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만호 회장 "남은 임기 마무리…사퇴 안한다"
메디칼타임즈=장종원 기자
법원의 유죄판결 이후 거취를 고심하던 경만호 회장이 전격적으로 회무에 복귀했다. 중도 사퇴는 없으며, 임기 끝까지 책임을 완수하겠다는 입장도 정리했다.
16일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경 회장은 이날 정상적으로 출근, 회무에 임했다. 오후에 열린 임원회의도 주재했으며, 특히 현안으로 떠오른 미용사법안 저지를 위한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 회장은 지난 9일 서울서부지법으로부터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자, 칩거하면서 거취에 대해 고심해 왔다.
그러나 경 회장은 이날 대회원 서신문을 통해 중도사퇴 없이 남은 임기를 책임있게 완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장 처리해야 할 중대한 현안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중도사퇴로 의료계에 혼란을 일으켜서는 안되며, 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승복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 같이 결정한 배경에는 의협 지도자들의 중도사퇴 만류와 내년 의협회장 선거와 연관해 중도사퇴를 원하지 않는 의료계 기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전공의협의회를 제외하고는 유죄 판결 이후 공식적으로 사퇴를 주장한 단체도 없었다.
경 회장은 대회원 서신문에서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아 송구스럽다"면서도 "법원 판결에는 승복할 수 없다. 개인적 이익을 취한 바는 전혀 없으며 회원 권익과 척박한 의료환경 및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유죄판결을 받은 이상 거취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자연인 경만호로 돌아가 온갖 굴레를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사퇴가 무책임한 현실도피이며 의협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환기 시켰다.
경 회장은 "남은 임기 동안 그간 추진해온 일들을 마무리해 회원들에게 구체적인 과실을 안겨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특히 젊은 회원과의 소통과 공감을 위해 청년위원회와 전공의특별위원회를 더욱 활성화 시키겠다"고 덧붙였다.
의협 경만호 회장 유죄 판결 관련 대회원 서신 전문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아시는 바와 같이 제가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점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법원의 판결에 승복할 수 없습니다. 누차에 걸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제가 개인적인 이익을 취한 바는 물론 그럴 의사가 전혀 없었고, 오로지 회원 권익을 지키고 척박한 의료 환경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 한 점 부끄러울 게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죄판결을 받은 이상 저의 거취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생각 같아선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자연인 경만호로 돌아가 지금의 온갖 굴레를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그것이 과연 의협과 10만 회원들을 위해 최선의 길인가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사퇴가 무책임한 현실도피로서 10만 회원과 의협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료계의 많은 지도자분들께서도 저의 사퇴를 무책임한 일이라며 만류하셨습니다. 그래서 1심 판결에 흔들리지 않고 다시금 회무에 전념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선택의원제 철회 및 실질적으로 회원들에게 실익을 가져다주는 제도로의 안착, 의료분쟁조정법 하위법령의 올바른 제정, 합리적이고 공정한 수가계약을 위한 건강보험법 개정안 관철, 심평원의 직권 비급여 조사 근거 마련을 위한 건강보험법 개정안 저지, 최근 긴급 현안으로 떠오른 미용사법 제정 저지 등 시급한 현안을 뒤로 한 채 무책임하게 떠날 수는 없습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저는 회무 추진에 있어서 양심과 도덕에 반하는 그 어떤 일도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누구보다도 1심 판결을 기다려 왔었습니다. 저는 무죄판결을 확신하고 있었고, 따라서 법원의 판결이 내부 고발자들에 대해 경종을 울림으로써 회무에 전념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되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6가지 기소 건 중 대외사업비 1억 원 조성 건과 의학회장 기사 월급 및 유류대 지원 건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납득할 수 없는 판결입니다.
