 방법이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진료의 결과만 보고 과실을 논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비록 관상동맥성형술을 받던 중 좌주간지 관상동맥 박리가 발생돼 환자가 사망했다 해도 만약 환자를 방치했을 경우 심근경색으로 사망할 위험성이 높았던 만큼 결과만 가지고 의사의 과실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것.
즉, 현재의 임상의학 수준에 비춰보면 관상동맥성형술 시술도중 발생하는 관상동맥 박리는 예측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의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 법원이 판단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설명의무에 대해서는 유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의사는 수술동의서를 통해 수술 부작용이 일어날 확률과 문제에 대해 설명했으며 부작용이 일어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렸다고 주장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의무를 다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의사는 수술 중 결과가 좋지 않은 개연성이 있는 의료행위를 할 경우 질병의 증상과 치료방법의 내용 및 필요성, 발생이 예상되는 위험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환자가 치료를 받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이러한 설명은 추상적으로 증상과 위험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판시했다.
비록 수술동의서에 환자의 서명을 받은 것은 인정되지만 이것만으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했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함이 있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환자가 서명한 동의서에는 천자부위혈종, 심낭압전 등 일반인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의학용어가 나열돼 있었다"며 "이러한 용어나 사망률에 대해 인쇄된 내용에 추가해 설명한 흔적이 없는 이상 이 것만으로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못박았다.
이어 "이러한 정황을 보면 의사는 환자에게 사망의 위험성이 높은 시술에 대해 신중히 선택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따라서 의사는 이로 인해 환자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고 유가족들에게 총 3천여만원의 위자료를 배상할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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