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과로·스트레스에 짓눌린 흉부외과 의사…그들이 사는 법 주4일 온콜·수술·외래·연구 등 과부하로 결국 심근경색 앓아
|기획| '마지막 해결사' 흉부외과 의사의 현실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소위 '바이탈'과의 대표주자 흉부외과. 없어서는 안될 전문과목이지만 의료계 3D로 분류되면서 기피과를 넘어 대가 끊길 위기라는 경고가 새어나온다. 메디칼타임즈는 흉부외과의 현실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상>심장수술 전문의가 심근경색 앓게 된 사연
수도권에 위치한 ㄱ대학병원 흉부외과 나지친(46) 교수는 4년전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평소 과로와 스트레스가 병을 키웠다. 살인적인 업무량이 건강을 위협할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흉부외과 의사의 길을 택한 이상 피할 방법이 없었다.
나 교수는 과장을 포함 총 4명의 스텝 중 막내 교수였다. 레지던트는 물론 전임의(펠로우)도 없었다. 인턴이 있다는게 유일한 위로였다. 전임의와 레지던트가 없으니 선배 교수들의 수술 보조는 나 교수의 몫이었다. 수술 후 환자를 살피는 것도 당연히 그의 일이였다. 직함은 교수이지만 펠로우 10년차쯤 되는 듯한 느낌이다. 그 와중에 교수 승진을 하려면 자신의 이름으로 수술도 해야하고 논문도 써야한다.
응급실 온콜은 일주일에 4일. 과거 교수가 단 2명이던 시절, 365일 중 362일 온콜을 받던 것을 생각하면 나아진 셈이다. 온콜은 병원에서 당직을 서는 대신 응급환자가 있는 경우 집으로 연락이 오면 대처하는 응급호출 방식.
하지만 응급실 연락이 안오는 날은 거의 없다. 흉부외과 특성상 열에 아홉은 콜을 받으면 병원으로 뛰어가야한다. 한번은 이럴꺼면 당직비라도 달라고도 해봤지만 당직비를 받으려면 온콜이 아니라 병원에서 머물러야만 받을 수 있다고 해서 포기했다.
그래도 몇년전 아내의 암투병을 겪은 일을 생각하면 아무 일도 아니다. 펠로우를 마치고 드디어 교수로 부임하던 해, 아내는 유방암 2기 판정을 받았다. 셋째가 태어나서 채 돌이 지나기 전이었다.
아픈 아내를 대신해 아이들을 어린이집으로 데려다주고 출근을 할 수 있게 배려해준 동료들이 감사할 따름이다. 그때 결심했다. 평생 주4일씩 온콜을 하며 살아도 불평하지 않을테니 아내가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다행히 아내는 완치됐고, 그는 그의 기도처럼 살인적인 스케줄을 버텼다.
나 교수의 아침은 새벽 6시부터 시작됐다. 그나마 병원에서 집이 가까워서 여유가 있다. 오전 7시까지 병원에 출근해서 8시이전까지 컨퍼런스가 열린다. 8시부터 외래 진료 혹은 수술 일정에 맞춰 움직인다. 막내 스텝인 나 교수의 수술 일정은 주로 월요일 오전 혹은 금요일 오후, 특히 금요일 오후는 다들 꺼린다. 수술 이후에 환자 상태를 살피려면 주말에 한번을 출근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나 교수는 수술 보조에 자신의 수술 일정도 챙기려다보니 평일에도 야간수술이 일상이다. 5시 넘어서 시작한 수술은 대게 9시 마친다. 함께 고생한 간호사들과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시 수술한 환자 상태를 보고 집으로 가야 마음이 편하다. 그에게 근무시간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승진을 하려면 연구실적을 내야하는데 평일에는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주말에 병동 회진을 나왔다가 연구실로 향한다. 소위 빅5병원이라는 대형 대학병원 교수들은 시간적 여유도 있는데다가 전공의들이 졸국을 하며 쓰는 논문에 지도교수 이름이라고 넣을 수 있는 게 부러울 따름이다.
대형 대학병원만큼은 아니더라도 흉부외과가 선순환 구조로 돌아서기만 해도 좋겠다. 병원 경영을 하는 교수들 말로는 흉부외과는 월 수술건수가 50건은 넘어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고, 그 이상부터 추가 인력을 채용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전국의 모든 대학병원 흉부외과 교수들이 그 선순환 구조를 맞출 때까지 몸을 갈아 버텨야 하는게 현실이다.
하루 24시간을 쪼개어 써도 급여는 대기업에 근무하는 동년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에 힘이 더 빠진다. 그나마 펠로우 시절에는 가산금으로 버텼는데 교수가 되니 그마저도 사라지면서 오히려 실수령액은 줄었다. 아내의 친구 의사 남편들은 전문과목과 무관하게 개원가에서 피부·미용 등 비급여 진료로 2~3배 이상의 급여를 가져오는 얘기에 자괴감에 빠진다. 그래도 나 교수는 믿는다. 자신이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마지막 해결사라고.
한때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뉴하트'에서 주인공이 20년 넘은 구형 소나타를 타고 다니며 수술하느라 집에 못하는 모습이 비춰졌다. 당시 교수가 된 직후였던 나 교수는 흉부외과 의사는 고생만 하고 돈은 못번다는 이미지를 주고 싶지 않아 일부러 없는 살림에 외제차를 구입하고 후배들을 데리고 비싼 저녁을 먹이며 흉부외과의 장점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돌아온 전공의 대답은 "의사로서 존경하지만 저는 그렇게는 못 살것 같아요"였다.
4년 전, 심근경색의 위기 버텨낸 나 교수는 요즘 좀 살만하다. 수년간 몸을 갈아넣은 댓가로 소위 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화는 1년전부터는 나 교수 밑으로 펠로우도 들어왔고, 올해 ㄱ대학병원 흉부외과 개국이래 처음으로 전공의 1년차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과거 흉부외과 전체 수술 건수가 한달에 20건을 오갔지만 이제는 나 교수의 수술 건수만도 월 30건에 달한다. 얼마 전부터는 전체 흉부외과 수술 건수가 연 1000건을 넘겼다. 나 교수와 과장 2명이던 흉부외과 스텝이 어느새 6명까지 늘었다. 선순환 구조로 들어선 덕분일까. 몇년 전부터 병원에서 가산금을 지급하기 시작하면서 살림도 나아졌다.
하지만 나 교수는 아직 갈길이 멀다. 위로는 선배 교수 4명이 있다. 앞서 지독한 번아웃을 겪으며 전임트랙에서 승진은 포기했다. 대신 임상교수로 수술과 환자 진료에만 집중한다. 그래도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포기할 수가 없다. 교수의 길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자신을 믿고 따라와준 펠로우와 전공의에게 교육만큼은 챙긴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것 다음으로 나 교수의 심장을 뛰게하는 일이다.
"요즘은 좀 살만해요"라고 말하는 나 교수는 여전히 번아웃에 의욕을 잃고 술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동료와 후배들이 걱정스럽다. 누구나 사춘기처럼 찾아오는 번아웃, 그는 지친 흉부외과 의사들이 노는 법을 배웠으면 하는게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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