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서 의약품 시판 후 축적된 리얼월드 데이터(Real World Date, RWD)를 허가사항과 연계하기 위한 방안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RWD를 통해 근거 도출이 곧 규제 과학의 근간이 된다는 점에서 의약선진국의 경우 실제 제도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도 나온다. 해외 RWD 활용 사례, 국내에서의 제도화 움직임 등을 짚었다. -편집자 주
<상> RWE-허가 체계 연계, 선진국 사례는 <하> "RWE-허가 연계, 피할 수 없는 흐름"
리얼월드 데이터(Real World Date, RWD)에서 확인된 의약품 관련 안전성과 효능 등의 실제 근거들이 적응증 확대, 신규 허가에 반영된 사례가 나오면서 국내에서도 RWD 활용 방안 논의가 불붙고 있다.
국내에서는 RWD 도입 필요성에 대한 공감 내지 제도화 방향에 대한 공감대 확인 차원에서 머무르고 있지만 미국, 일본, 유럽은 이미 허가 체계 내에서 RWD의 활용 방안까지 접근이 이뤄진 상태.
특히 기존 의약품과의 직접 비교 임상이 어려운 희귀의약품의 도입과 적응증 확대에 적극적인 제약사의 경우 임상 데이터의 적극 활용을 촉구하고 나서는 등 제약사 및 학회, 규제기관 별 입장도 큰 틀에서 RWD-허가 연계에 방점을 찍고 있다.
국내의 RWD 도입 움직임과 제약사, 학회들의 의견을 들어 활용 방안 및 체계적 제도화 방향을 정리했다.
▲제도 필요성에 눈 뜬 식약처, 활용 방안 공감
이달 16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후생노동성은 공동으로 한-일 의약품 민관 심포지엄을 코엑스에서 개최하고 의약품/의료기기 관련 최신 규제 동향 및 임상시험 제도와 개선 방향, 양국의 약가체계 동향 등을 공유했다.
이날 관심을 끈 부분은 일본의 의약품/의료기기 허가 기관 PMDA(Pharmaceuticals and Medical Devices Agency)가 2020년을 목표로 RWD 활용 가이드라인 마련을 공표했다는 점.
일본은 RWD를 분석, 규제 활용 목적의 실사용증거(Real World Evidence, RWE)를 얻기 위해선 데이터 표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2020년 4월 이후부터 모든 신약 승인 신청 시 평가에 필요한 데이터의 전자기록 제출을 의무화했다.
일본은 전자 데이터로 집계된 전자진료기록카드 DB 및 임상시험 자료를 분석해 시판 후 의약품의 안전성 정보 리뉴얼과 약효군 별 의약품의 소아 용량 검토, 특정 질환 모델 시뮬레이션, 평기지표 개발에 활용한다는 계획.
일본은 RWD 활용이 의약품 안전성 정보 접근성 향상을 통한 일반 소비자, 환자들의 건강권 증진뿐 아니라 원활한 임상적 유효성 결과 도출을 통해 신약 개발을 증진시킨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미국 역시 전자의무기록 자료를 활용해 의약품의 효능 및 안전성과 관련해 실시간 RWD의 분석, 반영한다는 계획을 공표한 바 있다.
국내 상황은 어떨까. 작년부터 식약처도 전문가들간 의견 수렴의 장을 마련하고 있지만 여전히 구체화된 방안 수립까지는 걸음마 단계라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식약처는 작년 8월 간담회를 개최하고 RWD 활용 방안에 대해 학회 임원, 산업계, 제약사들을 초청,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핵심 아젠다는 세계의 RWD 활용 흐름 속에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는 데 초점이 모아졌다.
식약처 관계자는 "합성 의약품 쪽과 바이오가 영역이 크게 다르다 보니 각자 세계에서의 RWD 활용 방안에 대해 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의약품 쪽은 이미 연구용역 사업을 발주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바이오의약품 과에서도 외국의 심사 과정에서 RWD/RWE 활용한 사례를 수집해 책을 발간했다"며 "해당 사례집에서는 미국 FDA, 유럽 EMA의 활용 사례들이 주로 등장한다"고 말했다.
