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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학원 故 윤대원 이사장 자서전 '마이티 닥터' 발간

메디칼타임즈=이지현 기자국내 의료발전에 기여하고 약자를 위해 헌신했던 故 도헌 윤대원 학교법인일송학원 이사장의 자서전 '마이티 닥터(Mighty Doctor)'가 23일 발간됐다.윤대원 이사장은 아버지였던 故 일송 윤덕선 학교법인일송학원 설립자를 이어 1989년 2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35년간 한림대학교의료원, 한림대학교, 한림성심대학교,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그리고 6개 복지관을 지휘하며 성장시켰다.자서전의 제목 '마이티 닥터'는 모든 의사가 바라보고 가야 할 가치적 지향점을 뜻한다. 그의 유년기부터 79세까지의 인생이 녹아있는 자서전 '마이티 닥터'에는 ▲전란 속 힘들었던 어린 시절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해준 생물 채집단 활동 ▲외과 의사로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 ▲병원을 설립하고 대학과 복지관을 운영했던 내용 등이 담겼다.  특히 ▲덕적도 명의로 불리던 시절 ▲간염의 발병, 간암 진단, 간이식까지의 과정 등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도 실렸다. 책은 역경과 고난을 극복한 그의 도전정신과 신념을 보여준다. 의료학술 파트너십을 맺고 교류했던 마크 하디 미국 콜럼비아의과대학 외과 명예이식센터장은 "윤대원 이사장은 첨단의학 발전에 기여하고 소외된 나라를 도우며 인류를 위해 최고 수준으로 봉사했다"고 전했다. 또 로버트 켈리 미국 뉴욕프레스비테리언병원 명예원장은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훌륭하고 많은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며 "다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대담한 비전으로 이끌어 모두가 동참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 생물 채집단 통해 느낀 생명에 대한 경외심… 의학 향한 열정으로 승화책 속에서 그는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생물 채집단의 일원으로 전국을 누비며 온갖 식물을 탐색했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집 앞의 작은 텃밭이었다. 밭을 들여다보고 흙에서 자라나는 생명을 지켜보는 시간이 한없이 좋았다"며 "그 시절의 나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저건 천생 농부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고 전했다. 그런 그를 보며 고모는 "풀 한 포기, 나무 하나에 온 정신을 쏟는 성정이니 그 정성을 사람을 살리고 고치는 데 쏟아보는 것도 분명 보람 있는 삶이 될 게다"며 조언했다.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농부까지 꿈꿨던 그는 고모의 끈질긴 설득에 의과대학으로 편입했고 결국 외과 의사가 됐다. ■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결핵 환자 돌보고 응급수술 집도 레지던트 2년 차 시절 덕적도에서 근무했던 생생한 이야기도 남겼다. 그는 당시 인천 서쪽으로 배를 타고 4시간 동안 가야 하는 아득한 섬 덕적도 파견을 자처했다. 덕적도는 열악한 의료 환경 탓에 레지던트들에게 기피 지역이었다. 거즈도, 링거액도, 수혈용 혈액도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자 고군분투했다.그는 결핵 환자를 회진했던 때를 떠올리며 "지하실에 내려가니 그냥 맨땅에 놓인 기둥들에 빨래를 칸막이 삼아 20여 명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회진 약속을 지킨 것에 다들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지금껏 어떤 원장도 얼굴을 비춘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중략) 그 시절 결핵 환자들은 그렇게 국가와 사회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는 비참한 삶을 살았다"며 안타까워했다.방송사가 보도한 췌장이식 수술 성공 모습또 응급 환자를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수술을 집도했던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2년 차 레지던트 신분이던 나로선 위 수술을 해본 적이 없고 조수조차 서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당시 병원에는 링거액이나 혈액도 없었다. (중략) 수술 기구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나마 쓸모 있어 보이는 몇몇 기구들을 준비하고 로사와 중학생 2명을 더 불러와 수술 준비를 했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수술을 도감을 보아가며 시도했다"며 환자를 살리고자 수술했던 순간을 떠올렸다.이후 그는 연이어 수술에 성공하며 '덕적도 명의'라 불렸다. ■ 온갖 수술 섭렵하며 수련… 국내 최초 췌장이식 수술 성공 쾌거덕적도 파견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윤 이사장은 외과 의사로서 끊임없이 수련했다. 당시에 대해 그는 "일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잠자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고 썼다. 그는 췌장 머리부분에 암이 생겼을 때 하는 휘플수술, 양잿물로 식도가 녹았을 때 대장을 식도에 붙여주는 대치 수술 등 각종 고난도 수술을 익혔다. 그는 안주하지 않고 선진 의료를 배우고자 미국 콜럼비아대학병원 외과학 교실로 해외연수도 떠났다. 장기이식에 주목하며 당뇨병 치료를 위한 췌장 도세포 이종이식 연구에 참여했다. 그는 "9시부터 5시까지 줄곧 실험에 매달려 있었다. 식사하러 갈 시간도 없었다. 3개월 새 체중이 10킬로그램이 빠졌으니 내 몸을 얼마나 혹사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며 연구에 몰두했던 때를 회고했다. 이외에도 신장이식을 연구하며 환자를 돌봤고, 당시 우리나라에서 하지 못하던 심장수술 참관도 이어갔다.이렇듯 그는 끊임없는 수련으로 국내 의료 발전을 이끌었다. 1987년 국내 최초로 췌장이식 수술에 성공한 것이다. 당뇨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이 제시된 순간이었다.그는 "의사로서의 도전 중 가장 뿌듯하고 성취감을 느꼈던 것은 신장이식과 췌장이식 수술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이식 수술은 더 이상의 치료법이 없는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치료이기에 더욱 신중해야 하고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의사로서의 최종 목표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용산중학교 재학시절 생물 채집단 활동을 바탕으로 ‘전국학생생물연구발표회’ 1등상을 수상한 故 도헌 윤대원 이사장 모습(가운데). 왼쪽은 그의 선친 故 일송 윤덕선 명예이사장. ■ 인술(仁術) 펼친 경영인… 취약계층 위한 무료진료 지속그는 "아버지는 늘 밤마다 새벽마다 불려 나가서 수술하고 돌아오셨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나였으니 당연히 의사는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중략) 환자가 있는 곳에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 그에 따라 사는 삶이 의사의 숙명이라고 믿었다. 