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난임치료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명시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면서 산부인과 의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치료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다.
28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23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 이 개정안은 난임 극복을 위한 지원의 골자로, 한의약육성법 제2조 제1호에 따른 한방의료로 난임을 치료할 시 치료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
이와 함께 보건복지부장관으로 하여금 난임시술 의료기관의 한방난임치료에 관한 기준을 정해 고시할 수 있도록 한다. 또 임산부‧영유아‧미숙아 등에 대한 건강관리 등의 주체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성명서를 내고 한방난임시술은 의학적·과학적 관점에서 명백하게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한방 난임 사업의 효과성 평가 결과, 한방 난임 시술이 임신율을 높였다는 과학적 근거 등을 어디서도 확인할 수 없고 이 같은 내용을 다룬 국내외 문헌 역시 부재하다는 것.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투입해 의료 관련 사업을 수행할 땐 사업의 효과성과 과학적 근거 등을 고려해 수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지자체 한방난임치료 지원사업의 현황 및 문제점 분석 연구보고서'도 조명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2017∼2019년 3년 동안 103개 지자체가 진행한 한방난임치료사업에 4473명이 참여했으며, 498명이 임신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부부 한 쌍을 1명으로 환산한 치료단위(3969명) 기준으로 12.5%의 임상적 임신 성공률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 12.5%는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고 단순 관찰만 한 원인불명 난임 여성의 임상적 자연임신율인 24.6∼28.7%에 못 미친다는 것. 이는 한방난임치료가 그 유효성을 명백히 입증하지 못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방난임치료에서 유산을 유발해 임신 중 복용이 금기되는 한약재인 목단피가 처방된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이 한약재는 수정란의 착상 과정을 억제해 초기 임신을 저해한다. 한의원마다 안정성도 유효성도 입증되지 않은 치료를 남발하고 있어 한방치료에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
이와 관련 산부인과의사회는 "한방난임사업에 참여하느라 시간을 할애해 임신이 가능한 골든타임을 놓치고, 보조생식술조차 시도하지 못한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며 "난임 환자에게 현재의 시간은 매우 소중하다.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임신의 기회를 빼앗긴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효과나 안전성이 객관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한방난임치료는 즉각 중단돼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개정안이 통과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합리적인 근거를 확인하지 않은 채 그대로 본회의에 상정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 역시 성명서를 내고 임신 초기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한방 약제를 통해 난임을 치료한다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 복지부가 진행한 한방치료기술연구개발사업 '한약이 임신 중 태아에 미치는 영향' 최종보고서를 보면 상당수의 한약이 ▲유전자 돌연변이 ▲세포독성 ▲염색체 이상 등의 문제를 유발했다는 것.
또 임신한 생쥐에게 한약재인 백출을 투여한 결과 태아의 유전적 이상이 발생했으며, 임신 초기 생쥐에게 한약을 투약하니 분만 태아 수가 감소했다. 이러한 위험성에도 지자체에서는 한방난임사업을 여전히 시행하는 무책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산부인과개원의사회는 "한방난임은 외국의 전문가에게 과학이 아니라는 직격탄을 맞는 국가적 망신까지 초래한 바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한방난임치료를 지원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매우 의심스럽다. 이는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았고 심지어 위해를 가할 가능성까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 필수의료에 대한 공백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국민건강의 안전과 건강보험재정에 악영향을 끼치는 한방난임치료의 국가적 지원을 당장 중단하기를 강력히 요구한다"며 "난임의 진단과 치료는 난임 전문가인 산부인과 의사의 영역이며 뚜렷한 과학적 근거 및 데이터에 준해서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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