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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생이 바라본 환자와 의사, 그 안의 공기

마새별
발행날짜: 2016-05-04 11:53:32

의대생뉴스=경희대 의학전문대학원 3학년 마새별

병원 실습을 한 지 어느덧 한 달 남짓한 시간이 지났다. 이젠 학교보다 병원으로 나서는 길이 더 익숙해졌고, 수업을 듣는 것보다 환자를 만나는 일이 더 일상처럼 느껴진다.

초반에는 이것 저것 눈치 보고, 내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병원에 있는 시간동안 내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래서 별다른 일이 없는 날에도 퇴근하고 나면 그대로 지쳐서 쓰러져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디에든 자리에만 앉으면 꾸벅꾸벅 졸았고, 심지어 환자가 누워 있는 병동의 침대가 그렇게 편해보일 수가 없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이런 병원 생활에 익숙해진 것일까. 매번 가던 곳이지만 병원 안에서 보이는 것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내과 의국이 어디에 있는지, 교수님들이 어디쯤 회진을 돌고 계신지, 담당 치프 선생님께서 어떤 분이실지 등등 병원의 장소나 스탭들에 대한 것들이 주된 관심사였다.

환자들을 만나 뵙고 문진하고 살피는 것이 학생의사에게 주어진 주로 해야할 일이었지만, 환자분들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기에는 나의 지식도, 내공도 너무 부족한 상태였다.

교수님들과 레지던트 선생님들은 줄곧 환자를 자주 만나서 자세히 문진도 하고 대화를 나눠 보라고 하셨지만, 나는 매번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다는 걱정과 우려 때문에 선뜻 환자를 보러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입원한 환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면 늘 내 마음도, 발걸음도 무거웠다.

"똑똑".

가끔은 이렇게 노크를 하고 환자가 있는 병실에 들어설 때, 환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이길 바라기도 했다.

나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는데, 마침 환자가 그 시간에 없으면 환자를 보지 못한 정당한 이유가 저절로 생긴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스스로 환자 앞에서 작아진 나를 부족하고 초라하다고 여기던 생각이 변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회진을 돌거나 교수님의 외래를 참관하면서 그동안은 알지 못했던 어떠한 '공기'를 느끼게 된 이후부터였다.

그것은 내가 환자도, 직접 대면하는 의사도 아닌 그 두 대상을 바라보는 관찰자적 위치에 있었기에 쉽게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내가 느낀 '공기'라 함은 의사와 환자가 만나 함께 형성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기분 좋은 그 어떤 것은 아니었다.

환자들은 보통 두 가지 감정을 갖고 의사를 만나게 된다. 환자가 느끼는 고통을 의사가 덜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첫번째 감정이고, 아무래도 이것이 누구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주된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환자는 동시에 불안함과 불편감을 안고 온다. 혹시나 큰 병이 아닐까, 치료 받지 못하는 질환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을 느끼지만 이에 대해 편히 터놓고 의사에게 이야기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불편감을 가진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의사는 내 병을 치료해 줄 고마운 사람이지만 동시에 그런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거나 말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어려운' 존재라고 환자가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내가 환자로서 병원에 갈 때도 이런 감정을 느껴 보았고, 또 내가 하는 말을 딱딱 끊어가며 차갑게 대응하는 의사들을 만났던 경험이 이런 불편감을 더 공고히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학생의사라는 관찰자적 입장에서 환자의 기대감과 불편감이 만드는 의사와의 오묘한 거리감을 꽤나 여러 번 확인하게 된 것이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환자가 의사를 만나 첫 인사를 하는 시점부터, 아니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설명할 수 없는 그 '공기'가 생겨난다.

환자는 외딴 섬처럼 의사 앞에 놓인 동그란 회전 의자에 앉고, 무엇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이 공기는 진료를 보는 내내 지속될 수도 있지만 꽤나 빨리 깨져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몫은 의사에게 있다.

"환자분,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같은 인사지만 의사의 표정과 말투, 손짓과 행동에 따라 대응하는 환자의 표정과 말투가 달라진다.

'아, 이 사람에게는 내 힘든 점과 어려운 점을 터놓고 이야기해도 되겠다.'라는 판단이 들면 처음에 생겨 났던 그 불편한 공기는 금새 사라져 버린다.

가끔 차가운 선생님들 앞에서 어렵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환자 분들은 나를 흘끗 흘끗 쳐다보시곤 했는데, 특히나 눈을 마주치시지 않는 선생님들을 대할 때면 더더욱 그랬다.

환자분들은 뒤에 있는 나와라도 눈을 맞춰 가며 이야기하고 싶어하시는 것 같았고,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고 편하게 말씀하셨으면 하는 생각에 가끔씩 눈으로 웃으며 공감해 드리려 노력했다.

외래와 회진에 참여하면서 질환에 대한 접근법이나 치료보다 더 많이 보고 배운 것이 바로 환자를 대하는 법이었다.

스스로 힘들어하는 환자를 어떻게 돕고, 의사를 힘들게 만드는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며, 언제 맺고 끊어야 하는지와 같은 관계에 대한 자세를 많이 배웠다.

그리고 환자분들은 권위 있는 교수님들의 진료도 필요하지만, 나처럼 편하게 말동무를 해드릴 수 있는 학생의사의 방문도 생각 이상으로 반갑게 맞아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환자를 만나러 갈 때 질환에 대한 지식만큼 내가 중요시 여기고 준비해가야할 것은, 환자와 내가 더 가깝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 불편한 공기를 없애는 애정 어린 관심과 말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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