그 습관이 몸에 배서 의사가 되어서도 그런 생활을 당연하게 여겼다"며 책을 통해 의사로서의 삶을 회고했다.실제로 그는 매 순간 환자를 살리겠다는 사명으로 의술을 행했다. 그에게 있어 의술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사람을 지키는 ‘인술(仁術)’이었다. 성심자선병원 부원장 시절부터 취약계층을 위해 무료진료를 펼쳤던 윤 이사장은 이후 경영인이 되어서도 한림대의료원과 복지관 차원에서 꾸준히 무료진료를 시행했다.  그는 "무료진료라 해서 임시로 간단한 약 처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시설을 갖춤으로써 웬만한 치료는 거의 해결할 수 있었다"며 "성심자선병원은 영세민을 위한 무료병원으로 극빈 환자들에게는 한 가닥 희망의 끈이 되어주었다. 국가가 복지나 무료진료에 여유를 가질 수 없었던 시절, 그 역할을 앞서 수행한 국내 최초의 민간 무료병원이었다. (중략) 무료진료사업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그리고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인술이었다"고 설명했다.또 인간애를 바탕으로 사회복지 증진에도 기여했다. 그가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 주민을 위해 2000만원을 출자해 실시했던 긴급재난지원제도는 정부 제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당시 출자했던 금액이 종잣돈이 돼 ‘SOS 기금회’가 설립됐고, 2006년 긴급복지지원법 제정을 통한 긴급생계비 지원 제도 시행에 초석이 된 것이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그 성과는 대단히 컸고 결과 또한 아주 흡족했는데, 이렇게 신림종합복지관에서 시작된 SOS 긴급재난지원금은 수년 후 전국적으로 수십억 단위의 SOS 긴급재난지원제도로 발전했다"고 했다.  ■ 100억원대 적자에도 불구… 공익 위한 화상치료 계속해이와 함께 공익을 위한 화상치료도 지속했다. 윤대원 이사장은 적자를 낼 수밖에 없는 구조인 화상치료에도 꾸준히 투자하며 한림대학교의료원 산하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을 보건복지부 지정 대학병원 유일의 화상전문병원으로 만들었다. 그는 "모두가 기피하는 화상치료에 과감히 투자한 것은 오로지 화상환자들을 살리겠다는 사명 때문이었다"며 "어떤 이유로든 생명을 방치할 수는 없다. 생지옥 같은 화상치료를 누군가는 해야만 했다. 아무도 안 하니까 우리라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썼다.한림대한강성심병원은 2008년 사회복지법인 한림화상재단을 출범해 취약계층 화상환자에게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또 2009년부터는 해외 화상환자를 대상으로 치료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해당 사업으로 현재까지 8개국에서 화상환자 1105명을 대상으로 무료진료를 했으며 97명은 현지에서, 57명은 국내로 초청해 수술했다. ■ 시대에 발맞춰 혁신하는 교육인… '글로컬대학' 선정 故 도헌 윤대원 이사장(왼쪽)이 안데스 하그펠트 스웨덴 웁살라대학교 총장(오른쪽)으로부터 린네 골드메달을 받는 모습 그는 책을 통해 교육자로서의 비전도 제시했다. 전공 간 벽을 허물어 융합인재를 위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다짐과 인공지능 시대에 발맞춰 AI 교수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획이 담겼다. 이런 비전을 바탕으로 한림대학교는 K-고등교육모델을 선도하며 2023년 교육부의 ‘글로컬대학’ 사업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이로써 한림대학교는 교육부로부터 5년간 1000억원을 지원받게 됐다. 그는 글로컬대학 계획서에서 밝힌 주요 전략을 소개하며 "새로운 전공과 융합 분야가 속속 출현하는 세상인데 지금의 폐쇄적인 구조로는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다. 학과의 경계를 초월한 토론과 연구는 새로운 전공 개설, 융합학문 출현 등 혁신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중략) 다음으로 중요한 전략은 AI 기반의 교육 개혁이다. 한림대는 2032년까지 전체 교과목의 20퍼센트를 AI 교수가 담당할 계획"이라며 한림대학교가 걸어갈 길을 제시했다.■ 병원 설립과 복지관 운영, 해외 학술교류까지… 개척자로서의 삶1945년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윤덕선 학교법인일송학원 설립자의 첫째 아들로 태어난 故 윤대원 이사장은 용산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톨릭의과대학 의학 석·박사를 마쳤다. 이후 한림대의료원 최초 신장이식 수술, 국내 최초 췌장이식 수술을 연이어 성공하며 국내 의료 발전에 기여했다.  학교법인일송학원 2대 이사장에 취임한 후에는 1999년 한림대학교성심병원, 2013년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을 설립하며 학교법인일송학원 산하 한림대학교의료원을 5개 대학병원(한림대성심병원, 한림대한강성심병원, 한림대춘천성심병원, 한림대강남성심병원, 한림대동탄성심병원)을 지닌 대규모 기관으로 성장시켰다. 이외에도 1991년 한국노인보건의료센터 개관을 시작으로 성심복지관(현 신림종합사회복지관), 안양복지관,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 화성시 나래울종합사회복지관, 동탄노인복지관 등을 운영하며 의료사회복지사업의 초석을 다졌다. 또한 한림대학교의료원과 한림대학교의 세계적인 도약을 위해 2003년 ‘마이티 한림(Mighty Hallym)’을 선포했다. 세계적인 선두 그룹과 파트너십을 맺고 경쟁력을 키워가고자 함이었다. ‘마이티 한림’의 비전 속에서 미국 NYP병원·콜럼비아의대·코넬의대·UCLA, 스웨덴 웁살라대학, 핀란드 오울루대학, 이탈리아 파도바대학, 일본 나고야시립대학·나가사키대학 등 해외 유수 대학과 긴밀한 의료학술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후 정기적으로 국제학술 심포지엄을 열어 양국의 최신 의료지론을 공유하며 의과학 분야 발전을 이끌었다. 이에 2020년에는 국제 학술교류를 통해 의과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스웨덴 웁살라대학교로부터 아시아 최초 ‘린네 골드메달’을 수여 받았다. 린네 메달은 세계 최초로 동식물을 분류한 생물학자 칸 폰 린네를 기리기 위해 스웨덴 웁살라대학교에서 제정된 상으로, 지난 2007년부터 과학 분야에서 우수한 업적을 거둔 인물에게 수여하고 있다. 윤 이사장은 웁살라대학교와 한림대학교, 한림대학교의료원의 학술교류를 통해 난치질환과 암에 대한 유전자·세포치료 연구를 발전시킨 공헌을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또한 한국의 의료와 대학 교육 발전 및 국내외 사회봉사에 평생을 헌신한 공적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될 예정이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은 훈장 5등급 중 가장 높은 1등급에 해당한다. 앞서 1996년 그의 선친인 故 윤덕선 박사도 같은 훈장을 받은 바 있다. 훈장이 추서되면 그는 2대째 무궁화장을 받는 영예를 안게 된다. 학교법인일송학원은 故 도헌 윤대원 이사장의 생전 뜻에 따라 자서전 인세 전액을 사회복지법인 한림화상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다. 한편, 윤 이사장의 일대기가 담긴 자서전 ‘마이티 닥터’는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등 온오프라인 서점과 쿠팡에서 구매할 수 있다. 
2024-07-26 19:28:09병·의원

