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의료법, 국민건강보험법 등 의료관계 법령에 행정처분의 시효가 규정되어 있지 않은 점에 대해 많은 비판이 가해지고 있는데, 최근 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판결이 선고돼 소개하고자 한다.
K원장은 1996년경 자신의 병원에서 일하던 사무장이 무면허의료행위를 하였고 이를 적절히 관리, 감독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선고유예 판결)을 받았고, 이후 관할 보건소는 K원장에 대하여 의료법상 의료업정지처분에 갈음한 과징금부과처분을 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보건복지부는 K원장에 대하여 의료법 위반행위에 따른 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을 내리지 않다가 2007년경에야 6개월 자격정지처분을 내리겠다는 사전통지를 하였고, 그후로도 3년동안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2010년경 결국 의사면허자격정지 2개월의 처분을 하였다.
이에 K원장은 위 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은 신의성실의 원칙에서 파생된 실효의 원칙에 반하여 위법하다고 주장하며,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실효의 원칙'이란, 본래 권리행사의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리자가 장기간에 걸쳐 그의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의무자인 상대방은 이미 그의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믿을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게 되거나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추인케 할 경우에 새삼스럽게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가 될 때 그 권리행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행정법상 일반원칙으로 인정되고는 있으나, 법원은 법적 안정성을 이유로 실효의 원칙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고 아직까지 실효의 원칙을 적용하여 의료관계 행정처분이 취소된 예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 K원장의 사례에서 행정법원은 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이 '실효의 원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하면서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위 사건에서 보건복지부는 2006년경에야 형사판결이 선고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보건복지부가 K원장에 대한 형사판결이 선고된 1996년 당시부터 그 권한을 행사할 기회가 있었는지 여부가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검찰청 예규인 '인ㆍ허가관련 범죄통보 지침'에 의료법 위반 범죄를 주무관청에 통보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관할 보건소에서 형사판결이 선고된 후 과징금부과처분을 내린 사실에 주목하여 보건복지부는 1996년경 검사의 통보로 인하여 K원장의 의료법 위반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것으로 추인하였다.
따라서 처분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행사하지 않고 있다가 그로부터 약 14년이 지난 뒤에야 이루어진 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은 실효의 원칙에 위배되어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행정법원의 판결은 시효가 없는 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에 대하여 실효의 원칙을 적용하여 처분을 취소함으로써 불합리한 행정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게다가 법원은 의료법 위반행위 등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처분을 부과하지 않은 것은 해당 의료인의 잘못이 아니라 담당 공무원의 업무태만 또는 착오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인정하여 이를 행정기관의 불이익으로 돌려 의료법 위반사실을 몰랐다는 점을 행정기관에서 입증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K원장의 사례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지만 시효가 규정되어 있지 않은 의료관계 행정처분의 문제점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위 판결을 계기로 의료인을 장기간 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두는 불합리한 행정관행이 시정되고 조속히 시효에 관한 입법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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