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으로 확정한 가운데, 서울 소재 의과대학에는 단 한 명의 신규정원도 배정하지 않아 의료계가 대혼란에 빠졌다.
교육부는 지난 20일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관련 전문가로 구성한 '의과대학 학생정원 배정위원회' 논의를 거쳐,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증원 분인 2000명에 대한 지역별・대학별 정원을 배정했다.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강화라는 정부 방향에 맞게 비수도권 의과대학에 정원의 82%가 배정됐으며, 경인 지역은 18%가 증원됐다. 서울권 의과대학은 신규 정원이 없다.
서울권 의과대학은 ▲서울의대 ▲경희의대 ▲연세의대 ▲한양의대 ▲고려의대 ▲가톨릭의대 ▲중앙의대 ▲이화의대 등 8개다.
■ "지방권 의대, 지금도 의평원 기준 간신히 맞춘다…급격한 증원 우려"
의대 증원 배정과 관련해 의학교육 전문가들은 답답함을 토로하며 의학 교육 질 저하는 불가피할 것이라 지적했다.
가장 교육 여건이 좋다고 볼 수 있는 서울 소재 의과대학은 증원이 0%인 반면, 상대적으로 인프라가 열악한 지방의대는 400% 증원이 이뤄진 곳이 있어 교육 형평성을 맞추기 쉽지 않다는 주장이다.
안덕선 학국의학교육평가원장(연세의대)은 "(증원 배분) 결과를 보고 가슴이 답답하다"며 "여건이 갖춰진 곳은 증원을 소규모 신청했음에도 아무도 배정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5일까지 교육부가 전국 의과대학을 중심으로 증원 신청을 받은 결과 경희의대 50명, 연세의대 11명, 서울의대 15명 등의 증원을 신청했다.
하지만 이들 의대는 신규정원을 한 명도 배정받지 못했다. 반면, 충북의대는 정원 49명에서 151명이 증원돼 정원이 약 400% 확대됐다.
안덕선 교수는 "보통 의과대학은 현재 여건을 유지하며 정원 10%까지는 교육의 질 저하 없이 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의평원 평가 대상도 되지 않는다"며 "일부 학교는 전혀 증원되지 않은 반면 다른 곳은 400% 증원됐는데 대학에서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학생이 49명에서 200명으로 늘어나는 것은 시설과 교수진 등 교육 여건의 대대적 변화 없이는 교육 수준을 유지하기 매우 힘들다"며 "정부가 충분히 투자하겠다 발표했으니 얼마나 늘릴지 예의주시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희철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이사장(고려의대 교수) 또한 "서울 지역은 증원이 크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0명은 의외"라며 "이런 식의 급격한 증원은 교육 질 저하가 불가피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서울 의과대학이 그나마 최소한의 교육여건을 갖추고 지방권은 지금도 의평원 기준을 간신히 맞출 정도로 여유가 없는 곳이 많은데 어떻게 학생들을 수용하려는지 모르겠다. 400% 증원되면 이들이 실습할 대학병원은 얼마나 커져야 하는 것인지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국립대병원 교수 1000명 증원 또한 의학 교육 질 제고를 위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희철 이사장은 "전국적으로 기초의학분야에 대한 의대출신 MD교수가 줄고 있어 정부는 이공계 출신 교수까지 채용할 예정이라 밝혔지만 이들은 전공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교육이 쉽지 않다"며 "어느 대학이나 MD 교수 숫자가 중요하다.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교육의 질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의대 증원 발표가 전공의와 의대생이 돌아올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을 꺼트려 의료대란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안덕선 원장은 "의대교수들이 정부에 갖는 마지막 기대가 있었는데 이렇게 발표하니 착잡하다. 전공의와 학생들이 돌아올 수 있는 마지막 다리를 끊어버리는 것과 같다"며 "의평원은 조만간 원장단 회의를 갖고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이전 각 대학과 정부가 힘을 모아 충분한 교육 시설을 확보할 예정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주호 장관은 "학생 정원 계획이 결정되면 각 대학은 어떻게 교수와 시설 기자재들을 확충할 것인지 등이 포함된 연차별 수급 계획을 수립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학 내에서 계획을 취합해 국공립대학은 관계부처와 협의 후 정원 증원 절차와 예산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등을 신속히 마련해 나갈 계획으로 각 부처가 협력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일정은 일반적인 정원 확보 절차하고 예산 확보 절차에 준해서 진행된다"고 덧붙였다.
■ 서울권 의과대학 역차별…'평등원칙·과잉금지원칙' 위반
서울권 의과대학에 신규정원이 한 명도 배정되지 않은 것은 '역차별'으로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병철 변호사는 "지역을 우대하는 정책은 바람직하지만 너무 과하다"며 "서울에 증원을 1%도 배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 11조 평등원칙에 위배되고 37조 과잉금지원칙 내지 비례원칙에도 위반된다"고 강조했다.
서울권의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의대 증원 배분에 반기를 들며 법적 대응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변호사는 "특히 강남권 맘카페 등에서 역차별을 문제 삼으며 소송전에 뛰어들겠다는 문의가 많이 오고 있다"며 "조만간 행정법원에 취소소송 및 집행정지신청,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등을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정부가 의대증원 발표에 대해 처분성이 없어 행정소송이 무효라고 주장했는데, 오늘 교육부장관이 구체적으로 각 지역별 배분을 결정했기 때문에 처분성이 확실해졌다"며 "오늘 발표까지 포함해 정책을 정지해달라는 청구취지 변경을 접수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증원 배분은 각 지역 의사 비율 등을 따져봤을 때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주호 장관은 "서울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3.61명으로 경기 1.80명, 인천 1.89명 등과 편차가 크다"며 "서울 소재 의대는 이미 학교당 평균 정원이 103명인데 비해 경인지역은 절반도 안 되는 42명에 불과해 편차를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서울은 지역적으로 최상의 의료 여건을 갖추고 있으며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대형 상급종합병원이 있는 등의 현실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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