갑자생 의사와 한국 최초의 신장이식

메디칼타임즈=황정기 병원장 [메디칼타임즈 &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 공동기획]장기 기증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나, 여전히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실정입니다. 일선 현장의 의료진들이 경험한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장기 기증 인식률을 높이고, 이를 촉진하는 공동기획 시리즈 ‘오늘, 장기이식병원 이야기’를 시작합니다.[3회] 갑자생 의사(李容珏)와 한국 최초의 신장이식황정기 병원장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아들에게 두 번의 생명을 주신 어머님에게 우리는 머리를 숙입니다!” 1969년 4월 4일 제작된 대한뉴스 720호의 마지막 멘트는 이러한 감동적인 메시지로 마무리됩니다. 40대 이상의 독자라면, 영화 상영 전 극장에서 흘러나오던 대한 뉴스의 긴장감 있는 성우 목소리를 기억하실 겁니다. 이 자막을 보고 여러분은 어떤 상상을 하시나요? 잘못된 길로 가는 아들을 위해 끝없는 사랑으로 회개하게 만든 어머니의 눈물겨운 신파이야기를 떠올리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뉴스가 전하는 이야기는 그 이상입니다.  그 대한뉴스의 내레이션을 처음부터 옮겨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에서도 치료에 손을 못 대던 신장 중환자가 우리나라 성모병원에서 사상 최초의 수술을 받고 제 2의 생명을 즐기게 됐습니다. 외과의 이용각 박사를 주장으로 해서 내과의 민병석 박사 등 20명의 전문의사와 일급 간호원 최수자 양 등 간호원 만도 20여 명이 동원된 이 수술은 어머니의 건강한 신장 한쪽을 떼서 그것을 병든 아들의 신장으로 이식한 것입니다. 수술은 세계기록으로 20여 분 만에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어머니로부터 두 번이나 육신의 생명을 받은 아들은 이제 건강한 모습입니다. 아들에게 두 번의 생명을 주신 어머님에게 우리는 머리를 숙입니다!”이 뉴스는 아들에게 한쪽 신장을 떼어 줌으로써 실제 두 번의 생명을 주신 어머니의 이야기이면서, 한국 최초의 신장이식 성공을 보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1969년 당시 한국 상황에서 모자간 신장이식의 성공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는 세계 장기이식의 역사를 조금만 살펴봐도 쉽게 이해가 갑니다. 195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혈관외과 술기와 이식면역이 발전하면서 장기이식 분야가 태동을 하였고, 드디어 세계 최초의 신장이식이 1954년 미국의 하버드대학에서 일란성 쌍둥이 형제간에 시행되었습니다. 영국에서도 첫 번째 신장이식이 1960년에서야 일란성 쌍둥이에게 성공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 들어서야 미국 등 선진국에서 의학 수련을 마친 의학자가 신 의료기술을 임상에 적용하기 시작하던 단계로 의학의 꽃인 장기이식 수술을 따라가기에는 의료 환경이 매우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1969년 명동성모병원에서 만성콩팥병을 앓던 환자에게 국내 최초 신장이식을 성공한 것입니다. 이는 세계 최초의 신장이식수술 이후 15년 만에 이루어 진 일로 그 당시의 의학수준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역사적인 성과였습니다.오늘은 한국 최초의 신장이식을 성공적으로 이끈 외과의사, 이용각 교수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국내 최초 다학제 진료로 신장이식을 동반 성공시킨 인산 민병석교수님에 대해서도 추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할 기회가 있으리라 기대합니다.)‘묻지마라 갑자생’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는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그것을 하고 싶어진다’는 인간의 심리를 의미하기도 하고, 1924년 태어난 갑자생들의 고난과 역경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용각 교수님도 바로 그 1924년, 육십갑자의 시작인 갑자년에 경기도 남양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 해에 태어난 갑자생들은 1945년까지 일제 식민지 21년, 1948년까지 미군정시대, 대한민국 출범과 6.25전쟁, 그리고 민주화 격변기 등 역사의 큰 전환점을 경험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식민지 시대의 절대적인 빈곤으로부터 오늘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경제번영기의 중심에 그들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이용각 교수님의 삶도 이 시대의 중요한 순간들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며 정면으로 통과했습니다.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일본군의 첫 징집대상이 되어 관동군에 편입되었고, 해방 후에는 가까스로 만주에서 벗어나 대학의 세균학연구실에서 근무 하시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미 육군 7사단에 합류하여 장진호 전투 이후 미 해병대의 야전병원에서 외과 임상의를 시작하셨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교수님께서 1958년 미국 휴스턴 베일러의대 Dr. Debakey 교수에게서 외과 전문의 수련을 받으며 혈관이식외과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용각 교수님의 의사 인생 50년을 다룬 자서전 제목도 ‘갑자생 의사(甲子生 醫師) – 나의 人生 70年 醫師 50年’입니다. 필자는 병원에서 근무하시는 이용각 교수님을 직접 뵌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선생님을 뵈었던 것은 전임의 3년차 시절, 최초의 신장이식을 기념하는 3월의 정기모임에서였습니다. 그때의 선생님 모습을 생각해보면, 키가 다소 작으시고, 목소리가 까랑까랑하면서도 힘이 느껴졌으며, 말씀하시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고 유쾌하셨습니다. 88세 미수(米壽)의 얼굴에는 인자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으며, 후배들에게 위트 넘치는 농담을 건네시기도 하고, 손을 잡아 주시며 외과의사로서의 자부심을 당부하시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다시 신장이식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자서전 ‘갑자생 의사’에서 한국 최초의 신장이식에 관한 내용을 발췌해서 여기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1969년 초 어느 날 민병석 내과 교수가 내방을 찾아와서, ‘우리 신장이식을 할 수 있을까요?’ 라고 묻는 것이었다. 내용인즉, 미국에 이민간 OOO(33세)라는 사람이 있는데 말기 신부전증으로 시카고시의 마이클 리스 재향군인병원에 입원하고 있는데, 그 병원도 신장이식을 막 시작하는 중이어서, 대기환자가 많고, 한국인에게 돌아갈 여가가 없어서 고향으로 되돌려 보낸다는 것이었으며, 이 말을 전해들은 환자의 형님이 서울시내의 여러 대학병원을 찾아 다녀 문의한 결과, ‘한국에서는 아직 이르다’ 말을 듣고 마지막으로 우리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장기이식 성공의 첫 번째 요소는 혈관을 정확히 그리고 신속히 이식환자의 혈관에다가 봉합해서 붙이는 것이다. 우리 가톨릭 외과는 이 방면에 독보적 기술을 축적하고 있었으니 나의 지도아래 외과의 모든 식구가 일당백이었다. 면역 거부반응의 치료는 이식이 성공한 다음의 일이다. ‘WHY NOT?’ 나는 민 박사와 한국최초의 신장이식을 하기로 제안하였다. 우리는 내과, 외과, 비뇨기과, 마취과, 정신과, 병리과, 미생물면역과의 의사들과 미국서 인공신장기(혈액투석기)를 배워 온 소아과의사 등 30여 명의 이식팀을 구성하였다.(이것이 한국 의학계 최초의 팀 치료였다).드디어 환자가 김포공항에 산소마스크를 달은 체 심한 호흡곤란상태로 도착하였고 곧바로 앰뷸런스로 명동성모병원에 입원하였다. 소변을 못 만들어서 온몸이 오줌 물로 홍수상태이고 심장의 심낭도 물이 꽉 차 있는 상태이어서, 인공신장기나 복막투석도 위기를 막는데 역부족이었고, 곧바로 이식수술을 하자는 것이었다. (중략) 드디어 D-Day를 1969년 3월 25일 토요일 오후로 삼았다. (중략) 수술실 문을 굳게 잠그고 환자 어머니의 콩팥을 떼어다가 아들의 우측 하복부 혈관에다 문합 부착시키는데 단 18분밖에 안 걸렸다. 얼마 안 있다가 이식한 콩팥이 힘차게 오줌을 배설하기 시작하였고 숨을 죽이고 있던 우리 팀의 의료진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처음 보는 신기한 현상이었다. 첫날에 32,000cc의 오줌이 수돗물처럼 나왔고 우리는 밤새도록 30병의 링겔을 정맥에다 퍼부었다. 환자는 기적같이 회복하여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민병석 교수는 ‘새로운 의학이다’라고 흥분하였다.』이용각 교수님과 여러 선생님들은 최초의 신장이식에 앞서,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장기이식이 가능할 것을 대비하여 동물을 이용한 신장·간이식 연구와 혈관외과 술기 연습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용각 교수님은 그 역사적 순간을 ‘Beginner’s luck’ 이라며, 자신의 공을 주변 사람들에게 돌리고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오늘, 2024년 3월 25일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장이식 성공 55주년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장기이식을 활발히 시행하고 있는 은평성모병원을 비롯해 지금의 대한민국 고형장기이식 수준은 지식과 술기, 시스템 모두에서 세계최고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는 1969년 3월 25일, 그 갑자생 의사의 강단 있는 결단이 우리나라 장기이식의 초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용각 교수님께서는 2016년 3월 16일,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생님께서는 만성콩팥병으로 돌아가시기 전에는 혈액투석을 받으셨습니다.  신장이식 성공 55주년이 되는 오늘! ‘Surgeon’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책임감을 다하라는 이용각 교수님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를 깊이 새겨봅니다.  
2024-03-25 05:00:00오피니언

