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을미년이 지나고 2016년 병신년 새해가 밝았다. 의사 면허를 받은 지 서른 두해이고 개업의사로 스물두 번째 해를 맞았는데 그동안 의료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의학이 괄목할 정도로 발전하였고 의료제도도 많이 보완되었으며 우수한 인재들이 의과대학으로 몰려드는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그 동안 의학발전과 정반대로 의사 직업의 위상은 해가 갈수록 실추되어 버렸다. 그것도 의사들이 특별히 잘못하였다기보다 포플리즘에 의존하는 사회변화에 희생이 되어 버린 결과라 안타까움이 더하다,
30년 동안 열심히 내시경검사를 해온 경력으로 내가 받는 비수면 위내시경검사 수가는 45,700원이다. 그것도 인상된 금년 수가로 말이다. 미국과 싱가포르의 비수면 상부위내시경검사 수가는 미화 1,400불로 우리보다 35배 더 받는다. 이런 수가를 받으면서 스스로 미국이나 싱가포르 의사의 1/35에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의사인가 라는 자괴감이 든다.
개정된 아청법에 의하면 의사가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 일반인과 달리 10년 동안 의료기관에 종사하지 못하게 하였다. 문제는 여성 환자가 진료 도중에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것만으로도 의사를 성범죄로 처벌한다는 것이다. 진료 행위의 특성상 불가피한 진찰조차 성범죄로 비화될 수 있는 것이다.
리베이트 쌍벌제도 마찬가지다. 리베이트를 제공하였다는 제약사의 내부문건 만으로 해당 의사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처벌하는 것은 너무나 부당하다. 아청법 성범죄 처리와 리베이트 쌍벌제에서 의사를 편파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해당 의사가 잘못했음을 증명해야하는 '객관적 입증책임'을 지닌 검찰에게 책임이 있는 것을 부당한 처벌에 대항하기 위해 해당 의사가 지닌 '주관적 입증책임'에 의존한다는 것을 법정신에 위배된 것이다.
결국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의사가 아청법으로 면허를 박탈 당하고 리베이트를 받지 않은 의사가 리베이트 쌍벌제로 진료현장에서 내쫒기는 억울한 처벌을 받게 되었다.
오래 전 나는 힘든 내과전공의 과정을 거쳤다. 당시는 내과에 입국하는 과정에서 경쟁이 치열했고 입국 후의 수련 과정도 매우 힘들었다. 수개월 동안 연속으로 퇴근 없이 24시간 근무하며 쪽잠을 자며 묵묵히 감내했다. 힘든 수련을 마치면 전문의사로의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내과를 지원하는 후배의사가 별로 없다 한다, 힘든 내과 수련을 견뎌낼 정도의 미래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내과만의 문제가 아니다. 25개 전문 과목 중 극소수 몇 개 과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과에서 같은 처지라 한다. 많은 전문 의사들이 수련 받은 과목과는 전혀 다른 분야의 진료에 임하고 있다. 자신의 전문과에 대한 애착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전문과의 진료를 고집하다가는 기본적인 생활마저 유지할 수 없는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문제 때문이다.
작년 한해 원격의료 도입과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허용이 이슈였다. 두 가지 모두 현 정권의 규제 기요틴 철폐와 창조경제 실천이라는 명제에 핵심 이슈였다. 의료현실을 잘 아는 나는 직업적 이기주의를 떠나서 국가 통치권자가 가진 정보 스펙트럼이 저 정도로 협소한 것인가 하는 한심한 생각만 들었다.
원격의료 도입으로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발언을 들으며 원격의료가 도입되어 환자들이 돈벌이 희생물로 전락할 것이 연상되었다. 환자를 살피지 않고 하루 수백 건의 처방전을 온라인으로 날려서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아파요 닷컴 사건'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하지 않는가? 돈벌이에 눈 먼 사무장병원이 온갖 비리와 부조리를 토해내어 보건복지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에 사무장 병원보다 훨씬 심각한 원격 의료가 마치 경제를 살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는 양 포장되고 있는 것에 심한 우려를 넘어 참담한 심정을 느낀다.
