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지혜'라는 의미의 아기아 소피아 대성당을 이슬람 모스크로 개조한 것에 대하여 비판적 견해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 성당이 이교의 신앙을 무너뜨리고 세워진 것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상 최고의 교회를 지어 하느님과 교황께 바침으로써 황제로서의 권위을 세우고 죽은 뒤에 구원받기를 원했던 유스티아누스 1세 황제는 제국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하였다. 수만 명의 건설인력은 물론 건축에 필요한 비용이라면 무조건 지원했을 뿐더러 건축자재 역시 최고급을 사용하였다.
심지어는 에페수스에 있는 아르테미스신전과 그리스 델피신전의 기둥까지 뽑아다 쓰는 바람에 신전들이 무너지고 말았다고 한다. 이슬람은 그와 같은 탄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아기아 소피아 대성당을 보존하였던 것이니, 그 안에 있는 성화들을 회칠로 가린 정도는 양해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덕분에 비잔틴 미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미술작품을 현세에도 볼 수 있게 된 것 아니겠는가. 물론 기왕이면 회칠도 하지 않고 보존하여 후세에 전하는 넓은 아량을 베풀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입구에 들어서면 나르텍스라고 하는 성당의 현관에 해당되는 직사각형의 공간이 널찍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황제만이 사용했다는 중앙문을 통하여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왼쪽 절반을 가리는 공사용 비계 때문에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낙성식을 위하여 성당에 처음으로 입장한 유스티아누스 1세 황제가 “예루살렘의 대성전을 지은 솔로몬 당신을 내가 능가했소”라고 찬탄한 심정이 이해된다.
비록 공사용 비계와 성당에 들어찬 관광객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으로 어수선하지만, 높이 떠 있는 중앙돔이 만들어내는 공간과 이를 받치는 두 개의 반원형 돔이 만드는 공간 그리고 좌우로 시립하듯 늘어서 있는 기둥들이 묘한 조화에 점점 몰입되기 시작한다.
특히 중앙의 돔의 아랫부분에 늘어서 있는 40개의 둥근창과 107개의 기둥이 만들어내는 42개의 아치 위에 있는 창문들을 통하여 들어오는 빛이 허공에서 얽히면서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이었나 보다. 중앙돔이 반원의 돔과 만나는 펜던티브에는 여섯 날개를 가졌다고 해서 ‘육품천사’라고 번역되는 세라핌 천사들이 그려져 있다. 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끊임없이 부르는 천사들이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중앙 돔의 천국에서 내려온 황금사슬에 매달린 것처럼 보인다고 했나보다. 머리 위에 띄워놓은 산델리아의 불빛이 오히려 신비한 분위기를 해치는 것 같다. 그래도 유재원은 “아기아 소피아 대성당의 내부는 소우주일 뿐 아니라 하늘과 천상계의 질서가 구현된 공간이다.”라고 적었다.(2)
다만 아쉬운 점은 중앙돔에 그려 넣은 이슬람 캘리그라피와 2층의 벽에 걸린 이슬람 캘리그라피 원판들이다. 술탄 압뒬메지트 1세 때의 것이라고 하는데 직경이 7.5m로 이슬람세계에서 가장 큰 캘리그라피 원판이라고 한다. 모두 8개의 캘리그라피 원판이 걸려 있다. 알라, 무함마드, 무함마드의 뒤를 이은 4명의 정통 칼리파(아부 바크르, 우마르 이븐 알-카타브, 우스만 이븐 아판,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그리고 무함마드의 손자 2명(하산과 후세인)을 나타낸다. 중앙 돔에 그려진 캘리그라피와 문양 아래에는 아야 소피아 사원으로 개조하면서 회칠로 덮인 성화가 숨어있을 것이다.
앞쪽으로 나가면 오른쪽 바닥에서 원형의 대리석들이 조합된 옴팔리온을 볼 수 있다. 그리스어로 배꼽을 의미하는 옴팔리온은 세계의 중심을 상징한다. 중앙에 있는 큰원을 열 두 개의 작은 원이 둘러싸고 있는데, 열두개의 작은 원은 12사도를 나타낸다.
