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고령화에 따라 서맥성 부정맥 환자가 급증하면서 이에 대한 대표적인 치료법인 이식형 심박동기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1952년 최초로 경피 이식형 심박동기가 개발된 이래 단실에서 양실로 확대되고 조율 반응이 추가된 것은 물론 MVP(managed ventricular pacing), MR(magnetic resonance)까지 적용되며 기술 발전을 이뤄내고 있는 것.
또 하나 눈에 띄는 추세는 역시 소형화다. 말 그대로 '이식형' 기기인 만큼 얼마나 작게 만드는지가 삶의 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2cm가 조금 넘는 크기의 손톱만한 심박동기가 나왔을때 의료진의 시선이 쏠린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특히 이 심박동기는 혈관속으로 넣어야 하는 전극선을 모두 없애는 파격적 기술로 더욱 이목을 끌었다.
경피 이식형 심박동기의 가장 큰 문제가 이식을 위한 피부 절개로 인한 감염과 전극선으로 인한 혈관 합병증이었다는 점에서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19개 국가에서 진행된 MARVEL 연구를 보면 이 기기는 이식 성공률 99.2%를 기록했고 과거 이식형 심박동기와 비교해 주요 합병증 비율은 63%(HR 0.37)나 낮추는 효과를 보였다.
이 기기가 마침내 국내에 지난해 2월 임상 현장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과연 이 혁신 기기는 국내 의료진과 환자의 마음도 사로잡는데 성공했을까.
대한부정맥학회 춘계학술대회를 맞아 국내에서 초소형 심박동기 이식 건수로 손꼽히는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차명진 교수를 만나본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때 마침 그는 이번 학회에서 이 기기에 대한 사용 경험을 공유했다.
Q. 먼저 서맥성 부정맥 질환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실제 우리나라 현황은 어떤가?
일단 서맥은 심장 박동이 너무 느리게 뛰는 것을 의미하는데 보통 60회 미만인 상태를 서맥으로 진단한다. 노령 질환의 하나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눈에 띄게 늘고 있는 추세다. 대표적인 서맥성 부정맥인 동기능 부전의 경우 2017년 9439명에서 2021년 1만 2959명으로 늘었고 완전방실차단 환자도 2017년 8825명에서 2021년에는 1만 1884명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이에 맞춰 서맥성 부정맥의 대표적 치료법인 이식형 심박동기 삽입 건수도 분명하게 증가하고 있다. 국내 자료를 보면 이식형 심박동기 삽입술을 받은 환자는 2017년 3781명에서 2020년 4954명으로 30%가 넘게 증가했다. 심장내과 의료진들이 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다.
Q. 이번 학회에서 이식형 심박동기 사용 경험을 공유했는데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면?
이식형 심박동기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서맥성 부정맥의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 서맥성 부정맥이 생기는 가장 큰 원인이 심장을 뛰게하는 생체 전기 자극 시스템이 손상된 경우이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으로는 이를 되살릴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외부 전기 자극이 필요하다. 쉽게 말해 핸드폰 전원이 나갔을 경우 보조 배터리를 끼워주는 개념으로 보면 될듯 하다. 이 보조 배터리를 이식형 심박동기라고 보면 된다.
그만큼 사실 심박동기의 구조는 단순하다. 필요할때 전기 자극을 줄 수 있는 장치와 배터리만 있으면 된다. 남은 것은 이제 얼마나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느냐. 얼마나 필요한 기능을 작게 만드느냐가 기술력이다. 지금까지 하드웨어 본체와 전극선, 배터리에 대한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가장 최신화된 기술은 전극선을 없애고 크기를 손톱크기만큼 까지 줄인 초소형 미니 심박동기다. 이에 대한 임상 적용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 관련 연구와 리얼월드데이터 구축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Q. 초소형 미니 심박동기에 대한 세부 정보가 궁금하다.
사실 의료진들도 초소형 미니 심박동기라는 표현을 쓰지만 정확한 명칭은 무전극선 심박동기로 현재 임상에 적용 가능한 기기는 메드트로닉의 '마이크라(Micra)'가 유일하다. 이번 학회에서 진행된 세션도 국내에서 이뤄진 첫번째 적용 사례 공유다.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가장 중요한 특징은 크기가 2cm내외로 초소형화 됐다는 것. 또한 기기와 심장을 잇는 전극선을 없앴다는 것 두가지다.
