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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감, 의사들만의 문제 아니다

전경수
발행날짜: 2004-05-02 23:14:31
최근 연달아 혈우병환우회 등에서 심평원의 진료비 삭감에 대해 부당성을 제기하면서 의료계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혈우병환우회는 앞으로도 이같은 움직임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계속해서 부당한 삭감기준을 찾아내고 사례화 해서 근본적인 개선을 꾀하겠다는 방침이다.

환우 단체의 이같은 움직임은 지금까지 심평원의 진료비 삭감이 단지 의사나 의료기관의 손실 혹은 과잉진료의 결과로만 여겨졌던 사회적 인식을 바꿔놓을 수 있는 중요한 변화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충분한 의학적 근거를 갖추지 못하거나 일관성이 없는 심사기준으로 진료비 심사가 이뤄질 경우 그 1차적인 피해자는 물론 의료기관이지만, 그로 인해 양질의 진료를 받지 못한 환자들의 2차적인 피해는 지금까지 감춰져 있는 부분이었다.

일단 환자들이 의료행위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고, 의사들 역시 소신껏 진료하지 못하는 이유를 환자들에게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의사들 자신도 소신껏 진료를 하지 못할때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있었지만 매번 손해를 봐 가며 진료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일일히 환자들에게 설명한다는 것도 힘든 의료현실이다.

그러나 혈우병의 진료비 삭감과 관련해 취재를 하면서 만난 환우회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실제 혈우병을 갖고 있으면서 질병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의학지식을 갖고 있었기때문에 의사들의 이같은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자신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평원의 심사기준으로 인해 병을 고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고 이에 대해 의사들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환우회의 이런 활동이 던져주는 가장 큰 시사점은 바로 심평원의 진료비 삭감이 단지 의사나 의료기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는 점에 있다.

물론 모든 삭감이 부당하고 모든 심사기준이 모두 환자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선진국의 임상진료지침과 같이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수긍할 만큼 잘 만들어진 기준조차 갖고 있지 못한 우리의 현실에서 심평원의 심사기준이 문제점 투성이라는 점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제대로 된 심사기준이 확립될 때까지 의사들과 환자들의 이같은 문제제기와 변화의 노력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 의료공급자들이 나서서 심사의 부당성을 제기할 경우 자칫 집단이기주의나 경제적인 욕심으로 비칠 수 있지만, 환자들과 목소리를 모아 주장했을 때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심사기준의 부당성으로 인해 소신있게 치료하지 못하는 현실을 의사들만 감수하지 말고, 환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동참을 호소하는 노력속에서 의사들은 실리와 명분을 모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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