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독감예방접종 시즌 '10월의 악몽'
매년 10월이면 돌아오는 독감예방접종 시즌. 하루동안 최대 수천명까지도 상대해야 하는 공보의들에게는 악몽과 같다. 메디칼타임즈가 현장을 확인하고 문제점을 짚어본다.
<상> 하루 1천명 상대하는 공보의를 직접 만나다
<하> 현실과 다른 이론 '예진과 관찰'…해결책 없나
진료 시작 시간인 오전 9시가 되기 한시간 전부터 무료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려는 노인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30분이나 남았는데 대기 번호는 100번을 돌파했다.
"오늘은 좀 일찍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요?"라는 보건소장의 한마디.
평소보다 30분 이른 8시 30분부터 독감예방접종과의 전투가 시작됐다.
울산광역시에 있는 한 보건소의 아침 풍경이다.
이른아침 독감 예방주사를 맞기 위해 65세 이상 노인들이 하나둘씩 보건소를 찾고 있는 모습(사진 위)과 예진표 오른쪽 상단 귀퉁이에 쓰여진 대기번호.
매년 10월은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들에게는 공포의 달이다. 매일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천명이 넘는 독감예방접종자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메디칼타임즈는 지난 15일 독감예방접종에 한창인 울산의 한 보건소를 찾았다.
진료시작 전부터 몰려든 65세 이상 노인들은 보건소 밖에 배치된 대기 공간을 채우고도 앉을 자리가 없어 보건소 곳곳에 배치돼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예방접종은 번호표 받기, 예진표 작성, 대기, 체온측정, 의사 예진, 접종, 관찰실대기 순으로 이뤄진다.
"어르신, 번호순서대로 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밖으로 좀 나가주세요. 죄송합니다."
공보의 B씨가 평소보다 이른 예방접종 시작을 직원들에게 알리자 한 관계자가 여기저기 앉아 있는 노인들을 줄 세우기 시작했다.
보건소 관계자는 "그나마 우리 보건소는 외부가 춥기 때문에 실내에서 줄을 서게 하고, 외부에 천막을 쳐놓는 등 다른 보건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방접종 환경이 양호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예방접종이 시작되자 예진과 관찰 단계에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의사의 예진 시간은 열 손가락으로 초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짧았으며 예방접종 후 관찰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의사 예진은 반드시 거쳐야 하고 예방접종 후 30분 정도는 접종장소 머물면서 급성으로 발생할 수 있는 쇼크 증상 여부를 관찰해야 한다.
하지만 밀려드는 사람들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장에서 예진과 관찰은 요식행위에 불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권고사항과 현실과의 괴리는 컸다.
공보의가 10~15초 동안 예진하면 예방접종실에 있는 간호사가 기계적으로 주사를 놓는 행위만 반복되고 있었다. 사람이 몰려들다 보니 3~4명을 모아 놓고 한번에 예진하는 웃지못할 상황도 발생했다.
접종을 마친 노인 대부분은 관찰실에서 대기하지 않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예진을 했던 공보의 B씨는 "공보의는 예진하면서 하루종일 1천명에 가까운 접종자를 상대로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한다. 저녁에는 목이 다 쉬어있을 정도"라며 "접종자에게 필요한 주의사항을 많이 설명해주고 싶어도 꼭 필요한 말만 짧게 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기자가 보건소를 찾은 15일 하루, 예방접종팀이 오전 8시 30분부터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7시간 반 동안 접종한 인원은 950여명. 시간당 126명의 환자가, 1분에 2명의 접종자가 쉬지않고 예방주사를 맞은 셈이다.
공보의 B씨는 "인프라는 부족한데 혜택을 주려고 하니까 공보의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미봉책으로 연명하고 있다. 무료 예방접종의 목적은 공감하지만 현재의 접종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뚜렷한 개선방법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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