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 낭떨어지가 보이는데 몸을 갈아넣어서 버티는 게 의미가 있을까. 마음이 힘들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 류정민 교수는 4일 메디칼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빅5병원을 포함해 전국의 소아응급체계는 붕괴됐다고 단언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답답한 현실과 분노가 뒤섞어 울분을 토했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응급센터는 수도권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발생하는 소아중증응급환자를 수용해왔다. 인근 대학병원들도 서울아산병원이 버텨주기 때문에 중증응급환자를 최종적으로 보낼 곳이 있었다. 하지만 최후의 보루인 서울아산병원조차 "전원 불가" 상태다.
"과거에는 (중증응급환자라면) 최대한 수용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전원 받을 수 없다고 답해야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낮 시간에는 괜찮다. 하지만 야간시간에는 사실상 전원이 어려운 현실이다."
■ 서울아산병원 소아응급 현재 상황은?
서울아산병원도 올해 소아응급 분야 전문의 8명 중 교수 2명이 사직했다. 그나마 팰로우가 있어 인력을 채우면서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현재 교수 6명에 팰로우 2명까지 총 8명으로 운영 중이지만 매일 버겁다. 류 교수도 매일 새벽에 퇴근하는 일상을 지속하고 있다.
문제는 소아신경외과, 소아흉부외과, 소아정형외과 등 배후 진료과 의료진의 과부하. 과거 전공의가 병동 환자를 커버해줬을 때만 해도 해당 과 교수들은 외래진료, 중증응급환자 진료가 가능했다.
하지만 낮에는 외래진료에 야간에는 병동 당직을 서야하는 상황에서는 응급실 콜까지 받는 게 역부족이다. 야간에 응급환자가 발생해도 약으로 최대한 버티고 오전이 돼야 대응이 가능한 게 현실이다.
가령, 소아흉부외과 전문의가 1명 뿐이라도 이전에는 야간 콜을 받았지만 최근들어서는 병동 당직 근무까지 떠안으면서 응급환자 대응이 물리적으로 어렵게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류 교수는 얼마 전 열경련으로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가 뇌사에 이른 소아환자의 경우도 많은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위와 같은 이유로 전원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봤다.
눈에 접착제가 들어간 응급환자 또한 같은 이유로 응급실을 찾아 헤맨 것이다. 류 교수는 앞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과거 응급의학과가 처음 신설됐을 당시를 떠올리며 수십년간 쌓아올린 응급의료체계를 몇개월만에 붕괴된 현실에 참담하다고 했다.
류 교수는 (아이)엄마들 응급실 갈 곳이 없어서 진료를 못받으면 누가 케어해줘야하느냐며 울먹이기도 했다.
■ "눈앞이 낭떨어지"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류정민 교수는 지난 2021년 당시, 대한소아응급의학회가 소아응급체계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을 제시했을 때가 '마지노선'이었다고 거듭 말했다.
당시 류 교수는 소아응급전담인력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1인당 보조금 상한액을 2억으로 인상하고, 전문의 7인 이하인 경우라도 보조금을 지급할 것을 제안했다. 또 24시간 근무 최소기준인 1팀 5명 기준을 최소 7~12명으로 늘리는 것도 함께 주장했다.
하지만 복지부 담당 공무원은 다음 해 인사이동으로 바뀌면서 논의는 흐지부지 됐다. 2021년을 마지노선으로 이후 소아응급 분야 전문의들은 떠나는 분위기 속에서 의대증원 사태까지 터지면서 와르르 무너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류 교수는 (정부가 의료정책을 마구 휘두르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왜 헌신을 해야 하는가 자괴감에 빠진다고 토로했다.
"소아응급을 택한 의사들은 사명감으로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힘들어도 할 수 있다. 그렇게 수련 받아왔다. 하지만 그 마음을 정부가 박살냈다."
대한소아응급의학회는 추석을 앞두고 단순발열 등 소아 경증 응급환자는 가능한 응급실에 내원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메시지를 준비 중이다.
그는 "우리 병원(서울아산병원)도 소아응급환자 전원을 감당 못한지 몇일 됐다. 응급의료체계가 이미 붕괴됐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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