한의학의 정체성은 의학과 근본부터 다르다, 그런데 의학의 해부학과 생리학 및 생화학에 근거한 의료기기를 근본이 다른 한의학에서 어떻게 활용한다는 것인지 일반인의 상식으로도 이해 불가한 것이다, 결국 한의학이 의료기기를 매개로 근본이 다른 의학의 흉내를 내는 것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근본이 과학적이지 않은 한의학을 과학화하라고 부르짖는 것 자체가 철저하게 비과학적인 인식이고 발언이다.
의사들은 이제 존폐 기로에 섰다. 정당한 진료 행위조차 성범죄 논란에 자유로울 수 없고 진료에만 매진함에도 리베이트 수수 명단에 이름이 올라 처벌 받고 의료진료 현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환자들이 돈벌이 목적의 현란한 원격의료 홍보에 속아서 온라인 의료로 휩쓸려갈 것이고 의사가 검사를 권하면 환자는 이미 한의원에서 검사를 받았다고 의사의 검사 권고를 거절하는 현상도 나타날 것이다. 의료 현장에는 부정확한 검사 결과물들이 난무하며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의료 환경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속속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의사들이 의사협회로 하여금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작금의 사회를 향해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려주기를 간망하지만 의사협회는 무기력하게 회원과 정부 사이에 눈치만 보고 있다, 개혁 성향의 젊은 의사들은 물론 보수 성향의 나 같은 중년 의사들까지 의사협회에 불만을 토해내고 있다. 의사들의 요구는 밥그릇 사움이 아닌 제대로 된 의료 환경 구축에 있음에도 의사협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일종의 책임방기이다,
2016년 병신년 새해가 의료환경 재창조의 원년이 되야 한다,
의사협회는 미온적인 자세에서 탈피하여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패배주의에 찌든 의사 회원들을 다시 일깨워야하고 의료의 실체를 망각한 채 의료 상업화에 혈안이 된 정부와 통치권자에게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충고와 경고를 가해야 한다, 이것은 회원이 의사협회에 내린 소명이고 국민 건강을 보호해야 하는 의사협회의 직분이기도 하다, 회원의 소명과 조직의 직분을 망각한 단채라면 존재의 이유가 없다,
의사 각자도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진료하기조차 빠듯한 시간이지만 환자들에게 원격의료와 한의사의 의료기 사용이 얼마나 당신들의 견강에 위험한 것인지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정책 도입 과정에 연관된 사이트나 의견수렴에 들어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의사 십만 명이 하루 오백만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으니 개별의사의 작은 노력이 모이면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원격의료 및 한의사의 의료기사용 문제는 환자들의 안전성이 확보되기 전까지 전면 보류하도록 결정되어야 한다. 억울하게 아청법과 리베이트 쌍벌제로 처벌 받는 의사가 없어야하고 왜곡된 전문과에 대한 대책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전공의들의 수련 환경도 다른 산업의 근로자와 유사한 처우로 개선되어 더 이상 수련의사가 병원의 돈벌이 도구로 과용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또한 적자에 허덕이는 다수의 의료기관을 위해 금년에는 수가 현실화 문제를 논의해야 하고 편파적인 수가 결정 구도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구조도 바뀌도록 압력을 해야 한다.
국민들 호주머니만 털어가는 완전의약분업을 개선해야 하고 의료시장 개방에 대비하여 강제지정제의 단점을 하루빨리 바로 잡아야 한다.
직역에 상관없이 전체 회원을 깨우고 당위성을 입증할 명분을 내세우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의사 각장와 의사협회가 마냥 패배주의에 빠져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다면 아무도 의사의 몰락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 결과 의사는 물론 이 땅의 환자들은 둥지를 잃고 마는 것이다,
2016년 병신년 새해에는 의사회원들, 그리고 의사협회가 열성을 다하여 준비하여 충만한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의료 환경 살리기에 나서기를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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