"임상만이 전부? 세상은 넓고 간호사가 할 일은 많다"

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굴지의 기업 대우그룹을 일궈낸 김우중 회장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하지만, 2014년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서 심사직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조영현 대리가 간호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대학교 졸업 후 병동 간호사로 일해 오다 뒤늦은 결심 끝에 2014년부터 심평원 심사 간호사로서 살아온 그. 심평원 사내 자격증에 합격했다며 자랑을 늘어놓는 그는 심평원 심사직 간호사로 지내면 지낼수록 직책이 더 애착이 가고, 노력해 발전해야겠다고 항상 자신을 채찍질한다. 이에 메디칼타임즈와 대한간호협회의 공동 기획 '나는 간호사다' 인터뷰를 통해 심평원 의료급여실 조영현 대리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럼 조영현 대리가 말하는 심평원 심사직 간호사로서의 삶을 인터뷰를 통해 들여다보자. Q. 대부분 '간호사' 하면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를 떠올리는 것 같아요. 실제로 간호업무에 종사하시는 분들 외에는 심평원이라는 기관 자체를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심평원이란 기관은 무엇이고 그곳에서 어떠한 일을 하고 있나요? 간단히 심평원을 말하자면 의료기관이 환자를 진료한 후 비용의 일부는 환자에게 수납받고, 나머지 진료내역을 심평원에 청구하는 거죠. 그래서 심평원이 이를 심사하면 의료기관은 나머지 진료비용, 즉 요양급여비용을 받게 되는 거예요. 저는 심사직 간호사로 의료급여 환자 진료내역 심사를 하고 있어요. 심사는 의료기관에서 제공한 대부분의 진찰, 검사, 투약, 치료재료 등에 기준에 맞고 효율적으로 사용됐는지 확인하는 업무에요. 심평원에서 일하는 심사직 간호사는 대부분 심사업무를 하고 있는데 뿐만 아니라 조사, 기준, 분류, 교육 및 홍보 업무에도 심사직 간호사들이 배치되는 사례도 많답니다. Q. 일반적인 간호사와는 다르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정말로 많이 다르죠. 일반적인 간호사는 병원이나 의원에서 임상을 하는 간호사를 뜻하잖아요. 이들 간호사는 직접 환자를 만나 오더를 수행하고 간호를 제공하는 반면, 심평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는 그 후 진료내역으로 환자를 간접적으로 만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진료가 제공됐는지 확인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고 생각해요. 결국, 간접적으로 환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어요. Q.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껴 심사직 간호사를 지원하게 되신 건가요. 병동에서도 꽤 오랫동안 생활하신 것 같은데요. 사실 대학교 시절부터 심평원이란 공공기관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왜였냐면 당시 심평원에서 일선 간호대생을 대상으로 각종 설명회와 견학을 진행했는데, 그 행사에 간호대생으로 참여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부터 심평원 이란 조직에 반해 심사직 간호사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됐어요. 그래서 대학병원 병동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8개월 동안 데이나 나이트 근무가 끝나고 시간을 빼 심평원에 지원하기 위해 노력을 하기도 했어요. Q. 심평원 심사직 간호사로서 횟수로 4년째 근무하고 계시는데, 생활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나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해요. 조금 식상한 답이 될 수 있지만, 심평원에서 심사하는 의료비를 심사의료비라고 하는데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제가 입사하던 2014년엔 62조 정도였는데, 작년에 73조를 넘었고 비급여 항목이 급여가 되면서 앞으로 계속 증가할 텐데,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에 내가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에요. 기억에 남는 순간을 말한다면 심평원 사내자격증이 몇 가지 있는데, 올해 EBRM 마스터 자격시험에 합격한 일이 생각나네요. EBRM(Evidence Based Review Manual, 근거문헌 활용지침)은 기본적인 의학 지식뿐만 아니라, 통계적 개념과 논문을 검색하고 요약까지 할 줄 알아야 취득할 수 있어요. 생소한 개념이 많고, 실습에 시간제한도 있어서 걱정했는데 합격해서 몹시 기뻤다. 나의 업무역량이 한 단계 올라간 계기가 돼 더욱 보람된 경험이었어요. Q. 조심스럽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에요. 최근 의료계에서 심평원을 향한 비판 목소리가 많은 것이 사실이에요. 특히 심평원 심사 조정을 문제 삼는 동시에 이를 심사하는 심사직 간호사를 비판하기도 하는데,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속상할 것 같아요. 심사직 간호사로서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 있다면, 공정한 것일 거예요. 심평원은 모든 업무를 관련 법령에 의해 수행하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어느 경우에서나 공평하고 일관성 있게 업무를 처리해야 해요. 없을 것 같지만 애교스럽게 "한 번만 봐달라"나 "잘 부탁한다"는 말 자주 듣는데, 기준에 따라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해요. 의료계 비판에 대해서는 심사 업무를 하다 보면 조정이 발생하는데, 의료인의 한사람으로서 저도 안타깝게 생각해요. 그렇지만 문헌적인 근거를 토대로 마련한 기준이 정해져 있고, 그 기준에 따라 인정이든 조정이든 일관성 있게 적용하는 것이 저의 의무라고 마음을 다잡고 근무하고 있어요. Q. 말씀을 들으니까 마음가짐이나 태도도 매우 중요할 것 같아요. 심사로 인한 민원으로 힘든 점이 많을 것 같은데, 심사직 간호사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랄까 그런 것들이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태도가 있다면, 적극적인 자세일 것 같아요. 적극적으로 배우는 것, 급여기준을 적극적으로 찾고 적용하는 것, 민원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답변을 주는 태도일 것 같아요. 여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배워야겠다는 태도도 중요해요. 심평원의 업무는 고도로 전문화·세분화돼 매우 다양해지기 때문에 일을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지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저는 짧게는 회사 내·부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내년쯤에는 보건대학원에 진학하여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싶어요. Q. 