지금까지 이식형 심박동기는 말 그대로 '경피적' 이식을 필요로 했다. 피부를 절개해 피하 지방과 뼈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심박동기를 이식한 뒤 혈관으로 전극선을 이동시켜 심장에 연결하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기기와 전극선이 좋아져도 하드웨어 시스템 자체로 인한 문제점들을 피할 수 없었다. 일단 피부를 절개해 기기를 십입해야 하는 만큼 감염과 협착 문제를 피할 방법이 없고 혈관에 전극선을 넣는 만큼 이에 대한 합병증도 따라왔다. 이를 극복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 끝에 나온 제품이 바로 전극선을 없애고 경피적 이식 방법을 탈피한 기기가 마이크라로 볼 수 있다.
Q. 그렇다면 이식형 심박동기가 마이크라로 대체되는 추세로 봐도 되나?
결론적으로 아니다. 분명 기존 기기 대비 크기를 90% 이상 줄이고 전극선을 없앤 것은 획기적 기술이지만 아직까지 한계는 존재한다. 일단 개발된지 얼마 되지 않아 적응증이 한정적이며 비용 문제가 존재한다.
일단 마이크라는 단방 조율 기기다. 심장의 전기 시스템은 위치에 따라 역할이 다르다. 기존의 기기들이 위에 하나 아래에 하나 전극선 두개를 가지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마이크라는 아직까지 위, 아래 두개 모두에 삽입할 수는 없다. 양방 조율이 필요하지 않은 환자 예를 들어 심방세동 등에 적합하다.
또한 초소형 기기로 제작된 만큼 배터리 효율이 다소 떨어지는 측면도 있다. 이에 맞춰 배터리 소모가 크지 않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매우, 자주 전기 자극이 필요한 환자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미. 결론적으로 배터리 소모가 많이 소요되지 않으면서 양방 조율이 필요하지 않은 환자가 최적의 적응증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선별 급여 치료 항목에 지정돼 있어 본인 부담금이 보험 상한가의 50%에 달한다는 것도 허들 중 하나다.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안타까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최적의 적응증에 해당한다 해도 환자들이 비용에 부담을 느끼면 의료진 입장에서도 적극적으로 설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Q. 급여 문제는 혁신 의료기기라면 다 안고 있는 문제인데.
사실 심장내과 의사로서 너무나 안타까운 부분이라 강조했다. 사실 마이크라가 처음 임상에 적용됐을 때만 해도 아까 설명했던 딱 그 적응증에 한해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외 사례들도 그렇고 직접 이 시술을 하다보니 환자에게 이득되는 부분들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
합병증 문제도 더 이상 강조할 필요조차 없는 부분이다. 과거 기기들도 기술 발전으로 합병증 비율이 줄고 있지만 피부 절개로 인한 감염 가능성과 전극선으로 인한 혈관 합병증은 아무리해도 피할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문제중의 하나다. 하지만 마이크라는 이러한 하드웨어 시스템으로 인한 합병증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이미 비교할 수 없게 차이가 나고 있다.
순응도도 마찬가지다. 과거 경피 이식형 심박동기의 경우 하드웨어 크기가 크다 보니 마른 환자의 경우 피부 위로 튀어 나와 심미적으로 안좋을 뿐더러 피부 합병증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또한 환자 대부분이 고령인 만큼 수술적 요소가 들어가는데 대한 부담감도 매우 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기능 저하다. 어쨋건 심장 근처 흉부 근육과 팔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모션(움직임)이 일어나면 기계적 손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굳이 입원하지 않은 환자들도 완전히 기기가 세팅될때까지 왼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하지만 환자들 중에 왼손잡이도 많고 생업과 연결돼 있는 사람도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비용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 의사로서는 안타까울 수 밖에 없지 않겠나.
Q. 국내에도 기기가 도입된지 1년이 지났다. 리얼월드데이터는 어떤가.
작년 2월에 국내에 들어왔고 기기가 들어오면서부터 다기관 연구를 시작해 진행하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속한 서울아산병원이 가장 규모가 큰 만큼 개략적 데이터를 보면 글로벌에서 진행된 연구들과 거의 유사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MARVEL 연구 기준 이식 성공률 99.2%, 6개월간 합병증 비율 4%).
우리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데 일본과 중국의 연구들을 봐도 대부분 성공률과 합병증 비율이 매우 유사하다. 현재 순조롭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조만간 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눈에 띄는 부분은 적응증이 크게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임상 적용이 시작된 미국과 유럽 등을 보면 이미 고령 환자를 넘어 젊은 환자들로 연령 적응증이 확대되고 있다. 또한 양방조율이 필요하다고 해도 배터리 소모량이 많지 않은 환자들도 안정적이게 이식했다는 보고도 이어지고 있다. 분명하게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는 시그널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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