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출동| 전문의 당직제 시행 일주일 맞은 병원들
11일 오전 1시 20분 서울의 S대학병원 응급실. 뇌졸중으로 의심되는 60대 여성이 앰블런스에 실려왔다. 응급의학과 당직 전문의는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후 바로 검사실로 옮겼다. 일사천리로 모든 상황이 진행됐다.
전문의 당직제도가 시행된지 일주일째. 야간 응급실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러나 제도 시행에 대한 의료진의 거부감과 불만은 적지 않았다.
<메디칼타임즈>는 일명 응급실 당직법이 시행된 이후 응급의료체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서울 소재 대학병원 1곳과 수도권 중소병원 1곳을 각각 방문해 의료진과 함께 새벽까지 현장취재했다.
"응당법, 응급의료체계 개선 해답 아니다"
이날 A대학병원 응급실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한 의료진은 "휴가철이라 다들 서울을 벗어나서 그런지 모처럼 한가하다"고 밝혔다.
그 때 60대 중반의 남성이 응급실로 불쑥 들어오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중환자를 11시간이나 기다리게 하는 법이 어딨냐. 나도 기다린만큼 보상을 받아야겠다. 고소를 하던지, 방송에 내야겠다."
이 남성은 외상이 없고, 보행에도 문제가 없어 응급 상황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입원하기 위해 응급실 복도에서 장기 대기하면서 짜증이 폭발한 것이다.
OO대학병원 복도에는 대기하며 치료 중인 환자가 즐비하다.
그 이후로도 S대학병원 응급실은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로 인해 급박한 상황이 벌어지기보다 한시간에 한번 꼴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입원을 해야 하는데 병실은 없고, 응급실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환자들.
"도대체 언제 검사를 할 수 있느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 이들은 불만을 토로했고, 그 때마다 간호사나 의료진이 달려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달래기를 반복했다.
야간에 응급진료를 할 전문의가 없는 게 아니라 입원실은 부족한데 너무 많은 환자들이 몰려오는 게 문제인 듯했다. 이른 바 대형병원 환자 집중이 응급실 기능을 마비 시키고 있는 것이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드라마를 보면 응급실 공간이 부족해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낸다. 그래서 실제 그런지 물었다.
그러자 S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의료진은 "그렇다. 응급환자를 받으면 뭐하나. 응급수술 후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중환자실이 부족한데…그럼 환자를 살리기 힘들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어떤 날은 중환자실이 비어있는 병원을 찾느라 하루종일 전화통을 붙잡고 살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문제는 전문의 당직이 아니라 수가"라면서 "정부가 응급실과 중환자실 수가를 인상하면 병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투자할 것이고 응급의료의 질은 자연스럽게 개선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중증 응급환자 오면 당연히 콜…이걸 왜 법으로?"
응급실을 둘러보던 중 '응급실 당직전문의 온콜 스케줄'이 눈에 들어왔다.
OO병원 응급실에 걸려있는 당직전문의 스케줄
내과의 경우 소화기내과, 순환기내과, 호흡기내과, 심장내과, 혈액종양내과, 내분비내과, 알레르기내과, 신장내과, 감염내과, 류마티스내과 등 총 10개 세부 분과별로 구분해 당직 전문의를 게재하고 있었다.
산부인과 당직 전문의 명단 또한 '산과'와 '부인과'로 구분해 비치했다.
당직을 맡은 응급의학과 전문의에게 응당법에 대한 불만이 없느냐고 묻자 "사실 지금도 당장 수술을 요하는 심근경색 환자가 오면 해당 과 전문의에게 연락한다"고 답했다.
응당법 시행 이전부터 원래 외과, 정형외과 등 응급수술이 많은 진료과 전문의들은 1주일에 1~2번 당직을 정해 야간에 언제라도 콜 대기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S대학병원은 엄밀히 말해 온콜 시스템을 가동하지 않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굳이 온콜 시스템이 필요없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응급실에는 응급의학과 조교수 1명, 전임의 1명, 전공의 4명이 상주하고 있다.
심지어 내과, 신경과, 외과, 정형외과 레지던트들이 교대로 응급실을 지키고 있으며 중증외과팀이 별도로 구성돼 있다.
"온콜 필요한 환자 사전 정리 작업 필요"
이같은 문제점에 대해서는 일선 중소병원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10일 새벽 지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된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이 당직을 서고 있었다.
이 병원도 각 전문과목 별로 당직 전문의를 게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상호출, 즉 온콜이 필요한 환자를 만나기는 힘들었다.
이 병원 의료진은 "사실 대형 교통사고나 재난이 아니고서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충분히 처치할 수 있다"면서 "다른 과 전문의가 필요한 상황은 몇 달에 한번 정도"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빈도가 그렇다보니 대다수 의사들은 콜을 받으면 즉각 병원으로 달려온다"면서 "굳이 법으로 규정하고, 처벌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당직 의료진이 응급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실제로 이날 새벽까지 지켜본 결과 환자들은 대부분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처리했다. 다만 증상이 모호하거나 CT 등에 대한 판독이 필요하면 전화로 컨설팅을 받았다.
가령 흉부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라면 CT를 찍어 영상의학과 전문의에게 전화를 걸어 판독을 부탁하는 식이다.
이 병원 의료진도 일부 온콜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시했지만 모든 응급의료기관에서 전문의 당직이 필요한 게 아니라고 못 박았다.
이 병원 의료진은 "사실 온콜이 필요한 전문과목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면서 "결국 중요한 것은 환자 내원시 처치할 수 있는 의사가 있느냐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는 "법으로 모든 전문의를 묶어 놓는 것보다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인근 병원간, 병원 내부에서 얼마나 잘 대처하는가가 중요하다"면서 "증상의 경중을 따져 적재적소의 병원에 이송하는 시스템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S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도 "어차피 세부 분과 전문의가 아니면 온콜을 받더라도 소용 없는 게 아니냐"면서 "그런데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을 법으로 정하고 처벌기준을 만든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사실 병원 규모에 맞게 나름의 응급의료체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왜 굳이 법을 개정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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