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응급 콜이 울렸다. 뇌사자가 발생했다는 호출이다. 지체할 수 없었다. 가족을 뒤로한 채 즉각 병원을 향해 출발했다.
그는 외과의사도 간호사도 아니다. 하지만 뇌사자가 발생하면 병원으로 달려간다. 그는 이화의료원 원목을 맡고 있는 이강진 목사(68년생·정동제일교회 파송)다.
원목의 역할은 원내 예배 이외에도 뇌사판정위원회, 호스피스 위원회, IRB임상시험위원회 등 원내 다양한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객관성과 윤리적 선택을 위해 원목이 한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강진 원목이 기도실에서 기도를 하는 모습
"뇌사자 발생 호출이 오면 즉각 회의를 실시합니다. 뇌사판정위원회를 통과해야 뇌사자 기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긴박할 수 밖에 없죠. 그래서 연휴에도 늘 출동할 준비를 합니다. 휴가도 가능한 멀리 안 가려고 합니다."
교회 목사보다 한가로울 것 같지만 사실 병원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교회에서 하지 않는 일까지 오히려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그의 주요 일정은 원내 예배. 아침 직원 기도회부터 매주 수요일 오전, 오후 예배, 화요일 정오 교직원 예배, 금요일 오전 어린이 예배, 일요일 오전 정신과 병동 예배, 주일 예배 등을 준비하다보면 하루도 빠짐없이 설교를 준비해야 한다.
또한 이 목사는 병원의 의료진 못지 않게 어쩌면 그 이상으로 원내 깊숙히 그의 손길이 안미치는 곳이 없이 바쁘다.
그는 수시로 병동을 찾는다. 수술 전 기도를 통해 환자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기 위해서다.
"간혹 기도를 위해 환자를 찾아가보면 병을 치료하러 입원을 했지만 그와 무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하는 분도 있어요. 그들에게는 대화상대가 되어주는 게 저의 역할이죠."
이 목사는 병원에서 터지는 크고 작은 사건 하나하나까지 챙겨야한다.
얼마 전 크게 홍역을 치른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이후 신생아실을 재정비하고 재오픈할 때 그 앞에 기도문을 써붙였다.
"다신 일어나선 안 되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또 이를 통해 교훈을 얻고 또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데 밑거름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기도문을 정리했어요."
그는 이화의료원의 전신인 '보구여관'의 정신이 치료받기 어렵고 열악한 이들 즉, 어린이와 여성을 위한 진료를 하자는 것인데 그 부분에서 큰 상처를 받아 더욱 속상하고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이 목사는 병원과 의료진, 그리고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입장을 모두 공감해야 하는 입장으로 어느 한쪽을 대변할 수도 없는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강진 원목
그가 이화의료원에 처음 목사로 오던 2005년, 그해에도 그를 당혹스럽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의과대학 학생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 전도유망한 의대생의 극단적인 선택에 그는 충격을 받았다. 장지까지 직접 함께 하며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했다.
그 이후로도 병원이 양화대교 인근에 위치한 탓인지 다리 위에서 몸을 던지는 이들이 실려왔고, 생존한 경우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처음 병원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막연하게 병원은 생명을 살리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첫해에 그 사건 이후로 죽음과 생명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버지에 이어 형님은 물론 자신까지 2대째 목사를 업으로 삼고있는 이강진 원목. 그는 집과 같은 공간인 교회를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선교활동을 해보고 싶어 원목의 길을 택했지만 후회는 없을까.
"병원은 매일 바쁘고 수시로 사건사고가 터지는 곳이지만 불안한 환자의 손을 잡아주고 함께 기도해 줄 수 있어서 원목의 길에 후회는 없습니다.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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