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 혁명과 맞물려 국산 혁신 의료기기 사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이에 대한 실증사업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빅5로 불리는 대형병원들이 테스트베드를 자처하며 임상시험 등을 통한 검증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 하지만 일각에서는 1회성 사업 구조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새어나오고 있다.
서울권 대형병원 중심 국산 의료기기 실증사업 활발
4일 의료산업계에 따르면 서울권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정부 과제나 자체적 지원시스템을 통한 의료기기 실증사업이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같은 경향은 현재 진행중인 실증, 지원 사업만 봐도 여실히 드러난다. 올해가 시작된지 불과 두달이 되지 않았지만 대형병원들의 사업들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정보 융합 자동화 의료기기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한 서울아산병원이 대표적인 경우다.
서울아산병원은 현재 의료 로봇과 의료 인공지능, 디지털 치료기기 등의 상용화를 추진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최대 5천만원의 지원을 기반으로 하는 연구 수행 지원 사업을 마련하고 참여사를 모집중에 있다.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상용화에 한계를 가지고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예산을 투입해 임상시험과 비임상시험을 지원하는 동시에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이 직접 임상 자문과 컨설팅 등의 업무를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연세의료원도 혁신 의료기기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증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중점 분야는 생체계측기기와 혁신형 재활 기기 등 스마트 환자 케어 기술 분야.
보건복지부가 인증한 혁신형 의료기기 인증 기업이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증한 혁신 의료기기 제품군이면 참여가 가능하며 대상 기업에 선정되면 12개월간 세브란스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 의료진들의 자문과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선정 기업이 15%만 비용을 부담하면 의료기기 실증을 위한 임상, 비임상시험에 대한 지원도 가능하다.
또한 연세의료원은 이와 함께 의료 인공지능 기반 영상진단 소프트웨어에 대한 실증사업도 함께 진행한다.
연세대 의과대학 데이터사이언스센터가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폐결핵과 유방암, 폐암폐결절, 뇌경색 등 6개 질환에 대한 AI 기반 영상 진단 소프트웨어의 실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참여를 희망하는 기업이 검증을 요청하면 연세의대 교수진들이 임상적 정확도를 검증하고 이에 대한 우수성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아예 상시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만든 곳도 있다. 삼성서울병원이 대표적인 케이스. 삼성서울병원은 자체적으로 '디지털헬스케어 생태계 구축사업'을 마련해 상시적인 지원 사업을 진행중에 있다.
이미 기술력은 충분히 검증을 받았지만 비용적인 문제로 더 이상 속도를 내지 못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삼성서울병원이 직접 의료진과 임상시험 인프라는 물론 사업 비용까지 지원해 상용화까지 이끌어내는 구조다.
삼성서울병원 전홍진 디지털치료연구센터장은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을 삼성서울병원의 의료진과 잇는 허브를 만들어 디지털헬스케어에 대한 생태계를 만든다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우리나라 헬스케어 산업 발전에 기여하며 국가적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형병원 등 편중 현상 비판도…일각선 1회성 사업 한계 지적
이처럼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혁신 의료기기 테스트베드를 자처하며 실증사업이 줄을 잇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편중 현상에 대한 비판의 시각도 나오고 있다.
정부 과제나 실증사업, 나아가 생태계 자체가 서울권 대학병원에 쏠리면서 지역 기업이나 병원의 경우 심각하게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권 대학병원의 인프라는 충분히 인정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인프라의 불균형이 심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지역 2차 병원인 A대병원 보직자는 "나도 빅5에 있어봤지만 이 정도로 부익부 빈익빈이 심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며 "서울이라면 산하 병원 하나가 수행할 정도의 과제들을 가지고 지역 병원들 전체가 목을 매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물론 대형병원들의 인프라가 워낙 좋고 브랜드 가치도 높은 것은 인정하지만 이렇게 되면 이러한 불균형은 점점 더 심각해질 수 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니 지역 기반 기업들마저 일주일에 몇 번씩 서울을 오가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는 것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심한데다 그나마 지역에서도 국립대병원 등 거점 병원이 이러한 사업과 과제들을 싹쓸이 하면서 지역 병원들은 의지가 있어도 이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 이들의 하소연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물론 각 지자체들이 힘을 쏟고 있는 산업단지 등의 매력도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지적.
이 보직자는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보니 아무리 테크노벨리 등 산업단지들을 통해 기업들을 유치하려 해도 계속해서 공실이 유지되는 상황이 생겨나는 것"이라며 "국가 주도 과제나 사업이라도 지역 균등 발전을 위해 기계적으로나마 분배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한편에서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실증사업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상당수 실증사업들이 1회성으로 끝나다보니 그저 과제를 위한 과제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상용화와 사업화가 확실한 모델을 선정해 끝까지 견인하는 역할보다는 보고서를 내기 위한 사업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결국 실증사업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렇게 실증을 마친 기술과 기업이 실제 시장에 제품을 내놓을때까지 전주기로 지원하는 모델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의료 AI 기업 B사 대표는 "혁신 의료기기 사업이 주목을 받다보니 수많은 지원 사업과 실증 과제들이 나오고 있지만 전부 다 1회성으로 끝나는 케이스들이 대부분"이라며 "그러나보니 예산을 주는 정부도, 이를 수행하는 병원도, 나아가 기업까지 다 단순한 과제로만 생각하고 보고서를 쓰기 위한 연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그는 "이렇게 되면 단순히 실증 단계에서 성장이 멈춰버리는 일명 좀비기업들만 수두룩하게 양산하게 될 것"이라며 "정말로 국산 혁신 의료기기를 밀어주겠다는 의지라면 그 예산을 될만한 기술,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실증을 넘어 임상시험, 나아가 상용화, 수출까지 밀어주는 전주기 사업에 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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