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26년 3월 시행 예정인 '의료돌봄 통합지원법'을 앞두고, 한의계가 통합돌봄 체계 내 한의사의 역할 정립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8일 '돌봄통합지원법과 한의약의 역할' 국회 토론회에서 한의계는 통합돌봄에서의 한의사 참여 필요성을 강조하며, 실제 진료 데이터와 현장 경험을 통한 효용성을 조명했다.
■ "의료취약지서 역할 큰 한의사…통합돌봄도 가능"
동신대학교 한의대 김동수 교수는 발제를 통해 한의 방문진료가 2022년부터 급속히 증가해, 진료 건수·금액은 2.6배, 환자 수는 3.6배 늘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충남·전남·경남 등 의료취약지역에선 전체 방문진료의 90% 이상을 한의진료가 차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에서도 한의사 참여 비율이 높다고 강조했다. 전국 195개 대표센터 중 30% 수준인 57개소가 한의원으로, 수도권보다 지방에서 비중이 더 크다는 것. 이렇게 의료취약지역일수록 한의 진료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주장이다.
특히 김 교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시범사업 평가에서도, 한의 방문진료를 받은 환자군의 진료비 및 외래 내원 일수, 진료 일수 모두 유의미하게 감소했다고 말했다.
이는 일차 의료 수준에서 한의 방문진료가 의료비 절감과 만성질환 관리에 일정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평가다. 진료 항목도 침·뜸 같은 비약물 시술 외에 혈압·혈당 모니터링, 일상생활 보조 상담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평균 방문 시간도 82분에 달해 상당한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를 근거로 통합돌봄에서 한의사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하며, 의료취약지역에서는 일차 의료 인력으로의 전략적 활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돌봄지원법에 명시된 한의사 역할이 실제 정책 설계에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의료취약지역의 경우 의원 자체가 없다 보니, 완전 와상 상태인 1등급이나 중증 환자인 2등급까지 한의 재택의료센터로 유입되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한의과에 대한 통증 치료 이미지 때문에 만성질환이나 통증 관리 요구가 많지만, 실제로는 노인병 증후군, 마비나 구축, 일상생활 기능 보조 같은 문제 해결 사례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돌봄 영역에서 보건의료의 핵심 역할은 기능 저하 노인의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시설 입소를 지연시키고, 사망 위험까지 낮추는 효과가 가능하다"며 "WHO 역시 전통의학의 과학적 근거 확보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고, 지금도 한의학을 포함한 보완대체의학의 근거 수준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 부천 재택의료 한의사가 주도 "이미 의·한 협진 중"
이어진 발제에서 부천시한의사회의 김범석 회장은 지역 기반 사례를 중심으로 한의 참여의 실효성과 필요성을 강조했다. 부천시는 인구 77만 명 규모의 도시로, 현재 5개소의 재택의료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이 중 3곳이 한의원이 운영 주체다. 단순한 진료 참여를 넘어선 지역 내 주도적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회장은 의사와 한의사가 동일한 대상자에 대해 각기 방문하고, 이후 사례 회의를 통해 진료 방향을 조율한 협력 경험을 소개했다. 이를 통해 정신적·신체적 장애를 함께 지닌 재택 환자를 수년간 수백 회에 걸쳐 방문 진료하며 건강 상태를 호전시켰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기존의 의료 시스템으로는 접근이 어려웠던 대상자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기능을 회복시킨 것은 통합돌봄 체계에서 한의사의 역할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다.
다만 이 같은 협업은 제도적 기반 없이 민간의 자발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특히 한의사 배정 환자 기준이 없어, 공무원들이 배정 자체를 꺼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현장에서는 협업이 제한되거나 누락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
결국 의·한 협진이나 민관 연계 거버넌스를 제도화하지 않으면, 한의사의 통합돌봄 참여는 지속성과 일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런 문제들이 의·한 협진 인센티브 제공 등 제도적으로 보완돼야 한다는 요구다.
김 회장은 "부천시는 재택의료센터가 5개 있는데 이 중 3개가 한의원이고, 저희가 한 달에 200건의 방문진료와 300건의 방문간호를 시행하고 있다"며 "의사와 한의사가 같은 환자를 교차 방문하고, 사례 회의를 통해 진료 방향을 조율하는 협진을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 선택에 따라 협진이 필요한 상황이 많지만, 공무원들은 어떤 환자에게 한의사가 가야 하는지 판단을 어려워해 배정이 지연되거나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며 "이런 협력이 지속되려면 민간의 자율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인센티브를 주거나 시범사업 차원에서라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한의계 요구 수용 가능할까 한의약진흥원 "고민 필요"
이어진 토론에서 정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한의약진흥원은, 정부 정책과 공약 흐름을 바탕으로 한의계에 필요한 대응 전략을 정리했다.
이은경 정책본부장은 현재 복지부가 노인 주치의제 및 재택의료 고도화를 준비 중이며, 관련 공약 대부분이 이전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단골의원 중심의 주치의제' 도입과 함께, 한의 주치의제의 참여 방식이나 별도 도입 여부가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그는 주치의제, 재택의료, 만성질환관리 사업이 통합되면서 한의계가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지불제도, 인력 양성, 정보 공유 체계, 업무 범위 조정 등 다층적인 제도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는 진단이다. 이와 함께 의료전달체계 및 보건의료 정보망 내 한의계 참여를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다.
아울러 그는 돌봄통합지원법의 시행에 맞춰 성과관리, 통합 매뉴얼, 지역사회의 거버넌스 체계 정비, 표준화 기반의 데이터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특히 현재 시행 중인 여러 시범사업을 연계해 정책 정합성을 높이고, 한의계의 역할을 제도적으로 확립하는 것이 장기적 목표가 돼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 본부장은 "이번 정부는 국민 참여형 거버넌스를 정책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의계가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지를 고민할 시점"이라며 "복지부가 운영 중인 방문진료·재택의료 시범사업, 장애인 주치의제 등 기존 사업들과 통합돌봄 정책 간 연계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치의 개념과 건강관리 서비스를 둘러싼 제도 정합성 논의도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역 기반의 지원 조직과 사업 기술지원 네트워크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며 "성과관리 체계, 지불제도 특화, 전문인력 양성, 표준화된 매뉴얼과 데이터 플랫폼 등도 장기적으로 구축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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