유스티아누스 1세 황제가 아기아 소피아 성당을 만든 이후로 동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들은 바로 이 자리에서 대관식을 거행했다.(3) 성당의 맨 앞 지성소의 예루살렘으로 향한 전면에는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한 창이 있고, 그 아래로는 중심에서 조금 오른쪽으로 치우친 미흐랍이 있다. 미흐랍은 메카쪽 방향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기아 소피아 성당을 축조할 당시만 해도 빠른 시일 안에 완공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기 때문에 내부 장식은 최소화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도안으로 성모와 예수, 성인, 황제, 황후 등의 모습으로 성당 내부를 장식하게 되었다. 아기아 소피아 성당이 아야 소피아 모스크로 바뀌면서 이들 성화를 회칠로 가렸던 것인데, 20세기 들어 시작된 복원작업을 통하여 일부 성화들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회칠 위에 그려진 이슬람 문양을 제거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성화의 복원은 80년이 넘도록 중단되고 있다.
사전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던 필자는 몇 가지를 챙기지 못했지만, 현재까지 복원된 성화 모자이크들을 찾아보는 것도 빠트리지 말아야 한다. 나무위키 ‘하기아 소피아’편에 잘 정리되어 있다. 제일 먼저 황제의 문 위쪽 나르텍스의 박공벽에는 ‘예수 앞에 엎드려 탄원하는 레온 6세’로 알려진 모자이크가 있다.
중앙의 옥좌에는 성경을 든 예수 그리스도가 앉아 있다. 펼쳐진 성경에는 요한복음 20장 19절 “평화가 너희와 함께” 그리고 8장 12절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구절이 적혀있다. 왼쪽에 있는 동그라미에는 기도하는 성모마리아가, 오른쪽 동그라미에는 대천사 가브리엘을 그려 넣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경배하는 사람은 레온 6세 황제(생몰년 : 866.9.19~912.5.11, 재위기간 : 886.8.29~912.5.11)로 알려져 있지만, 콘스탄티노스 7세 포르피로옌니토스 황제(생몰년 : 905.9.2~959.11.9, 재위기간 : 913.6.6~959.11.9)라고도 한다.
레온6세 황제는 비잔틴제국의 기반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기구한 삶을 살았다. 출생의 비밀을 의심받은 그는 아버지 바실리오스1세 황제와 불화를 빚었다. 바실리오스1세가 사고로 죽자 황제에 등극했지만, 세 명의 황후가 잇달아 죽고, 세 번째 황후가 나은 아들마저도 죽는 불행을 당한다. 교회와 갈등을 빚어가면서 네 번째 결혼을 하고 결국은 아들을 얻어 황위를 잇게 한 그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경배하면서 무엇을 청원했는지 짐작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남서쪽에 있는 입구에도 모자이크로 된 성화가 있다. 가운데 옥좌에 무릎에 아기예수를 앉힌 성모 마리아가 앉았다. 성모의 좌우에 있는 동그라미 안에 적힌 ΜΡ와 ΘΥ는 Μήτηρ(어머니)와 Θεού(하느님의)을 나타내는 것으로 성모 마리아임을 나타낸다. 성모의 오른쪽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콘스탄티누폴리스를, 왼쪽에는 유스티아누스 1세 황제가 아기아 소피아 성당을 각각 들어서 성모자에게 바치는 모습을 그렸다.
중앙돔의 앞쪽으로 지성소 위에 있는 반원형 돔의 가운데에는 성모자의 상(Apse mosaics)이 그려져 있다. 6세기 무렵 그려졌다가 성상파괴운동으로 파괴되었던 것을 9 세기 무렵에 복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화는 현존하는 모자이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성모의 키가 무려 5미터에 달하지만 높은 곳에 그려져 있기 때문에 조그맣게 보인다. 2층에 올라가면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볼 수도 있다. 금을 많이 써서 화려하면서도 성모자의 모습은 세속적이지 않다. 원래는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을 받아 신비로움을 더했던 것인데, 조명을 밝히는 바람에 선명하게는 보이지만 신비로운 느낌은 사라지고 말았다.
참고자료
(1) Wikipedia. Hagia Sophia. https://en.wikipedia.org/wiki/Hagia_Sophia
(2) 유재원 지음. 터키, 1만년의 시간여행2, 36쪽, 책문, 2010년
(3) 나무 위키. 하기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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