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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목손을 아시나요?

김욱진
발행날짜: 2004-05-06 06:08:21

경북안동병원 응급의학과 김욱진 과장

☠경고☠ “그라목손을 절대로 자살수단으로 이용하지 마세요. 극심한 고통속에 매우 비참하게 죽습니다.”

그라목손이란 제초제를 알게 된 것은 내가 응급의학과 전공의를 시작하던 해인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수련 받았던 곳은 서울이었기에 농약 음독으로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는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꽤 있었다. 농약 말고도 수면제 등을 수십 알 씩 음독하고 온 환자들이 있었다. 음독 환자 대부분은 유서쓰고 먹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처음에는 치료도 안 받겠다고 버티다가 고생고생 하면서 치료해서 살려 주면 퇴원할 땐 대부분 너무 고맙다는 말을 하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하면서 밝은 얼굴로 퇴원하였다. 물론 극히 일부는 다음에 또 약 먹고 오는 환자도 있었지만...

그런데, 그라목손이란 제초제를 먹고 오는 환자가 간혹 있었는데, 이들의 경우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한모금 먹고 바로 내뱉었다고 하는데, 이삼일 지나면서 입안이 온통 헐고, 신부전과 함께, 폐가 하얗게 변하면서 죽어갔다. 그리고 숨이 막혀 죽어 가는 환자들에게 고작 해 줄수 있는 것이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거나, 포기한 상태에서 인공호흡기를 달아주고 수면제를 정맥주사해서 조금 더 편하게 죽도록 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너무나 한심하게도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요즘은 한모금 마신 정도면 그래도 살아나는 사람도 적지 않고 그 이상을 마신 사람도 간혹 살아나는 사람도 있긴 하다. 하여간 너무나 인상적인 농약이었다.

그라목손이란 제초제는 내과 의사들이나 응급실 근무를 일년 정도 한 의사들이라면 한번 정도는 경험하였을 농약이다. 물론 이제 인턴 수련을 시작한 의사들이라면 경험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8 년전 응급의학과 전공의 1년차 당시 내가 전공의 수련을 끝내기 전까지 이 그라목손이란 농약을 판매금지 시켜야겠다는 야무진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라목손을 음독하고 엄청난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지만....

그라목손은 1800년대 말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용도인 산화 환원 지시약으로 개발 되었는데, 1950년대 말 제초효과가 발견된 것이 그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라목손이 닿는 잎의 모든 엽록소가 즉시 파괴 되기 시작하여, 푸른 수풀에다 그라목손을 살포했다면 이틀만 지나면, 여름에서 갑자기 가을로 바뀌어 버린다. 제초 효과는 확실하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에서 이 제초제가 상용화 된 이후 매년 수백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이후 응독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식별을 쉽게하기 위해 푸른색의 색소를 첨가하였고, 음독량을 줄이기 위해 발프로에이트라는 구토유발제를 첨가하였다. 우리나라에는 1070년 경에 처음 수입되어 사용되어져 왔다. 성분은 바이피리디리움, 일반명은 파라쿼트(paraquat), 그라목손(Gramoxone)이란 상품명으로 100여개 국가 이상에서 사용되어 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파라코, 속사포 등의 상품명으로 팔리고 있으며, 대부분이 24.5% 농도이다. 외국에서 50% 원재를 수입해서 희석하고 색소, 구토 유발제등을 첨가하는 가공을 하여 10여개 농약 회사에서 가공 생산하여 판매하고 있다.

그라목손이 인체에 흡수되었을 때의 반응이 매우 특징적이다. 위장에서 즉시 흡수되고, 생화학적으로 NADP 란 물질과 결합, NADPH를 만들면서 환원형 파라쿼트가 되고, 이것이 산소와 결합해서 유해산소를 발생시키고 유해산소는 조직을 파괴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파라쿼트가 배출되기 전까지는 파라독식 싸이클을 통해 반복적으로 유해산소를 만들기 때문에 소량의 음독만으로도 사망이 가능한 것이다. 또한 다른 조직에 비해 폐조직에 10배 이상의 고농도로 축적되기 때문에 폐섬유화를 불러온다. 또한 조직내 분포가 커서 음독후 위장, 혈관을 거쳐 지방조직등에 침착하게 된다. 치료시 혈액투석이나 관류법을 통해 하루만 지나도 파라쿼트가 소변에서 검출 되지 않지만, 폐섬유화가 진행되어 사망하는 것이다. 즉, 소변에서 검출되지 않을만큼의 미량의 파라쿼트가 조직에서 다시 혈류로, 다시 폐에 고농도로 축적되어 폐조직을 파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한달까지도 생존한 환자가 음독 두달만에 사망하는 이유가 이러한 조직내 축적된 미량의 파라쿼트가 다시 폐조직에 축적되어 폐를 조금씩 파괴하여 결국 폐섬유화를 진행시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라목손 음독환자의 기본치료로는 위세척, 활성탄이나 풀러스어스라는 진흙을 이용해 위장관 내 남아 있는 파라쿼트를 흡착시켜 더 이상의 혈관이나 조직으로의 흡수를 방지하는 치료가 있다. 추가적으로 활성탄 혈액관류법을 시행한다. 혈액관류가 불가능한 병원에서는 혈액투석을 시행하고, 나머지 보존적 치료를 시행한다. 나의 경우는 활성탄이나, 풀러스어스라는 진흙을 최소 1주에서 2주간 먹이기를 권하고 있다. 활성탄이나 훌러스어스가 별 부작용이 없고, 조직에서 배출되는 소변에서 검출되지 않는 미량의 파라쿼트를 흡착시키기 위함이다.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분변으로 활성탄이나 풀러스어스가 배출될 때가지만 복용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치료에 관해서 자세히 말하는 이유는 아직까지는 그라목손 음독사고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시행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다.

