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 투여 과다이용 사례로 환자 한 명이 연간 3009회 의료기관을 방문해 트라마돌주를 2249회 투여받은 경우가 있었다. 국내 환자 1인당 외래방문 횟수가 높은 것은 이미 오래된 고질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박정혜 심사운영실장은 9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국민의힘 안상훈 의원이 주최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주관한 의료과다이용 실태 분석 및 대책 마련 정책토론회에서 의료오남용 문제를 지적하며 이같이 밝혔다.
박정혜 실장은 "우리나라 환자 1인당 외래방문 횟수가 높은 것은 오래된 고질적 문제"라며 "특히 2022년도를 보면 1인당 연간 외래진료는 17.5회로 OECD 평균보다 약 3배 더 많은 이용량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일반환자의 외래방문이 특히 높게 나타났다"며 "또한 20~30대 젊은연령에서 전체 환자수는 많지 않지만, 평균내원횟수나 방문기관수는 오히려 더 많은 양상을 보였다"고 말했다.
의료과다이용 사례는 주로 물리치료와 신경차단술, 진통제(트라마돌) 투여 등에서 나타났다.
예를 들어 물리치료의 경우는 환자 A씨가 292일 동안 총 1216회 물리치료를 받아 연간 최다 의료기관을 방문한 사례가 있었다.
박정혜 실장은 "A씨는 1일 평균 4.2기관을 방문했으며, 신경과의원 및 마취통증의학과의원, 정형외과의원, 한의원, 재활의학과의원 등 최대 7개 기관을 방문한 날도 있었다"며 "병원별로 각기 다른 통증을 호소해 등통증, 상세불명의 신경통 및 신경염, 무릎관절증, 어깨병변 등 다른 상병명을 진단받았다"고 설명했다.
진통제 투여 과다이용 사례로는 환자 B씨가 연간 3009회 의료기관을 방문해 트라마돌주를 2249회 투여받은 경우가 있었다.
박정혜 실장은 "B씨는 1일 평균 6회(1회 50mg~100mg), 최대 11회(총 550mg)를 투여해, 식약처 허가사항 용법용량인 1일 최대 400mg을 초과했다"며 "트라마돌주는 미국에서 마약성 진통제로 관리된다"고 지적했다.
■ 1년에 130회 CT 촬영 진행…"방사선사보다 피폭 노출 심각"
전산화단층촬영(CT) 과다 이용 역시 심각했다. CT의 연도별 촬영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 2018년 환자수는 492만명에서 2022년 746만명으로 11% 증가했으며, 횟수 또한 같은 기간 810만회에서 1411만회로 15% 늘었다.
박정혜 실장은 "연간 10회 이상 CT를 촬영한 환자는 약 10만명으로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라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연간 60회 이상을 촬영하는 환자도 32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그는 "가장 많이 CT 촬영을 진행한 환자는 한 해 동안 130회를 촬영했는데, 이는 방사선 종사자보다 많은 방사선에 노출돼 심각한 방사선 피폭 문제가 양산될 수 있다. 건강보험에서 MRI는 횟수제한이 있지만 CT는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환자는 53세 남성으로 외상성경막하출혈로 두개감압술 후 입원기간인 296일 동안 130회 CT를 촬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두부 117회, 흉부 10회, 복부 3회 등이다.
무분별한 의료쇼핑은 한정된 의료자원을 불필요한 진료에 낭비하게 돼 정작 긴급한 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제때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유발하기 때문에, 단순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 의료체계 효율성을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현행 우리나라의 제도상 환자가 여러 의료기관을 다니며 동일한 치료를 반복적으로 과다이용하더라도, 실시간으로 이를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이 없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박정혜 실장은 "환자의 의료오남용을 예방하기 위해 진료단계부터 환자별로 진료이용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 및 관리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며 "시술별 총횟수가 적정진료 범위를 벗어난 경우 이를 지적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제도 또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의과대학교 지영건 교수(예방의학교실) 또한 의료기간이 실시간으로 환자 정보를 공유해 의료오남용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영건 교수는 "진료단계부터 의료기관 간 실시간 진료정보를 공유해 환자의 과다 이용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항목별 점검기준 개발 및 전국단위 의료기관 간 정보확인을 위한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또한 환자 본인이 의료 이용량을 스스로 점검 및 확인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국가적으로 CT 과다촬영에 의한 피폭 등 의료과다 이용에 대한 위해성을 홍보해 국민 인지도를 확산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지 교수는 의료과다이용을 막기 위해 심평원의 역할 변화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급여기준은 요양기관뿐 아니라 국민들도 알고 협조해야 하는 사항이지만, 지금까지 급여기준 준수를 병의원만 의무로 두고 국민들과의 소통 및 홍보는 미비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의 과잉의료 양상은 의료기관이 주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환자들이 여러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의료 쇼핑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규모"라며 "이에 따라 심평원의 심사 패러다임을 사후 요양기관 청구 심사에서 사전 과잉의료 감시 및 정보 제공 체계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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