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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이해영 교수 무커프 혈압측정 시대 활짝

반지 혈압계 24시간 살핀다…한국형 SPRINT 연구 내년 첫 삽

발행날짜: 2024-11-21 12:40:40

[학회라운지] 이해영 대한고혈압학회 국제교류이사(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진료실 혈압 일회성 측정 한계 해결 목표…의료 패러다임 변화 기대"

공기 주입식 커프 혈압계의 역사는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 의사 리바로치가 개발한 비침습적인 측정법은 팔에 커프(압박대)를 둘러 공기를 주입한 후 수은의 압력 변화를 통해 혈압을 측정했다.

리바로치의 디자인에 기반한 수은 혈압계는 오랫동안 진료실의 '골드 스탠다드'로 자리잡았고 이후 커프 기반 전자식 혈압계가 주류로 떠올랐지만 여전히 진료실 측정이라는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일회성, 단회성에 그치는 진료실에서의 측정이 과연 평균 혈압에 부합하는 대표성을 가지냐는 것.

게다가 병원 환경에서의 긴장감이 혈압을 높이는 '백의고혈압', 고혈압에 해당하지만 진료실에서는 정상 혈압으로 측정되는 '가면고혈압'을 고려하면 진료실 혈압을 기반으로 한 치료의 적절성에도 의문 부호가 달린다.

이에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대한고혈압학회는 새로운 근거 창출을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공모를 통해 30주년 기념 연구과제로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이해영 교수의 '반지형 무커프 가정혈압 측정계를 기반으로 한 코호트 구축 연구'를 선정, 2025년부터 1년에 5천만원씩 5년간 연구비를 지급한다는 것.

이해영 교수를 만나 현재 혈압 측정의 문제점 및 코호트 구축 방법과 연구 설계, 새로운 임상 근거 창출의 가능성 등에 대해 물었다.

■100년간 골드 스탠다드 = 100년간의 난제

커프 방식의 혈압계 및 이를 기반으로 한 진료실 혈압 측정은 근 100년 동안의 표준이었다.

문제는 혈압 측정이 일회성에 그칠 뿐더러 거추장스러운 커프 방식으로 인해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측정에 제동이 걸린다는 점.

숙면 과정에서 진행되는 야간 측정의 경우 피험자가 뒤척이는 과정에서 커프가 풀리거나 팔의 압박감 및 불편감이 불면을 초래해 오히려 정확한 측정을 방해하는 요소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해영 대한고혈압학회 국제교류이사

이런 이유들로 인해 다양한 혈압 관련 연구들에도 불구하고 야간 혈압에 대한 데이터는 사실상 공백으로 남아있다는 게 이해영 교수의 판단. 근거가 부실하다는 점에서 야간 혈압에 근거한 적절한 치료법에 대한 제시도 부실한 편이다.

이해영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환자를 짧은 시간에 많이 봐야하는 진료 환경에서는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평가하기 어렵다"며 "특히 혈압의 경우 진료실에서 오차를 감안해 수 차례 측정하기도 하지만 24시간을 놓고 보면 아무리 정밀한 측정이라도 그 값이 대표성을 가지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고혈압학회 혈압 모니터링 연구회 연구에 따르면 진료실 혈압이 높게 측정되는 사람이 3명 중에 1명, 반대로 평상 시 혈압이 높지만 진료실 측정이 정상으로 나오는 사람이 5명 중 1명으로 상당한 빈틈이 있다"며 "그런 까닭에 국내외 가이드라인이 가정에서 평소 혈압을 주기적으로 측정해 보도록 권장한다"고 말했다.

이어 "긴장이나 불안 등의 심리적 요소가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취침 중 혈압 측정값은 굉장히 유용할 수 있다"며 "문제는 지금까지 야간 수면 과정에서의 혈압을 측정할 적절한 기기가 없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표준기기로 자리잡은 활동혈압계는 24시간 측정이 가능하지만 야간에 30분 주기로 기기가 동작하기 때문에 숙면을 어렵게 한다. 환자가 깨거나 커프의 풀림 등으로 정확한 측정이 안 된다는 것.

이해영 교수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 논문에서도 활동혈압계를 통한 야간 측정을 '지극히 어렵다'(extremely difficult)고 표현할 정도"라며 "심지어 가격도 한 대당 500만원 안팎에 지속적인 기기 관리도 필요해 개원가에서의 활용성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웨어러블 방식의 혈압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며 "링 모양으로 생겨 반지처럼 끼고 생활할 수 있는 반지형 무커프 혈압계가 개발돼 상용화됐고, 이미 올해 중순부터 24시간 혈압 측정에 대한 급여가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지형 혈압계는 활동에 제약이 없는 24시간 측정 방식으로 그동안 커프 방식 혈압계가 가진 난제를 해결했다"며 "여러 가이드라인이 제시하는 반복 측정 및 24시간 측정, 야간 혈압 측정이라는 미충족 수요를 충족했기 때문에 이번에 학회 연구 공모과제로 선정된 것으로 풀이된다"고 밝혔다.