이제 '나는 간호사다'의 공통 질문을 드릴게요. 이 코너가 간호대생들과 신규 간호사들을 위한 직업 탐방과 같은 코너거든요. 간호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이것만을 꼭 알아뒀으면 하는게 무엇일까요. '세상은 넓고 간호사가 할 일은 많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정부와 공공기관, 연구소나 일반 기업까지 찾아보면 간호사를 원하는 곳이 많거든요. 보통 간호학과 4학년 1학기면 병원은 다음 년도 신규간호사 모집을 하고, 학생들은 입사 지원을 하게 되죠. 그래서 마치 '간호사=병원 간호사'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 같고, 저도 그랬어요. 물론 병원이 간호사를 간호사답게 만들어주고, 그래서 간호사에게 임상경력은 매우 중요하죠. 하지만,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병원에만 있지 않았고, 임상만이 간호사의 전부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후배들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다행인 건 간호사를 꿈꾸는 이들이 심평원을 아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 길이 트였다고 생각해 기분이 좋아요.
2017-10-13 06:00:57병·의원

실패하기 위한 시도

메디칼타임즈=메디칼타임즈고주형의 '헬스케어 스타트업 리더십' 8. 실패하기 위한 시도 위인전에는 주인공의 인생역전이 여지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반전을 통해 사회에 공헌한 내용을 다룬다. 이런 종류의 책에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이 주인공의 실패과정이다. 이유가 있다. 실패는 결과가 아니라 필연적 과정이다. 역경을 이겨낸 사람은 실패를 놓고 자신과 대화한다. 바둑에서 복기(復碁)하듯 단계별로 되짚어보며 사색한다. 실패를 했을 때는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실패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실패를 맛본 후, 다시 시도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볼 이유가 있다. 예정된 실패를 감행하는 자신감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선생을 지낸 경영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大前 研一, Kenichi Ohmae)는 "학교 성적이 좋았던 사람이 의외로 사회에서 뒤처지는 경우가 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느끼는 자만심 때문에 매일의 노력을 게을리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실패를 실패 그대로 인식하거나, 실패를 내 모습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과정에서 게으름이 나타난다. 게으름이 과하면 자만심으로 발전한다. 자만심은 실수를 인정할 마음의 공간을 앗아간다. 가슴 시린 실패도 실수라고 인정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지식인들이 실패를 활용하는 심리과정은 다음 4단계를 거치는 것 같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거야(위험요인 예상)', '조금 더 했으면 됐을 텐데, 그래도 괜찮아(예정된 실수)', '배울 수 있는 기회였어(뜻하지 않은 경험)', '다음에는 잘할 수 있어(새로운 자신감)'이다. 순서상 '위험요인 예상'이 첫 번째이지만 여기에는 '예견된 실수'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실패를 실수로 받아들이고 언제든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수를 예상하는 단계가 '위험요인 예상'이다. 낙관적이든, 비관적이든 개인의 성향에 따라 예측하는 미래의 크기는 다르다. 그러나 성공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사람일수록, 나를 증명해야 하는 압박감이 강할수록 실패를 예상하지 않으려는 특징을 보인다. 실패의 상황을 사전에 파악하고 실패를 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여건을 미리 정의해두는 섬세한 예측과정이 요구된다. '예견된 실수' 단계에 다다르면 '뜻하지 않은 경험'을 할 때가 반드시 온다. 그리고 실패를 통해 '새로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성공하면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예정된 실수를 거치면 그에 못지않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감당할 수 있는 실패의 크기는 실패를 불러온 대상과 마음의 그릇 크기에 따라 정해진다.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동료와의 가벼운 게임에서 진 것도 엄청난 실패로 다가온다. 그에게 동료란 꺾어야 할 대상이고 작은 실패도 용납하지 못한다. 반면 항상 성공한다는 편견을 없애면 없던 기회를 찾기도 한다. 그래서 실패는 미래 예측력을 높이는 수업료를 내는 과정이라 말한다. 스키를 잘 타려면 많이 넘어지면 된다고 한다. 필자는 글을 잘 쓰려고 책을 수백 권을 읽었지만 아직 만 권쯤은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누구나 넘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위기를 허비하지 않는다 여러분에게 가장 큰 실패의 경험은 무엇인가? 수업시간 중 잠시 한눈팔아 과제물 점수가 클래스 중간 이하로 떨어진 일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인생의 오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졸업하면 잊힐 일이지만 지금 당장은 큰 무게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실패의 정의는 누가 뭐래도 당한 내가 내리는 것이다. 실패하기 위한 시도란, 실패하려고 기를 쓰고 노력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부족한 부분인데 꼭 해내야 한다면 가장 깊은 곳으로 몸을 내던지라는 말이다. 남 앞에서 말하는 게 두렵다면 오히려 몇 백 명 앞에 설 기회를 만들고, 원시부족 언어를 배워야 한다면 아마존 밀림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재무학에서 흔히 쓰이는 '위기를 허비하지 말라(Never waste a good crisis)'는 금언은 이 상황에도 적용된다. 실패를 예견된 실수로 정의하면, 잠깐의 실수를 허용할 그릇이 생긴다. 쉬어간다고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균형이란 흔들림 뒤에 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실패하면 자서전 집필 중이라 생각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필자는 이제는 실패에 의연하게 다가서려 노력한다. 조금의 실패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촉매이다.
2016-07-20 09:33:53오피니언

