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의협 8개월만에 건정심 전격 복귀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가 31일 전격적으로 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복귀했다.
의협은 건정심에 복귀할 명분이 있다는 입장이지만 애초부터 무리하게 대정부투쟁을 선언했다가 사실상 백기 투항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1일 건정심 회의 시작 전 대화를 나누는 윤창겸 의협 부회장과 복지부 이창준 보건의료정책과장.
의협은 이날 오후 3시 열린 건정심에 윤창겸 부회장과 이상주 보험이사를 참여시켰다. 지난해 5월 포괄수가제 강행에 반발해 건정심을 탈퇴한지 8개월만이다.
의협 송형곤 대변인은 기자 브리핑에서 건정심 복귀 결정을 하게 된 3가지 명분을 역설했다.
송 대변인은 "의협은 건정심을 탈퇴할 당시 건정심 구조 개선, 의정간 대등한 파트너십, 일차의료 활성화를 요구했는데 이런 게 어느 정도 반영됐다"고 밝혔다.
건정심 구조 개선의 경우 박인숙 의원이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해 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고, 복지부가 의료계를 대등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상생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의협은 일차의료 활성화 기조가 마련됐다는 입장이다.
이날 복지부는 건정심에 '일차의료 진료환경개선 추진계획'을 보고했다.
▲의료기관 현지조사 및 현지확인 방문, 조사 절차 개선 ▲진료비 심사, 평가제도 개선 ▲야간, 휴일 진료 불편 해소를 위한 토요 가산 확대 ▲일차의료 기능 강화를 위한 의원급 초재진료 등 수가 개선 ▲의뢰 및 회송 제도 개선 등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의약계 발전협의체 산하에 일차의료 진료환경 개선 TF를 구성해 상반기 중 단기적으로 개선 가능한 사항을 발굴, 추진할 방침이다.
복지부의 이런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건정심 복귀 결정을 했다는 게 의협 입장이다.
하지만 의협이 건정심을 탈퇴한 이후 전면 파업까지 거론할 정도로 강경한 대정부 투쟁을 선언했지만 대정부 요구안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는 점에서 과연 건정심 복귀 조건이 갖춰졌는지 의문이다.
노환규 회장은 지난해 7월 대회원 서신문을 통해 "2012년 안에 모든 의료계가 총궐기해 전문가단체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도록 하겠다"고 분명히 했다.
결국 의협은 대정부투쟁을 선언했고, ▲수가결정구조 개선 ▲성분명 처방 추진 중단 ▲총약계약제 추진 중단 ▲포괄수가제 개선 ▲전공의 40시간 법정근무 제도화 ▲의-정 협의체 구성 ▲병원신임평가 기관 신설(이관) 등 7개 요구안을 복지부에 전달했다.
이와 함께 의협은 복지부가 이같은 7개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총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고, 실제 두차례 토요 휴무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의협은 의정간 협상 창구가 마련되자 대정부 투쟁 일정을 잠정 보류했다. 두달 전 복지부와 협상을 위해 짧게는 3주, 길게는 3개월간 휴폐업을 잠정 유보하겠다고 하더니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건정심 복귀 결정을 내렸다.
7대 대정부 요구안은 어느 순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건정심 구조 개편을 위한 건강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되긴 했지만 언제 상임위에 상정될지, 과연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복지부가 떡고물로 던져둔 '일차의료 진료환경개선 추진계획' 역시 새 정부에서 논의해 나가겠다는 차원이다. 만약 이런 의제 때문에 대정부 투쟁, 전면 파업을 거론했다면 웃음거리다.
의협이 "수가 0.1%를 더 받기 위해 건정심에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이에 따라 의협이 대정부 투쟁 성과에 따라 건정심에 복귀한 게 아니라 복지부가 의협의 건정심 복귀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해 '일차의료 진료환경개선 추진계획'을 발표했다는 게 보다 현실적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건정심에 복귀할 거면 왜 대정부 투쟁, 총파업을 선언하고 토요 휴무에 들어갔는지 모르겠다"면서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라고 꼬집었다.
또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노환규 회장의 밀어붙이기식 회무 스타일이 문제"라면서 "의료계 현안을 복지부에 전달하고 협의하는 게 정상적인데 이런 걸 투쟁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을 버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의협은 조만간 대정부투쟁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도 접을 예정이다.
송 대변인은 "건정심 복귀에 대해 일부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만약 건정심을 탈퇴하지 않았다면 의사들이 (건정심이) 이렇게 불합리하다는 것을 인식했겠느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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