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교육과정은 예과 2년과 본과 4년으로 구성되어있다. 그 가운데 본과 1학년, 2학년 과정은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을 나누어 집중적으로 배우게 되는 과정이고 본과 3학년, 4학년 과정은 학교가 소속된 3차 대학병원에서 임상 실습을 통해 실제 의료 현장에서 행해지는 practice를 보고 경험하며 우리나라 의료의 실제적인 현장을 공부하게 된다.
비교적 집약적으로(intensive) 진행되는 본과 1, 2학년 과정에 비해 본과 3, 4학년 과정에서는 개인별로 학습에 자율성이 주어지는 과정이기에 학생에 따라서 여유로운 시간 일 수도, 그 어느 과정보다 분주한 과정일 수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필자의 경험에 기반해 느꼈던,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여유와 실습 및 국가고시라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 사이에서 의대생들이 경험하는 여러가지 사례들에 대해 소개해 보고자 한다.
Case 1) 훌륭한 임상 교수가 목표인 모범생 A군
본과 1, 2학년을 마치고 대학병원에서 임상 실습을 진행하게 되는 첫 해인 본과 3학년에 강의와 텍스트, 시험으로만 접하던 의학지식이 눈앞에서 살아 숨쉬는 경험을 하게 되며 의학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동반자이자 선생님이 되는 환자를 접하게 된다. 이는 대부분의 조무래기 학생의사에게 실로 큰 인상을 남기게 되는 큰 경험이다. 이 때 원하기만 한다면 하루종일 병원에서 교수님 및 환자들과 소통하며 공부 할 수도, 혹은 주어진 만큼의 과제만 수행하고 남은 시간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다.
각 분야에서 뛰어난 임상의로 인정받아 3차 병원인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계시는 임상 교수님들을 바라보며 동경의 마음을 품고, 삶의 목표로 정한 모범생 부류들이 있다.
이 친구들은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것에서 넘어 내과계의 클래식이자 현재 표준 치료 가이드라인의 많은 부분을 수록하고 있는 해리슨 내과학부터 레지던트가 참고할 만한 각 분과별 전공서적을 겨드랑이에 끼고 실습을 공부하고 준비한다. 물론 그중에는 좋은 실습점수로 인기과 전공의 자리를 얻고자 노력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들 역시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와 치료를 제공하는 의사를 꿈꾸는 것은 동일하기에 그들의 노력 역시 칭찬받아 마땅하다.
Case 2) 삶과 일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한 효율추구형 B양
대학병원에서 임상 실습에 참여하는 의대생을 속칭 PK라고 일컫는다.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 참관이 가능한 과와 달리 보여지는 부분이 적은 과의 실습에 배정된 경우에는 주어지는 일정과 과제가 그리 부담스럽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그제서야 본과 1, 2학년 때 억눌러왔던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의대 졸업 이후의 삶에서 개발할 자질을 개발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쏟는 친구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관심사는 다양하다. ▲주식, 부동산, 대출 등 자산 관리 부터 ▲보컬, 미술, 운동 등 예체능 개발 유형 ▲활발한 미팅, 소개팅 등 연애 상대 탐색 유형 ▲병원 실습을 핑계로 얻은 차를 이용한 국내 여행 유형 및 ▲단순 집콕 휴식 유형까지. 중간 중간 임상의학종합평가, 의사국가고시라는 불안요소들에 마음이 쓰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 불안 요소들을 미래의 나에게 맡기며 자신만의 삶과 일이 균형잡힌 대학생활을 만들곤 한다.
Case 3)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으로 비임상 진로일지라도 도전하는 C군
도제식 교육이 주가 되는 의과대학 및 병원에서의 수련 시스템은 보편화된 선배의사의 삶을 따라 살기 쉬운 환경이다. 이런 관점에서 case 3은 큰 분류로는 case 2의 효율 추구형에 속할 수 있지만, 기존 의과대학과 병원이 만든 질서를 거부하고 다른 길에 관심을 가진 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의사가 개척할 수 있는 비임상 진로의 경로는 다양하다. 기초 연구, 창업, 봉사, 법률 자문, 기자, 제약회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진로에 관심있는 의대생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함께 뜻을 모아보고자 설립한 메디컬 매버릭스라는 전국 의대생 연합 단체를 통해 의사가 되기 전인 의대생의 입장에서 여러가지 비임상 진로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일례로, 필자가 케이닥 회사와 연합해 진행 중인 의사-의대생 연합 지역 의료봉사를 통한 의료 소외지역 환자의 기본적인 건강검진 사업을 올해만 두차례 진행했다. 여기에는 케이닥 뿐아니라 투비 닥터, 의대생 신문, 델토이드 등 여러 의대생 단체 및 스타트업 및 대학병원 교수님들까지 함께 행사에 참여해왔다.
그 외에도 병원에서 발굴한 환자의 니즈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고 미발굴된 사회적 이득을 창출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창업을 진행한 사례들도 있다. 이처럼, 가슴 뛰는 비임상 진로를 향한 의대생의 진출과 그 과정에서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Case 4) 인생 한방! 국시에 올인하는 D양
본과 4학년 실습의 모든 과정을 마친 이후 모든 의대생들의 의사가 되기 직전 마지막 관문이 의사 국가고시 필기시험을 위해 약 1년도 더 남은 시점인 본과 3학년부터 준비하는 친구들이 있다. 마치 수능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처럼 이들은 실습 스케쥴에 맞추어 국가고시 기출문제집을 미리 섭렵하고 실습에 임하는 가하면, 더러는 매일 문제 개수 혹은 시간을 정해 놓고 자신만의 스케쥴에 맞추어 국시 공부를 차근차근 해나가기도 한다.
아무래도 시험을 위한 공부이기에 좋은 성적으로 인턴 모집 경쟁이 치열한 병원에 지원하고자 하는 목적일 가능성이 높지만 아무렴 어떤가. 의사 국가고시 역사 1차 진료의인 일반의에게 의사로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소양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노력 역시 이들이 훌륭한 의사로 성장하는 데 좋은 재목이 되어 줄 것임이 틀림없다.
이처럼 2년이라는 상대적으로 주어지는 여유로운 시간들을 각자 다양한 모양으로 살아간다. 그 어떤 모습이든 충분히 의미있고, 가치있는 시간들이겠지만 그럼에도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본 업에 충실하지 못한 의료인에게 허락되는 여유는 없다는 것. 다시 말하면 병원에서 진행되는 임상실습에 충실히 임한 다음에야 시간을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의사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결정짓는 세부전공을 깊이있게 고민하고 경험해볼 수 있는 아주 귀중한 시간임을 인지하고 자신에게 맞는 전공을 탐색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의과대학을 마무리해가고 있는 필자 역시 부끄럽게도 완료하지 못한 고민이지만, 모든 교수님들이 입모아 이야기하는 중요한 시간인 만큼 후배 선생님들께 의미 있는 이야기로 전달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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