확실한 대책은 그라목손의 판매금지이다. 세계보건기구 자료에 의하면, 서사모아란 곳에서 그라목손을 판매금지 하였더니 자살자 수가 급감하였다는 보고도 있었다한다. 서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도 일찍이 그라목손을 판매 금지 시켰다고 하며, 동남아의 말레이시아 정부도 2002년 말 그라목손을 판매금지 시키기로 결정하였다는 자료를 접한바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라목손이 판매금지 될 가능성이 있을까? 그라목손은 제조회사의 설명대로라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농약이라고 하며, 제조회사는 세계 톱3에 드는 다국적 거대기업이다. 그라목손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부기관은 농촌진흥청의 조그만 한부서이다. 상대가 될까? 하긴 작년 미국산 소의 광우병 파동 때, 농림부의 미국 산 소 수입금지 조치를 보면서 가능하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음독이 문제가 된다하여 판매금지 시키는 것은 타당한가 하는 점이 논점이 될 수 있다. 자동차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후 한해 만 명 이상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고, 음주운전으로 천 명 가량이 사망한다. 그렇다고, 자동차를 판매금지 시키지는 않는다. 음주운전으로 많이 죽는다고, 술을 판매금지 시키지도 않는다. 줄에 목매어 죽는 사람이 많다고 세상의 모든 줄을 판매금지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나의 의견은 이렇다. 모든 자동차를 판매금지 할 수는 없다. 모든 농약을 판매금지 시켜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의 여러 모델 중 유독 모 회사의 모 모델만이 자동차 사고를 많이 내어 사람이 많이 죽는 결함이 있는 것으로 발견된다면 당장 그 모델에 한해서는 판매중단을 하고, 리콜을 하고 결함을 보완한 후 다시 판매를 허용할 것이다. 그라목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도, 잔류양 등 환경오염의 문제라든지, 기형유발이라든지 독성이 문제가 되어 판매 금지된 농약이 20가지가 넘는다. 이모든 농약으로 인한 인명의 손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라목손 한 종류 농약으로 인한 한 해 동안의 인명손상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치일 것이다. 과연 그라목손이 판매금지 될 충분한 이유가 없는지 묻고 싶다.

