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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정체성에 대한 단상

김기홍
발행날짜: 2004-04-29 09:56:20

의료개혁국민연대 김기홍 사무총장

육체가 단순히 생의 축제가 되지 못하는 까닭은 정신의 확인이나 동행없이도 육체가 생의 축제만일 수 있다면...

우리들은 끝없이 저 현란한 관능의 잔치에 몰두하는 것으로 서슴없이 일생을 마쳐도 한이 될 까닭이 없겠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값진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 중에 이렇게 산 사람은 드물다.

인간 그들에겐 젊어서부터 늙음에 이르기까지 육체의 공복과 더불어 채워도 또 채워도 가득찰 수 없는 정신적 공복에 또 시달려왔기 때문이다.

육체만으로는 아무것도 값진 것을 성취해낼 능력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남보다 잘먹고 잘 살고자 하는 원시적충동을 윤리적 의지로 극복해 냈던 것이다.

엽기적인 행각을 통해 순수한 영혼마저 메말라 사라져버린 비속한 현시대의 군상들, 고삐풀린 광기의 시대, 순수하고 위대한 정신이 발을 붙이지 못하는 세상, 엄연한 현실이 어쩌구 하면서 비겁하게 일신의 영달을 꾀하는 자들, 고도의 정보사회와 야만적 폭력이 공존하는 세상...

이런 것들이 우리시대의 자화상이다.

우리사회가 농경사회이후 산업화와 정보화 시대를 지나 고도 정보화시대에 진입했다고 믿는 것은 큰 착각이다.

먹물 묻은 붓이 키보드로 바뀌었을 뿐, 우리의 내면은 구한말 제국시대나 일제 식민시대의 질곡으로 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세계사의 흐름으로부터 크게 비껴나 있는 우리사회의 모습이야말로 진보해야 할 역사의 파행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아르헨티나의 문호 보르헤스의 소설집 '불한당들의 세계'속에 나오는 악당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그 작품 속 악당들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영웅이 되기도 하고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정의와 선으로 믿게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기교를 부릴 줄 아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과 행위가 대칭을 갖는 단순 명쾌한 이분법의 외형만 갖춘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사로 잡을 수 있고 또 속일 수도 있다고 믿는다.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 부자의사와 가난한 의사, 개혁과 수구 등이 그 것이다. 평범한 중간층을 그 불한당들은 한 곳으로 몰아 넣는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이, 부자의사도 가난한 의사도 아닌 이는 설자리도 없다.

희생자를 앞세우지만 결코 희생자의 삶이 지닌 여러 차원을 이해해본 적이 없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것 같지만 희생자들을 만들고 파는 세계, 그것이 바로 불한당들의 세계인 것이다.

우리의 옛 현자들은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낸 존재들이었다.

음의 세력이나 소인들이 득세하여 양의 세력을 누르는 시기에 그들은 양이 강해지는 시기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반성하고 준비하는 지혜를 발휘했지 적어도 세력있는 자들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들어가는 등 소인배 세력에 부화뇌동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기어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가 일제식민 시대에는 또 그 얼마나 많았었는가를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역사란 주춤거리면서도 진보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믿는다면 음의 세력이나 소인배들의 준동, 또한 필요악이라는 깨달음이야말로 이시점에서 절실하다.

그들의 잘못된 모습을 보며 그런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시행착오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사회의 선각자인 우리 의사들에게 주어진 책무는 우리의 무능 부패한 집행부를 새로 뽑아 혼돈의 세계를 슬기롭게 대처할 시기라고 생각하며...


-봄이오면 그래 죽은 것들을 모아 새롭게 장사지내야지

비석을 일으키고 꽃도 한 줌 뿌리리라

다시 잠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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