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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망받던 외과 여의사, 의약분업 겪은 후 메스를 놓다

발행날짜: 2013-01-02 06:30:59

기획노혜린 교수, 의료계 집단매도 충격…의학교육자 변신

메디칼타임즈 이석준 기자가 신년기획 플래카드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직접 한라산을 등반했다.
1993년 의사면허를 취득한 초보 여의사. 당시 여의사에게 볼모지나 다름 없었던 외과 전공을 택한다.

10여년 뒤, 수 많은 유리벽을 부수며 국립대병원 외과 교수의 자리까지 올라선 그녀. 돌연 메스를 놓기로 결심한다. 환자보다 의사를 치료하는 게 더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국내에 몇 안되는 의학교육학교실 전임교수인 인제의대 노혜린 교수.

불과 2년 전만 해도 그는 국립대병원의 촉망받는 외과 교수였다. 그런 그가 돌연 메스를 놓고 교편을 잡았다.

봉사를 꿈꿨던 삶…의대 교육과정에 의심을 품다

"고등학교 때는 막연히 남을 돕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러던 중 의사만한 직업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의대에 진학했죠."

하지만 의대 생활은 그의 꿈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짜여진 수업과 실습으로 숨 돌릴 틈조차 없었고 끊임없는 주입식 교육은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의사로서의 삶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조건 암기를 해야 하는 시간이 계속됐죠. 도대체 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것인지, 암기왕을 키우는 것인지 혼란스러웠어요."

그러자 그는 교수가 되면 암기식 교육을 지양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하지만 모든 이의 삶이 그러하듯 그는 또 다른 운명으로 빠져들었다.

인턴 실습을 돌던 중 그의 재능을 알아본 외과 교수가 그에게 메스를 권한 것이다.

노 교수는 "당시에는 여의사가 많지 않아 대다수 동기들은 소아과 또는 산부인과를 선택했다"면서 "과연 여자인 내가 외과 의사로 살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이미 수술에 재미를 느낀 그에게 이러한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당당히 메스를 집어 들었고, 그의 재능이 빛나며 몇년 지나지 않아 강원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로 부임한다.

"수술이 너무 재미가 있었고 환자들이 건강해지는 것을 보면서 보람이 있었어요. 외과 의사가 천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2000년 의쟁투, 그의 인생을 되돌리다

이렇게 외과 의사로 승승장구하던 그 때 의약분업으로 촉발된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의쟁투)가 그의 운명 앞에 놓인다.

의료계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 하지만 어느 의사보다 그에게 더욱 큰 의미로 다가왔다.

"의사가 열심히 치료하면 환자들도 알아줄꺼다. 그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의쟁투 당시 의사들의 목소리가 모두 이기주의로 비춰지는데 충격을 받았죠."

이러한 충격은 젊은 교수에게 혼란을 가져왔다. 의사들이 공공의 적으로 비춰지고 밥그릇을 챙기려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되는 상황은 그에게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노 교수는 "당시를 돌아보면 의사들이 전문가로서 리더십도,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소통의 능력도 없었다"면서 "결국 능력있는 의사들은 많았지만 좋은 의사는 드물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혼란으로 그는 의학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각인하게 된다.

수술을 잘하는 의사도 중요하지만 사회에서 인정하는 의사를 키워내는 교육이 시급하다는 생각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그는 독학으로 외국 대학의 사례를 살펴보고, 각종 학술지와 논문을 찾아보며 의학교육의 뜻을 키워간다.

이러한 그의 노력을 인정한 강원의대도 그에게 의학교육에 대한 부분을 일임했다. 이로 인해 그는 메스와 교편을 양손에 잡았고 국내 최초로 의학교육학교실을 열게 된다.

의학교육의 전도사 변신…인제의대서 새로운 시작

한번 뜻을 정하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그였기에 의학교육을 전파하는 것도 거리낌이 없었다.

지금은 모든 의대 교육과정의 기본이 되는 문제바탕학습(PBL)을 국내에 들여왔고, 토의식 수업을 도입해 소통 능력을 키우는데 주력했다.

학생 선발 과정도 바꿨다. 단순히 성적으로 학생을 뽑는 것을 지양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다중미니면접(Multiful Mini Interview)을 도입했다.

MMI란 한 방에 8분씩 10개의 방을 돌며 면접을 진행하며 의사소통과 윤리, 리더십에 대한 부분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노 교수가 강원대에 최초로 도입한 이래 서울의전원 등 상당수 대학들이 이 방법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노 교수는 "좋은 의사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선발 과정부터 선발 후 교육, 이후 수련에 이어지는 일련의 커리큘럼이 필요하다"며 "단순한 강의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익히는 방식의 수업이 주가 돼야 한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이렇게 의학교육에 매진하는 동안 그에게도 변화가 찾아온다. 수술과 교육을 병행하는데 따른 물리적인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10년 넘게 잡아온 메스를 놓기로 결정한다. 한 사람의 환자를 살리는 것보다 그러한 의사를 키워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 교수는 "솔직히 그동안 많은 선후배 의사들이 사회에서 배척당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나는 외과 의사였기에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눈에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문제를 보고서도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며 "너무나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결국 외과 의사의 삶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환기시켰다.

이에 따라 그는 지난해 국내 의학교육의 1번지인 인제의대에 의학교육학교실 전임 교수로 부임했다. 지금까지 병행해 온 의학교육에 매진하기 위해서다.

부임 후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교수들에 대한 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학생교육도 중요하지만 우선 스승이 바뀌어야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의학교육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어요. 과거 군대식 수직문화가 수평적 문화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한 의미에서 이제는 교수가 바뀌어야 해요. 주입식 강의에서 벗어나 토론하고 함께 고민하며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의학교육학의 선구자인 만큼 그는 전국 각 의대로부터 수없이 초청 받아 강의를 하고 교육 프로그램 마련에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전국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협의회 전문위원으로 국내 의학교육의 기틀을 잡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수십년간 굳어진 의학교육 커리큘럼이 단번에 바뀌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다만 제가 가진 생각들이 학생들에게 전해지고 그 학생들이 교수가 돼 다시 전해주다보면 서서히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고 믿어요."

자그마한 체구지만 다부진 어투로 신중하게 질문에 답하는 그를 보면서 그의 손에 들린 교편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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