그라목손의 판매금지만이 유일한 대책일까? 농민들은 워낙 제초효과가 뚜렷해서 그라목손을 제초제로서 가장 선호한다고도 한다. 원래 목적에 맞게 제초목적으로만 사용한다고 하면, 경제적으로도 타 제초제에 비해 유리하다고 한다. 그라목손의 판매금지가 정당한 것일까? 나의 대답은 판매금지가 최선이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타 제초제에 비해 결코 유리하지 않다. 우리가 약간 더 토실토실한 사과나, 배를 먹기 위해 한해 수백명, 추정하기는 천명이상의 인명을 잃어야 한다. 그라목손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통계자료는 한해 농약음독으로 사망한 환자수가 1990년대까지는 약 1600여명이었다. 최근 2002년 자료에는 어떤 이유인지 농약 음독 자살자 수가 2600여명으로 약 천명이나 더 많은 엄청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중 제초제 계열의 농약을 먹는 경우가 60%, 유기인계계열의 살충제 음독의 경우가 4-5%, 상세 불명의 농약 음독환자가 35% 가량이다. 이러한 자료는 의사들이 발부하는 사망 진단서에 기초한 통계청의 자료이다. 즉, 의사들이 사망진단서에 그라목손 음독 환자의 사인을 그냥 단순히 농약 중독이라고만 기재하는 데서, 상세 불명의 농약에 의한 사망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세 불명의 농약 음독 환자의 대부분도 추측하기는 그라목손으로 음독한 경우가 상당수 일 것이다. 물론 제초제 음독으로 분류된 경우에도 그라목손이 아닌 다른 제초제도 일부 포함 되었을 것이나, 대부분은 그라목손일 것이라 추정된다. 그라목손 외 다른 농약음독으로 사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라목손 외 음독으로 사망하는 경우라면, 음독 후 너무 늦게 발견 되었다거나, 기존에 원래 난치인 심각한 병이 있었다거나 하는 경우 등이다. 즉, 최대한 추정해 본다면, 2002년의 경우 2600명의 농약음독자살자의 70% 만 추정해도 1800명 가량이 그라목손을 음독해 사망한 것이다. 최소한으로 추정해 봐도 천명가량의 인명이 그라목손을 음독해서 사망한 것이다. 노동력 손실 비용만 일인당 국민소득 8천불, 천만원, 자세하게는 2002년 농가 소득은 한가구당, 2억 4천만원이고 농사를 통해 얻은 농업 소득만 1억 천만원, 한가구당 3명이라는 통계자료를 산술적으로만 적용해도 일인당 3천 600만원의 농업 수익을 얻는다고 할 수 있다. 한해 천명이 그라목손 음독으로 사망하게 되면 이들의 노동력 손실 비용만 최소 100억원이다. 2년후에는 1년전에 죽은 사람 또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없으므로 매년 200억원의 노동력 손실 비용, 10년 후에는 매년 1000억원의 노동력 손실비용이 발생한다. 즉, 1970년에 그라목손이 처음 도입 되었고, 10년 전부터만 계산해도 연간 1000억원 이상의 노동력 손실비용이 이미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라목손이 경제적인 제초제인가? 국가적으로 가장 비 경제적인 제초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판매금지만이 유일한 대책인가? 최선책이기는 하지만, 만약 판매금지가 불가능하다면, 일본의 경우처럼 농도를 줄여 판매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엄격한 판매 관리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1999년 그라목손의 위험성이 한차례 방송된 적 이 있었다. 이후 2001년부터 농약안전관리법 시행령이 개정되어 그라목손에 관한 안전교육 규정 등 특별규정이 시행되기는 하였으나, 오히려 농약 중독 사망자수가 천 명가량 증가한 것이 현실이다. 물론 다른 전반적인 국가경제의 어려움 등 다른 원인도 작용하였겠으나, 엄격한 관리가 효과적으로 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최근 그라목손 농약 관리에 있어서 유통단계를 개선하는 방법으로 그라목손 피해자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 착안 정부 당국에 건의를 해 놓은 상태이다. 소위 농약 안전관리자 제도의 시행인데, 실제로는 그라목손 제초제 안전관리자 제도이다. 즉, 우리나라 농가들은 마을 단위로 대부분 모여살고, 마을 회관등이 이미 있고, 원래 제초목적으로는 그라목손 제초제가 400배 희석해서 사용된다는 점에 착안해서 구상한 방법이다. 마을마다 농약 안전 관리자를 지정해서 그라목손 구입을 공동으로 하고 안전관리자가 마을 공동의 잠금장치가 설치된 그라목손 저장 창고에 보관하고, 개개인 농민이 사용하려는 날자에 안전관리자가 400배 희석하게 한 후 농민에게 전달하도록 한 방법이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나홀로 농가가 있어 시행에 약간의 어려움이 예상 되기는 하지만, 이 제도가 제대로만, 시행된다면, 최소한 수백명의 인명이 그라목손을 음독해 사망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혹자는 죽으려고 음독한 걸 말릴 이유가 있는가, 죽음을 택한 개인의 의사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 그라목손을 음독하는 환자의 경우 계획적인 자살인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 충동적으로 음독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가족이나,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그라목손을 음독하였다면 이렇게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부부싸움 했다고, 부모님께 야단 맞았다고, 애인이 변심했다고 목메는 경우도 있기야 하겠지만 드물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농약에 쉽게 손이 간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경우 그라목손 음독으로 사망하는 수가 일년에 열명도 안 된다. 우리나라 상황이었다면 뭔가 특별한 조치가 취해졌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 1980년대 중반까지는 한해 2000명씩 제초제를 음독하여 사망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1986년 그라목손 제제의 5배 희석조치, 즉 5% 파라쿼트와 유사 분자식을 가진 독성이 낮은 다이쿼트 혼합 상품만 판매 하도록 한 조치 이후 연 천명의 사망자수 감소를 가져 왔다는 보고가 있다. 한 해 천명이라....엄청난 수의 인명이다. 내가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응급실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 해도 한해 100명의 인명을 구할 수 있을까?

무려 천명의 인명을 구할 수 있다면.....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의사들이 힘을 모은다면 가능한 일이다. 이런 생각에 메디게이트란 곳에 ‘그라목손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 이란 동호회를 만든지 3년이 넘어가고 있다.

의협차원에서 이 일에 관심을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국민들의 의사들에 대한 불만이 많은 줄 안다. 나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최근 의협의 대 북한 의료진 파견 결정을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성사여부는 불투명 하지만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일이 라 생각된다. 그라목손 문제를 해결하는 일 또한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데 도움이 될 사업이 란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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