비타민하우스 김상국 대표 자서전 출간

메디칼타임즈=정희석 기자 비타민하우스 김상국 대표가 자전적 에세이 '내 삶의 뜀틀'을 출간했다. 이 책은 가난한 환경 탓에 지하철에서 신문을 팔고 주유소에서 일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김 대표의 가난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성공한 기업가가 된 성공스토리를 담고 있다. 자전적 에세이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은 ▲내가 꿈을 이룬 것이 아니라 내 꿈이 나를 이루었다 ▲우리가 정말 궁금한 네 가지 질문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여섯 가지 우선순위 ▲나를 키운 것은 위기도 즐길 수 있는 긍정의 힘 ▲세상이 있어 내가 있고 우리가 있다 등 총 5장으로 구성돼 있다. 비타민하우스 유현정 광고홍보팀장은 "출발은 자서전이었지만 결과물은 자존감과 열정, 성공을 불러일으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룬 자기계발서가 됐다"며 "책을 직접 보시면 그 감동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3-01-18 08:58:30의료기기·AI

복지부, 사진과 자서전 등 시니어상 시상

메디칼타임즈=이창진 기자 사진 부문 최우수상 선정작. 보건복지부(장관 진수희)는 6일 인구보건복지협회(회장 김영순)와 공동으로 시니어상 확산을 위해 ‘자서전, 사진, 슬로건 공모전’을 시행했다. 사진 부문에서는 노래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최병현씨의 작품(즐거운 인생)이 최우수상으로 선정됐다. 자서전 부문에서는 은퇴 후 재취업의 보람과 즐거움을 담은 이회승씨의 ‘나 자신이 만든 보람있는 노년의 삶’이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이어 슬로건 부문에서는 활기찬 노후생활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데 중점을 둔 오선희씨의 '나의 힘찬모습, 세상이 배운다'가 최우수상에 뽑였다. 이번 공모에는 각 분야별로(자서전 92편, 슬로건 627편, 사진 90편)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이 응모, 관련 전문가들의 심사를 거쳐 보건복지부 장관상으로 최우수상 3편, 우수상 3편, 장려상 12편을 선정했다. 보건복지부는 6일 오전 11시 프레스센터(20층)에서 시상식을 열고, 상금으로 최우수상은 100만원, 우수상은 50만원, 장려상은 30만원을 수여했다.
2010-12-06 13:19:48정책

“후학들이여, 스승을 비판하지 말고 일깨워라”

메디칼타임즈=이창진 기자 교수직을 떠나 개원가에서 살고 있는 노년의 의사가 후배들을 위한 삶의 지혜를 책으로 발간해 화제이다. 관악이비인후과 최종욱 원장(사진, 전 고려의대 교수)은 7일 자서전 형식의 수필집 ‘지뢰밭으로 걸어가라’(도서출판 소금나무)를 발간했다. 최종욱 원장은 후학에게 당부하는 글인 ‘미쳐야 행복해진다’(8장)를 통해 “단지 머리가 좋고 의대라는 선택받은 학교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면서 “지금까지 모든 것을 주변에서 도와줬지만 이제부터 혼자서 해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젊은 의사들의 ‘홀로서기’를 언급했다. 최 원장은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실수란 어떤 경우에도 용납이 안 된다. 최고는 못 되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환자에게 감동을 안겨줘야 한다”며 “부모와 처가, 그들이 소속된 직장에 자신의 일신을 의지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는 일례로, “소위 말하는 초일류 병원에 근무한다고 해서 교만해선 안된다. 초일류 병원은 제도와 시스템, 건물만 좋다 뿐이지 의사들의 본분인 인술을 베풀기는 어렵다”고 전하고 “소속된 병원이 비록 시골의 초라한 병원일지라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에 감동하고 직장을 변화, 발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주위 환경에 국한된 자만심을 꼬집었다. 이어 “비록 의료 환경은 열악하지만 환경 탓만 하지 말고 선진국의 의료기술과 자신의 실력을 비교하고 갈고 닦아야 한다”며 “일한 만큼의 대가와 보상을 바라기보다 병원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생각해야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더욱 황폐해지고 있는 의사들의 ‘개인주의’도 지적했다. 그는 “의사들은 다들 잘나서 그런지 몰라도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며 이기적인 경향이 많다”고 말하고 “선·후배, 동료들과 서로 의지·협력하고 동참하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라는 ‘1인1기’ 무기를 가져야 한다”며 술기에 입각한 동료와의 상생관계를 강조했다. 최종욱 원장은 특히 선배의사에 대한 후배들의 무조건적인 비판을 경계했다. 최 원장은 “선배들이 부담스런 일을 시키더라도 거절하지 말고 지시한 사항을 시행해보도 문제점과 해결책을 찾아 과감하게 선생을 깨우쳐야 한다”며 “의료계에 몸담고 있는 선생들은 한길만을 달려온 사람들로 가족을 등한시하고 사회에 동참할 줄도 모른 채 오직 전문분야의 외길을 걸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젊은 의학도는 뜨거운 피와 열정, 야망이 있고 새로운 지식의 습득과 응용능력이 빠르다”고 언급하고 “선생들이 비록 가르치는 방식과 방법이 어둔할지라도 어떤 형식으로든 문제를 제기하거나 지적하면 그것을 빠르게 이해하고 감지할 것”이라며 스승에게 맹종하는 의학도가 아닌 가르치고 일깨울 것을 조언했다. 최 원장은 “내·외·산·소 등 기존 26개 전공의 영역이 무너지고 미용성형과 물리치료, 감기 밖에 남지 않을 것 같다”면서 “저수가 체제 아래서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해 답답할 수도 있지만 과감하게 도전하면 지뢰밭을 옥토로 일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돈을 쫓고 있는 세태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피력했다. 최종욱 원장은 끝으로 ‘글을 마치며’에서 “미치도록 앞만 보고 달려왔고 숲보다 나무만 보고 일해 왔는지 모르지만 그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말하고 “대학을 나와 심한 좌절에 빠졌을 때 개원을 한 이후에도 기대를 버리지 않은 많은 분들에게 더 모질고 강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제2인생을 개척하는 자신의 모습을 가감없이 표출했다.
2008-10-07 11:13:21병·의원

