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규 의협 회장(좌), 변영우 대의원회 의장(우)
실낱같은 기대를 걸었던 의료계 내부의 극적 화합 드라마는 없었다.
12일 동시에 진행된 의협 대의원회 운영위원회와 전체이사회 회의에서 대의원회와 집행부는 각각 노환규 회장 불신임안건 상정과 대의원회 해산 안건을 상정하기로 의결했다.
앞서 파국은 막자며 가동했던 집행부-대의원회의 대화 채널도 결국 무위로 돌아간 셈. 집행부와 대의원회가 화합 대신 대결을 선택한 배경과 향후 전망을 짚었다.
파국 선택한 이유? "좁힐 수 없는 이견차"
앞서 집행부는 회원총회 개최를 앞두고 대의원회와 협상을 벌여왔다.
집행부는 회원총회의 개최 목적이 대의원 선출의 공정성 확보인 만큼 대의원 직선제 및 대의원-시도의사회 임원 겸직을 금지하는 정관 변경안 등을 집행부와 함께 공동발의를 할 경우 회원총회를 유보할 수 있다는 카드를 내걸었다.
회원총회에서 대의원회 해산건을 상정하기로 한 만큼 파국으로 치닫는 시나리오 대신 사전 협상으로 실리와 분란 해소의 돌파구를 찾자는 제안이었다.
반면 대의원회의 분위기는 12일 대의원 운영위원회 회의 전까지 '수용 불가' 쪽으로 기울었다. 주요 이유는 정관 개정안 공동발의에 따른 부담감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 운영위원회 위원은 "대의원들도 대의원 선출 과정의 공정성을 확보할 직선제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면서 "다만 세부 방법론에 대한 의견 수렴없이 대의원회가 정관 개정안을 수용하는 것처럼 나서는 것은 적잖은 부담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직선제로 정관 개정시 의학회 소속 중앙대의원들이, 겸직 금지 개정시 시도의사회장단이 영향을 받게 된다"면서 "이들의 의견수렴 없이 대의원회가 자체적으로 공동발의하기는 어렵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밝혔다.
전체이사회 회의 장면
노환규 회장이 대의원회가 공동발의를 거부한 이유를 마치 민의 수렴 절차 구성을 거부하고 개혁에 반대하는 것처럼 비판하고 있지만 이는 실상과 다르다는 것.
이와 관련 다른 운영위원회 위원은 "입법 및 대의원 해산권을 갖는다는 것은 독재시대에나 가능하다"는 뜻을 집행부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집행부가 나서서 대의원 해산건이나 대의원 선출 절차를 손보는 것은 마치 정부가 국회를 해산시키고 입법권을 행사하려 드는 유신시대 독재와 다름없다는 비판이다.
모 시도의사회 회장은 "집행부나 대의원회 모두 일리있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면서 "다만 노 회장이 임기 시작과 함께 개혁론을 펼쳤다면 설득력을 얻었겠지만 비대위에서 배제된 후 갑자기 내부 개혁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점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고 전했다.
결국 협상 결렬을 선언한 대의원회는 19일 임총을 개최해 노 회장의 불신임 안건을 상정하기로 마지막 남은 카드를 던졌다.
막오른 대결, 승기 잡은 노 회장
이번 운영위원회 회의 결과에 대해 노 회장은 다음과 같은 관전평을 남겼다.
"협회의 주인은 회원이므로 회원에게 권리를 이양해야 한다는 집행부와, 회원투표제도는 대의제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으로 독재정권의 유신헌법과 다름 없다고 주장하는 대의원들의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됐다."
불신임안 추진을 '쿠데타'로 규정한 노환규 회장은 일단 법적 타당성에 있어 '승기'를 잡았다.
우선 12일 전체이사회에서 회원총회 개최를 의결한 만큼 개최 근거에 대한 논란에 쐐기를 박았다. 앞서 회원총회 개최가 법적 정당성을 얻으려면 상임이사회 뿐 아니라 전체이사회를 통과해야 한다는 논란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덧붙여 회원총회를 통한 정관 개정에 대해서도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다.
노 회장은 "감사단이 법률검토를 의뢰한 법무법인에서 '민법상 사단법인에 있어 정관의 변경은 사원(회원)총회의 전속 권한이며 이는 강행규정이다'는 의견서를 보내왔다"면서 "회원총회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대의원들에 의해 끌려 내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대의원 운영위원회 회의 장면
그는 "임총에서 (의협 회장을 배제하고) 결성한 비대위 구성이 정관에서 명시하지 않은 권한 행사라는 답변도 얻었다"면서 "이에 따르면 비대위의 기능은 집행부를 자문하는 역할에 한하며 집행부의 기능을 침해하는 경우 이는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고 밝혔다.
모양새만 놓고 보면 정관의 절차 준수를 외친 대의원들이 오히려 임총을 통해 월권을 행사한 셈.
노 회장은 "모 대의원이 추진하는 불신임안도 정당성 없는 쿠데타"라면서 "정관에는 금고형 이상이나 대의원총회 의결 사항을 위반해 회원 권익을 침해했을 때, 혹은 협회 명예의 중대한 훼손시 불신임이 가능한데 본인은 어떤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한편 임총과 사원총회 개최를 전후해 끊임없는 법적 다툼으로 상처 뿐인 대결은 계속될 전망이다.
먼저 의협 집행부는 임총 전 회원 투표를 통해 불신임에 대한 회원들의 생각을 묻겠다는 계획. 대의원회가 불신임을 의결하더라도 전체 회원 투표 결과 불신임 반대 의견이 많다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으로 맞서겠다는 것이다.
회원총회를 통해 대의원회가 해산되는 경우에도 순순히 이를 수용할 지는 미지수다.
모 시도의사회 회장은 "만일 불신임 불발 후 회원총회를 통해 대의원회를 해산시키더라도 대의원회가 순순히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한의협이 사원총회 개최 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소송에 시달린 것처럼 법적 다툼으로 인한 분란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협은 빠르면 14일부터 회원총회와 위임장 관련 내용을 안내한다는 계획. 결국 승자없는 대결에 출사표를 던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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