식약처도 선진 규제 기관의 사례를 참고하는 만큼, FDA/EMA의 RWD 활용 방안은 국내 제도화에 벤치마킹 틀로 기능할 뿐더러 사실상 RWD-허가 연계는 미래형 제도화 방향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뜻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디지털 시대이기 때문에 축적된 빅데이터를 어떻게 분석, 적용할 지에 대한 논의가 불붙고 있다"며 "규제 기관뿐 아니라 학회, 제약사도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규제 과학의 당위성을 역설하기 때문에 RWD를 통한 근거 창출, 이를 기반으로 한 규제 과학의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국내에서는 의약품 시판 후 관리 사항으로는 PMS(Post Market Surveillance, 시판후조사)밖에 없는 실정으로 재빠른 의약품 위해 정보의 수집, 반영이 어렵다"며 "RWD-허가 연계는 업계 신약 개발 가속과 환자들의 안전 측면 모두에서 윈윈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본이 풍부한 외국계 제약사는 시판후 자료를 풍부하게 만들 수 있지만 국내사는 그럴 여건이 안되기도 한다"며 "이제 해외에 나가려면 국내 임상 결과가 아니라 RWD가 중요한 근거로 작용하는 날이 올 수 있다"고 RWD 도입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학회도, 제약사도 "RWD 실사용에 속도내야"
제약사들도 본격적인 RWD 실사용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의 시판 후 조사(PMS)를 통한 재심사는 인적, 시간적 비용이 큰 데다가 즉각적인 연계에도 효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달 식약처 주최로 열린 'RWD/RWE 기반 의약품안전관리 연구전략 마련 심포지엄'에서도 현재의 PMS 방식을 대체하기 위한 해법들이 속속 제시됐다.
핵심은 PMS 수집의 어려움과 비용 소요에도 불구하고 실제 연구와 차이가 커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것. 식약처도 PMS 제도의 급진적 폐지보다는 RWD를 기반으로 RMP(Risk Management Plan, 위해성관리계획)로의 흡수를 제시했다. RWD가 다양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제 투약 자료기 때문에 활용도 및 신뢰도가 높다는 점을 직간접적으로 인정한 셈.
실제 미국 FDA, 유럽 EMA는 신약의 적응증 확대에 허가의 근거가된 임상시험을 메타 분석해 RWE를 도출하거나 희귀의약품의 단일 임상 결과를 과거 축적된 레지스트리와 비교 분석하는 방법으로 효용성을 평가하고 있다.
희귀의약품을 취급하는 H 제약사 관계자는 "허가 및 급여를 얻기 위해 근거 자료를 제시하라는 데 반대할 제약사는 없다"며 "문제는 소수 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희귀의약품의 경우 헤드 투 헤드 임상은 커녕 경제성평가 자체도 불가능할 때가 많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 사례를 보면 면역항암제 바벤시오주는 직접 비교 임상이 없는데도 RWD를 통해 치료제의 유효성을 입증, 조건부 판매승인을 얻은 바 있다"며 "국내와 해외의 가장 큰 차이는 RWD를 신뢰할 수 있는 자료로 인용하냐, 마냐의 인식 차이"라고 강조했다.
FDA와 EMA는 질환의 희귀성 등을 고려, 과거의 치료이력 대조군으로부터 얻은 데이터 및 문헌정보 분석만으로도 바벤시오 주의 허가를 내줬다. 또 암젠은 자체 개발 백혈병 치료제 블린사이토 주와 관련 기존 RWD를 활용, 자체 환자 분포 빈도 가중/보정 자료를 제출했지만 이 역시 근거로 인용됐다.
임수 분당서울특별시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학회와 개인 연구자들이 다양한 RWD 자료를 생산하고 있고 의미있는 연구에는 정책 입안자들이 반영을 한다"며 "문제는 받아들이는 사람이 의미있다고 판단하면 받아들이는 것이지 제도적으로 반영 기전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규모 연구를 통해 치료 효과가 입증된 약제라고 하면 학회에서 공청회 등을 거쳐 정부 기관에 보험 급여를 요청하기도 한다"며 "역시 요구 차원에서 끝날 뿐 보험 급여화와 에비던스의 확실함 정도가 100%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꼬집었다.
비만 환자의 경우 비만 수술은 보험이 되지만 비만약제는 비급여로 설정이 되는 등 급여 우선순위 결정에도 근거 중심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뜻.
임수 교수는 "대한비만학회에서 비만은 질병이기 때문에 비만 약제에 대해서도 폭넓은 보험 적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많은 경우 정부는 보험 재정 문제를 거론한다"며 "전세계적으로 RWD 활용 방안이 대두되는 것 역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규제 과학의 당위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약효, 효능이 입증된 약제에 보험적용을 하는 것이 오히려 근거에 기반하기 때문에 보험 재정에 기여할 수 있다"며 "따라서 RWD-허가 연계 제도화에 보다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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