차병원 조주연 부원장, 자서전 출판식

메디칼타임즈=이창진 기자 포천중문의대 차병원 조주연 진료부원장은 최근 자신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펴낸 자서전 ‘나는 강물되어’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조주연 진료부원장은 1974년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박사학위 취득 후 산부인과 의사로 봉사하고 헌신하며 살아왔다. 또한 조 부원장은 어려웠던 학창시절 자신이 받은 도움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어 2004년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 역시 게을리 해오지 않았다. 회갑연을 겸한 출판식에서 조 부원장은 “지금껏 살아오며 겪은 어려움들을 다른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덜 겪을 수 있도록 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고 싶다”며사회봉사에 의지를 피력했다.
2008-07-17 09:34:32병·의원

김춘진 의원, 자서전 출판기념회 개최

메디칼타임즈=고신정 기자 대통합민주신당 김춘진(보건복지위) 의원은 오는 27일 오후 3시 국회 의원회과 대회의실에서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개최한다. "함께 하는 그 곳의 건강함을 꿈군다"는 제하의 이번 자서전에서, 김 의원은 유년기와 치과의사 시절 지켜왔던 신념과 국회에 들어온 계기 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아울러 지난 4년 여간 국회와 지역을 오가며 사회적 약자와 농·어민을 위해 펼쳐왔던 의정활동 내용에 대해 자전적 에세이 형식으로 서술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김효석 대통합국민신당 원내대표, 정세균, 장영달 의원등과 서영훈 전 국무총리, 권이혁 전 서울대 총장 등이 참석하여 축사를 할 예정이다.
2007-11-26 15:17:46정책

이우주 전 연세대 총장 별세

메디칼타임즈=안창욱 기자 이우주 전 연세대 총장이 지난 25일 저녁 8시 30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 이우주 총장은 1918년 출생해 1936년 3월 중앙고보를 졸업한 후,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웃을 구제하고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연세의대 전신)에 진학해 1941년 3월 졸업했다. 졸업 후, 모교에서 후배를 가르치며 우리나라 기초의학 발전에 뜻을 둔 고인은 1950년부터 1952년까지 도미해 위스콘신대학에서 약리학을 연구했으며 귀국 후, 1955년 3월 서울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의학박사 취득후 다시 도미해 위스콘신대학 대학원에 진학한 고인은 1958년 약리학 전공으로 Ph.D 학위를 받았으며 이듬해까지 초청교수자격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이에 앞서 1945년 모교인 연세의대 약리학교실 강사를 거쳐 1952년 교수로 승진한 고 이우주 총장은 해외 유학과 연구경험을 바탕삼아 선진 의학지식을 후학에 전수하고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한 연구에 진력했다. 특히 당시 걸음마에 불과했던 국내의학 발전을 위해 의학의 기초가 되는 여러 의학서적을 저술 했는데, 그 중 약리학 분야의 전공서적인 ‘약리학 강의’를 1984년에 저술해 2000년대까지 꾸준히 증보판을 내어왔다. 또한 ‘의학대사전’ 편찬은 국내 의학도에게 큰 도움을 주는 한편 한국의학 체계를 세우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1975년 6월부터 1980년 7월까지는 연세대 제7, 8대 총장으로서 당시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 속에서 대학발전과 확장을 이끌어낸 탁월한 교육행정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국내 의학 및 교육발전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1970), 국민훈장 무궁화장(1979) 등을 수훈했으며 대한민국 학술원 학술상(1983)과 동아의료문화 저작상(1985)등을 수상했다. 슬하에 2남 2녀를 둔 고 이우주 총장은 장남인 병인(연세의대 신경과 교수)과 차남 병석(연세의대 산부인과 교수) 및 사위인 장일웅씨(재미 의사)와 노성훈 교수(연세의대 외과)를 둔 의사가족으로서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고인은 지난 2001년 2월 열린 자신의 자서전 출판회인 ‘연세와 더불어 60년’에서 “뜻을 세우면 그것을 이룰 때까지 꾸준히 노력해 왔고, 웬만한 시련이나 어려움에도 묵묵히 견디는 인내심으로 평생을 살아 왔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고 이우주 총장의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28일 오전이다. 장지는 남한강 공원묘지. (빈소 문의:02-392-0299/392-0699)
2007-04-26 22:11:17병·의원

USB 선물·강연회 사전선거운동 여부 심의

메디칼타임즈=박진규 기자대한의사협회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지제근)는 10일 회의를 열어 전공의협의회가 제기한 박한성ㆍ장동익 회장의 사전선거운동 의혹에 대한 심의를 벌인다. 그러나 당자사들이 사전선거운동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고 있고, 선관위 규정에 사전 선거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가 없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모아진다. 선관위 관계자는 7일 "10일 열리는 회의에서 박한성ㆍ장동익 회장의 사전선거운동 건을 심의할 예정"이라며 "관련자들로부터 전달받은 소명자료와 전공의협의회측에서 넘겨준 증거자료 등을 토대로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박한성 회장은 "지난 1월에 개최한 강연회는 서울시의사회의 일상적인 회무의 일부분이며 오래전부터 계획해왔던 것이라며 특히 강연회에서 의협회장 출마 의사는 물론 공약을 발표한 사례도 없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동익 회장도 6일 출마기자회견에서 국민건강수호연대에서 회원 가입자에 USB를 선물로 준 것일 뿐이라며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장 회장은 "강연이 끝난후 국민건강수호연대에서 단체의 성격을 설명하고 회원 가입신청자에 한해 선물로 주었다"며 "USB 나눠준다고 표 주는 세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지제근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결론을 맺을 것이라고 확언하지는 못하지만, 만약 강연회와 선물 등이 선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전선거운동으로 결론날 경우 선관위 내릴 수 있는 제제는 경고와 윤리위원회 회부 등이 있다. 앞서 대한전공의협회회는 최근 선관위에 이들 후보예정자가 전공의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거나, 강연에 참석한 전공의들에게 USB메모리와, 펜라이트, 자서전 등을 돌렸다며 선관위에 조사를 의뢰했었다.
2006-02-08 11:50:22병·의원