법원이 대외사업비 조성을 유죄로 판단한 근거는 “로비자금인 것으로 보이는 자금을 조성한 것은 의협의 단체 의사에 반하는 행위”라는 게 핵심입니다. 그리고 단체 의사에 반한다는 판단의 배경으로 “종래 존재하던 의정회와 그에 속한 예산을 다 없애버린 상황”을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외사업비 조성은 감사단 및 대의원회 의장의 동의를 받아 이사회의 의결을 거치는 등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을 뿐 아니라 2010년도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은 사안입니다. 대한의사협회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대의원총회가 추인했다면 그것이 곧 의협의 단체 의사입니다. 법원이 제시한 “의정회비를 없애버린 상황”은 배경일 뿐이며, 따라서 법원은 ‘그러한 상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단체 의사에 반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단체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의 의사결정을 제쳐둔 채,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을 단체의 의사에 반하는 지 여부의 근거로 제시했으니 이걸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법원 판결과는 별개로 대외사업비 조성 자체를 문제 삼는 시각이 있음을 압니다. 지금은 사회 모든 부문이 투명성을 요구받고 있는 시대이고, 따라서 대외사업비와 같은 돈은 필요치 않으며 그런 방식의 로비는 통하지 않는다는 주장인데, 일견 당위성과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얘기입니다. 세세히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현실의 모든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을 요량이라면 모르지만 그게 아니라면 대외사업비가 절실한 게 냉정한 현실입니다.
대한의학회장 기사월급 및 유류대 지원에 대한 판단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법원은 의협이 의학회장 기사월급을 지원한 것이라고 했지만 정확한 사실은 기사월급을 지원한 게 아니라 직원(기사)을 파견한 것입니다. 그건 의학회가 지원금 증액을 요청해왔지만 이미 예산이 확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어서 고심 끝에 감사단의 동의를 구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의학회장에게, 정확하게 말하면 의학회에 직원을 파견한 게 문제라면 그간 계속하여 의협 산하기구인 의료정책연구소에 의협 정규직원 3명을 파견해 온 것 또한 문제가 될 것이며, 심지어 주로 의학회 업무를 보고 있는 의협 학술국도 그 존재 자체가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 대한개원의협의회와 100주년기념재단의 경우도 실질적 업무를 협회 직원들이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나아가 정관상 기구도 아닌 한국의학교육평가원에 직원을 파견해온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입니까?
이렇듯 의협은 산하기구나 관련단체에 보조금, 인력 등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의학회 직원 파견 및 유류대 지원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협회 내부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단체 내부에서 조율해야 할 이런 사안에 대해서조차 법원이 유죄 여부의 판단을 내렸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법부의 판단이야 어찌 되었든, 대한의사협회의 장으로서 제가 했거나 하려했던 모든 일에 대해 양심에 비추어 조금도 꺼릴 게 없습니다. 제가 즉시 항소한 이유입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머지않아 헌법재판소에서 지역조합과 직장조합의 통합에 대한 위헌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거대 공룡 건강보험공단의 출현을 낳은 의보통합이 위헌판결을 받을 경우 이를 동력으로 삼아 의료개혁의 시동을 걸지 않으면 안 됩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설사 위헌결정이 난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통합론자들이나 거대한 변화를 기피하는 집단, 특히 정부는 필시 임시방편적인 땜질로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려 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의료제도개혁은 물 건너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헌법소원의 당사자인 만큼 판결의 결과를 보며 어떤 식으로든 의료제도개선의 물꼬를 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차기 집행부가 강력한 추진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제가 사퇴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고질화한 집행부 흔들기에 무릎을 꿇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역대 어느 집행부도 집행부 흔들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의료계의 이와 같은 자해행위가 회원들에게 얼마나 큰 불이익을 가져다주었는지를 생각하면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자해행위를 용납해선 안 됩니다. 저의 사퇴는 오히려 자해행위를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고 말 것입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저는 지금도 소명감 하나로 의협회장에 취임할 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소명감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 소명감으로 남은 임기 동안 그간 추진해온 일들을 마무리하여 회원 여러분께 구체적인 과실을 안겨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또 앞으로는 더욱 더 회원 여러분과의 소통에 힘써 회원 여러분과의 공감 속에서 회무를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그때그때마다 대변인을 통해, 또는 제가 직접 나서서 현안과 회무의 주요 내용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특히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은 젊은 회원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위해 청년위원회와 전공의특별위원회를 더욱 활성화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회원 여러분께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 올리며, 끝까지 최선을 다 할 것을 다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