■야간 혈압까지 살핀다…한국형 스프린트 연구 내년 첫삽

야간 혈압을 반복해서 측정할 수 있는 방법론은 전 세계적으로 전무했다. 반지형 혈압계의 상용화 및 이를 통한 야간 혈압까지 포함한 대규모 코호트 착수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뜻.

국내 코호트는 반지형 혈압계를 통한 24시간 활동혈압 측정이 과연 효용성이 있는지, 주야간 측정값을 기반으로 치료를 시행한 그룹과 진료실 측정값을 기반으로 치료한 그룹간에 심혈관 사건 발생에 차이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 교수는 "표준 방식의 대조군과 반지형 혈압계 실험군을 각각 3000명씩 구성하고 약 15%의 중도 이탈자를 고려해 총 8000명 규모의 코호트를 구성하려고 한다"며 "기기에서 측정된 파형은 기기 업체로 전송돼 알고리즘을 거쳐 혈압 값으로 변화되기 때문에 환자에게 자료 이용 동의를 받아 변환된 수치값을 집계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모으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IRB를 거쳐 내년 초부터 2년 정도 환자를 모집하고 5년 추적관찰을 거치면 빨라야 2030년 경에 연구 결과들이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며 "최근 발표되고 있는 국내 스텐트 관련 연구들 역시 2017년도부터 진행된 것의 결실"이라고 말했다.

이해영 교수가 보여준 반지형 혈압계를 통한 20일 당일의 측정값. 무선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확인이 가능했다.

그는 "야간 혈압 측정에 대한 대규모 연구는 사실상 없고, 따라서 야간 측정값을 기반으로 한 치료 개입의 효과도 불분명하기 때문에 코호트 결과가 나오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며 "SPRINT 연구와 규모도 비슷하고 그간 시도되지 않았던 개입의 효과를 살핀다는 점에서 한국형 SPRINT 연구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강조했다.

2015년 미국에서 발표된 스프린트(Systolic Blood Pressure Intervention Trial, SPRINT) 연구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으로 유명하다.

기존 고혈압 치료 가이드라인은 주로 140/90 mmHg 미만을 목표 혈압으로 설정하고 있었지만, 혈압을 더 적극적으로 낮추는 것이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임상 데이터는 부족했다.

이에 SPRINT 연구는 9300명의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120mmHg 미만으로 혈압을 낮춘 그룹과 140mmHg 미만 그룹을 비교해 심혈관 질환 및 사망률 감소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 집중 치료군에서의 주요 심혈관 사건 발생률의 25% 감소, 전체 사망률의 27% 감소 효과를 밝혀낸 바 있다.

■반지형 혈압계는 예고된 미래…"과거 표준 지위도 급변"

이해영 교수는 "코호트 및 반복 측정을 통해 백의고혈압, 가면고혈압 환자군만 찾아내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라며 "백의고혈압 환자에게 들어가는 불필요한 의료비를 막고, 치료가 필요했던 가면고혈압 환자를 적시에 찾아내 치료하면 추후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까지 웨어러블 방식의 측정에 대해 불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기기든 도입 이후 대중화 과정에서 데이터가 축적되고 알고리즘이 수정, 개선되며 고도화돼 왔다"며 "불완전하니까 쓰지 말자라는 관점으로는 어떤한 개선과 편익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다양한 학회 지침에서 활동혈압 측정에 대한 권고 등급은 1로, 반지형 혈압계는 3으로 설정돼 있다. 이미 제도권으로의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 비교적 상용화 시점이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각종 연구 결과가 도출되는 미래 시점에서의 권고 등급 상향은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이 교수는 "반지형 혈압계를 끼고 매일 생활하고 있지만 딱히 큰 불편은 못 느낀다"며 "스마트폰을 통해 혈압 측정값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여러 수치들의 평균 값을 볼 수 있어 관리의 필요성 환기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불과 15년 전만 해도 수은혈압계 외에는 부정확해서 쓰면 안 된다는 논리가 있었지만 결국 수은혈압계는 퇴출됐다"며 "한때 배척되던 전자혈압계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10년 후에는 반지형 혈압계가 표준 측정기의 지위로 올라설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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