의협 중앙회장선거 혼탁 조짐...조사 착수

메디칼타임즈=박진규 기자의협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3월 의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일부 후보예정자가 전공의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거나, 강연에 참석한 전공의들에게 물품을 돌렸다는 전공의협의회측의 주장과 관련해 전면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선관위는 전공의협의회쪽으로 부터 모 후보가 돌렸다는 USB메모리와, 펜라이트, 자서전 등을 증거물로 입수하고 해당 후보예정자를 상대로 사실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다. 모 후보예정자가 각 대학병원 등을 돌며 강연회를 실시하고 있는데 대해서도 역시 사실확인을 요청했다. 전공의협의회는 24일 저녁에 열린 중앙선관위 4차회의에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와 함께 증거물을 제출했다. 이에 대해 지제근 선관위 위원장은 "전공의협의회 쪽으로 부터 정식으로 공문이 접수된데 따라 증거물 확인, 관련자 소명 등 조사에 들어갔다"며 "특히 물품을 제공한 행위는 명백한 위법인 만큼 증거가 확실하면 관련자를 징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선관위는 25일 발표할 '사전 선거운동 등에 대한 공고'에 따라 위반행위가 중대한 경우에는 윤리위원회의 징계 건의 등 적극적인 제재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또 강연회에 대해서도 사전선거운동의 의혹이 짙은 만큼 이같은 행위가 지속되지 않도록 중지명령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공지사항에 게재 발표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선관위 관계자는 "현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소명절차가 진행중인 만큼 사전선거운동이나 불법행위로 규정하기에는 시기가 이르다"며 "사실확인을 거쳐 선관위의 입장이 정리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이번 선거와 관련해 지난 제33대 대한의사협회 회장선거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과 지침, 그리고 공직선거법 등을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지만, 권한이 매우 미약하고 자체 징계권을 갖고 있지 않아 사실로 확인되더라도 징계수위는 매우 미미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공의협의회 한 관계자는 "이번 진정에 대해 선관위측은 분명한 해명과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불법 선거운동에 대한 시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선관위의 위상과 권한을 지금보다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2006-01-26 06:59:46병·의원

교수들 단골메뉴 '냉면집 사장과 자장면'

메디칼타임즈=안창욱 기자대학병원가에서 냉면집 사장과 자장면 값이 대화의 단골 메뉴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27일 만난 한 대학병원 교수는 얼마전 단골 냉면집 사장과 나눴던 대화를 소개했다. 이 교수는 냉면집 사장이 한달 월급을 묻자 솔직하게 대답해줬더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얼마후 다시 냉면집에서 식사를 하다 재차 물어오자 아예 월급 명세표를 보여줬더니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더라는 것이다. 냉면집 사장은 “나도 한달에 돈천만원은 떨어지는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학병원 주임교수급이면 연봉이 1억원 가량 되지만 소득세 40%를 제하고 나면 월 500만원 남짓이다. 일반 월급쟁이보다야 나은 수입이겠지만 투자비용이나 노동가치, 다른 직종과 비교해 보면 그리 많은 액수도 아니다. 이 교수는 “그렇다고 요즘 교수들이 과거처럼 명예가 있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오죽했으면 서울아산병원 조우신(정형외과) 교수는 최근 출판한 자서전 ‘그리울 땐 그리워하자’에서 “요즘 의사는 분명 3D(difficult, dirty, dangerous) 직종에 들어가고, 그것도 다른 직종은 한 두개의 D만 해당될지 모르나 의사는 3D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하소연했을까. 임상교수들은 환자도 왕으로 모셔야 하지만 특히 외과계 교수들은 이맘때가 되면 제자들까지 섬겨야(?) 한다. A대학병원 한 외과 교수는 “중도에서 레지던트를 포기하려는 전공의들이 많아 붙잡고 모시야 할 판”이라며 “의술을 단순히 경제적 논리와 직결시키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어 교직에 회의가 들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자장면과 의료수가를 비교한 것은 이미 고전이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교수들이 비유법으로 즐겨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같은 자장면이라고 일반음식점에서 파는 것과 호텔에서 먹는 게 같냐는 것이다. S대병원 한 교수는 “왜 재벌 회장과 일반인이 똑같은 돈을 내고 진료를 받는 시스템으로 가야 하느냐”면서 “6인실병상은 매년 10% 이상 적자가 나는데 이를 보존할 수 있는 건 1인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받기를 원하는 계층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서 이익이 나야 재투자도 하고 보다 많은 환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데 정부는 하향평준과 획일적인 서비스만 강요한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2005-07-28 07:21:07병·의원

인술로 검은 대륙 밝힌 '케냐의 어머니'

메디칼타임즈=유석훈 기자 보령제약(회장 김승호)과 의협신문이 공동 제정하는 ‘제21회 보령의료봉사상’ 수상자로 20년간 케냐의 오지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며 ‘케냐의 어머니’로 불린 유루시아(75, 의사) 수녀가 선정됐다. 유루시아 수녀는 지난 68년부터 20년간 케냐의 오지를 돌며 의료봉사 활동을 펼쳐 ‘케냐의 어머니’로 불렸다. 또한, 90년대에는 중국에서 7년간 의료봉사와 중국동포 젊은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등 평생을 해외 의료봉사활동에 바쳐왔다. 현재는 서울 영등포의 행려병자ㆍ극빈자 치료시설인 요셉의원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보령의료봉사상 시상식은 오는 21일 저녁 6시30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다. 아프리카 케냐의 오지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위해 20년 간 의료활동을 실천한 유우금 수녀는 의과대학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던 중, 선교사 멕켄지를 만나 유학길에 오르게 되고 메리놀 수녀회의 외방선교회에 들어가 의료선교를 떠나게 되었다. 유류시아 수녀는 귀국 후 66세의 나이에도 다시 중국 매하구 의료선교에 자원하여 질병과 사투하며 놀라운 봉사활동을 행했다. 72세인 현재는, 극빈자를 위해 무료진료를 해주고 있는 영등포의 요셉의원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2004년 6월 발간된 자서전 '케냐의 어머니 유루시아 수녀'는 미국에 본부를 둔 메리놀 수녀원에서 수녀 지원자들의 교육 교재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 책의 판매수익금은 전액 요셉의원 운영기금으로 전달되고 있다. 한편 ‘보령의료봉사상’은 인술 구현에 헌신한 의사 개인이나 단체를 발굴, 그 공적을 널리 알려 참된 의료인상을 기리기 위한 상이다. 1985년 처음 제정돼 매년 시상되고 있으며 올해로 21회를 맞이했다. #b1#
2005-03-17 20:14:35제약·바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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