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카세베츠가 감독하고 덴젤 워싱턴이 주연을 맡은 영화 ‘존큐’는 심장이식을 받아야 살 수 있으나 돈이 없어 대기자 명단에도 끼지 못한 채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인질극을 벌이고, 자신의 심장을 아들에게 이식해주기 위해 자살까지 결심하게 되는 아버지(존큐)의 뜨거운 부정(父情)을 그린 가족영화이다.
그러나 한편 이 영화는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의 영리적 의료시스템이 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행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회고발 영화이기도 하다.
민간의료보험과 영리병원이 의료제도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는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면서도 공적 의료보장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그룹에 속해있는 이상한 나라이다. 같은 서구자본주의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이 80-90%의 보장률을 자랑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미국의 경우를 자본주의 경제제도의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이해하기도 어렵다. 이는 결국 일찌감치 의료영역에서의 국가의 공적 역할을 포기하고 의료를 자본의 이윤추구 수단으로 내어 준 미국식 의료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 경제자유특구를 시작으로 외국인병원 유치와 영리법인 허용, 민간의료보험의 도입(확대)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많은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시행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소위 ‘의료서비스산업화론’이다. 영리법인 허용과 민간자본 유치를 통해 의료와 교육 등 서비스분야의 생산성을 향상시켜 대외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장차 동북아 지역의 허브기지로 육성하여 산업발달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주장이다. 이미 의료시장의 주도권을 획득한 삼성과 현대 등 거대자본이 쌍수를 들어 환영함은 당연할 것이며, 이미 스스로를 의료자본으로 인식하는 병원협회 소속 병원들의 기대감도 영리법인 허용에 대한 회원병원 70%의 찬성이라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일반 의사들조차 이러한 변화가 스스로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시켜줄 것이라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 것인가.
외국인병원 허용과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 및 민간의료보험 도입이 세계무역기구(WTO) 주도하의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에 의한 의료시장개방 압력에서 비롯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협상에서 버티다 못해 밀려온 그 자리가 알고 보니 장밋빛 미래로 가는 지름길이더라는 정부의 주장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 것인가. 의료기관의 영리법인 허용과 민간의료보험의 확대는 의료시장개방의 전제조건일 뿐이며, 외국의 거대 병원자본과 금융자본이 국내 대형병원들을 앞세워 취약한 공공의료시스템을 잠식하고 의료시장을 재편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것이다. 의사들은 심평원의 잔소리에서 벗어나는 대신 민간의료보험사의 지휘감독을 받게 될 것이며, 자칫 옛 향수에 젖어 분기를 참지 못해 시비라도 벌이게 되면 진료비 삭감 정도가 아니라 시장에서 퇴출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친 우려인가. 그러나 이것이 현재 민간의료보험이 의료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이나 남미 여러 나라들의 현실인 것이다.
문제는 의사들의 전문가적 자율성의 훼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리법인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함을 존재의 이유로 삼는다. 따라서 국민들이 병원이나 민간의료보험사에 지불해야할 총 의료비는 당연히 증가할 것이다. 결국 기대했던 대로 파이가 커지는 것일까.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의사의 수입도, 중소병원의 수입도 아닌 거대자본의 이윤으로 전환될 것이며, 이중 상당부분은 외국자본의 몫으로 보장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들이 끈질기게 의료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이유가 달리 무엇이겠는가.
의료란 아픈 사람을 위해, 혹은 건강한 사람이 앞으로도 건강을 유지하게 하기위해 기능하는 사회적 자산이다. 의료기술이란 몇몇 천재들의 발명품이 아닌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 많은 이들의 노력과 보다 많은 이들의 희생이 모여 축적되고 형성된 공공자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코 누군가에 의해, 혹은 특정 자본에 의해 점유되거나 이윤추구의 도구로 전락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영화 ‘존큐’는 다행히도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아버지의 사랑은 온 시민들을 감동시켰고, 결국 아버지의 심장을 꺼내지 않고도 아들은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재판정에서 배심원들은 인질극이라는 극단적인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존큐에게 비교적 가벼운 평결을 내린다. 덴젤 워싱턴의 연기도 감동적이었지만, 영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무엇보다도 자식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누구나 액션 히어로우가 되어야만 하는 세상만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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