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법은 질병의 예방·진단·치료·재활과 출산·사망 및 건강증진에 대하여 보험급여를 실시하고 있는데,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 등은 요양기관으로 당연 지정된다. 그리고 요양기관에서 실시한 요양급여에 대한 비용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보험금으로 지급하고 있다(국민건강보헙법 제41조, 제47조).
다만,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등 면허를 가진 사람에게만 의료기관 개설을 허용함으로써 엄격한 자격주의를 택하고 있고, 학교법인, 의료법인 등 비영리법인이 아니면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없으며, 의료인이라 하더라도 두 개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는 등 무거운 수준의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위와 같은 엄격한 자격주의로 인해, 비의료인들이나 영리법인이 병원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탈법적인 수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보건 당국은 이런 병원을 사무장병원이라 부르며 지속적인 감시와 처벌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 다만, 과거에는 사무장 병원의 제재와 관련하여 고용된 의료인의 자격 정지, 의료법에 따른 관련자들의 형사처벌 등이 주로 이슈가 되어 왔다면, 최근에는 병원에서 수령한 요양급여의 사기죄 성부, 요양급여 환수 문제가 더 큰 이슈로 다뤄지고 있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논의가 있게 된 히스토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작은 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 이었다. 2000년대부터 주로 식품분야에 중점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생활협동조합’이 어느 순간부터 의료 서비스를 하겠다고 설립인가를 받기 시작했는데, 의료생협이 표면상으로는 비영리법인이기에 요건만 갖추면 병원 설립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실제 지역 사회에 이바지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하기 위한 우회수단으로 많이 사용되어 왔던바, 당국에서는 그 문제점을 인지하면서도 이를 단속할 수단이 없어 허위·부당 청구에 대한 감시 등 간접적인 제재만을 해왔다. 그러던 중 검찰에서 일부 의료생협의 자본조달, 지배구조 등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한 후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하면서 본격적인 단속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설립 과정이 불투명한 많은 의료생협들이 일종의 사무장병원으로 처벌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명한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기에 이른다.
대법원 판례의 취지는, 비의료인이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하여 개설한 의료기관이 마치 의료법에 의하여 적법하게 개설된 요양기관인 것처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청구하여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받을 경우, 사기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 판결에 따르면 소위 사무장 병원을 운영하는 동안 수령한 국민건강보험금은 모두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청구한 것이 되어 환수 대상이 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단순히 명의대여로 인한 자격정지, 의료법상 가벼운 형사 처벌을 받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병원을 운영하는 동안 얻은 수익금을 모두 반환해야 하는 무거운 제재를 받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실제 의사가 진료를 한 것은 사실인데 너무 과도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그 타당성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다.
이후 단속의 시각은 자연스럽게 ‘네트워크 병원’ 으로 옮겨졌다. 사무장병원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지만, 의료법이 금지하는 방법으로 개설된 의료기관이 대거 운영 중이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의료기관은 1명의 의료인이 MSO, 컨설팅 계약의 형태를 통해 사실상 여러 개의 의료기관을 지배하는 형태가 주된 단속의 대상인데, 이들 또한 ‘속임수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를 수령하고 있다는 논리에 따라 공단의 부당이득금 환수 처분이 이루어졌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대법원은 네트워크 병원에 대해 사무장 병원과 다른 판결을 내놓았다. 비록 의료법 제33조 제8항 본문(중복개설금지 조항), 제4조 제2항(명의차용개설금지 조항)은 의료인이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는 것 및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하는 행위를 제한하고 있으나, 그 의료기관도 의료기관 개설이 허용되는 의료인에 의하여 개설되었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고, 또한 그 의료기관의 개설 명의자인 의료인이 한 진료행위도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한 요양급여의 기준에 미달하거나 그 기준을 초과하는 등의 다른 사정이 없는 한 정상적인 의료기관의 개설자로서 하는 진료행위와 비교하여 질병의 치료 등을 위한 요양급여로서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면, 의료인으로서 자격과 면허를 보유한 사람이 의료법에 따라 의료기관을 개설하여 건강보험의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에게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한 요양급여를 실시하였다면, 설령 이미 다른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고 있는 의료인이 위 의료기관을 실질적으로 개설·운영하였거나,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위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한 것이어서 의료법을 위반한 경우라 할지라도, 그 사정만을 가지고 요양급여비용 상당액을 환수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8도10183 판결).
결국, 사무장 병원과는 달리 1인 1개소 원칙에 위반한 네트워크 의료기관은 요양급여 환수처분까지는 이르지 않는 것으로 정리가 되고 있는 분위기다. 다만, 사무장 병원의 요양급여 환수의 타당성, 그 범위 등에 대해 크고 작은 분쟁이 잇따르며 변화의 조짐은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또 한 번의 의미 있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어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다(2020년 6월). 비의료인이 개설한 사무장 병원이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요양급여를 전액 환수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대법원은, 요양기관이 실시한 요양급여 내용과 요양급여 비용의 액수, 의료기관 개설ㆍ운영 과정에서의 개설명의인의 역할과 불법성의 정도, 의료기관 운영성과의 귀속 여부와 개설명의인이 얻은 이익의 정도, 그 밖에 조사에 대한 협조 여부 등의 사정을 고려하여 요양급여를 전액 징수할지, 아니면 일부를 징수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 없이 의료기관의 개설명의인을 상대로 요양급여비용 전액을 징수하는 것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 것으로 재량권을 일탈ㆍ남용한 때에 해당한다고 했다(대법원 2020. 6. 4 선고 2015두39996 판결).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사무장 병원의 경우 그 불법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다양한 조건들을 검토하여 판단해 보아야 하고, 그 불법성의 정도에 따라 개별 사건별로 환수 비율과 금액이 결정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현재도 요양급여의 환수와 관련한 다양한 소송이 진행 중이다. 현재로서는 법원의 판결이 어느 방향으로 확정될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최소한 진료에 최선을 다한 원장이 불의의 피해를 입게 될 가능성은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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