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제도는 후행적이다. 시대와 사회가 먼저 변하고 그 변화를 규율하기 위한 틀은 한 걸음 뒤쳐져 따라 간다. 사법이 과거를, 행정이 오늘을 처리한다는 격언 역시 미래 지향적이지 못한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는 말이다.
당시의 보편 타당한 '룰'을 만드는 과정은 지난하고 느릴 수밖에 없다. 룰의 태동이 반드시 현재와 부합하거나 현상에 대한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
그런 의미에서 법과 제도, 정책은 일몰과 부침을 겪는다. 제도 시행 이후 제도를 평가, 개선하는 일은 행정에서는 일상다반사. 뒤쳐진 시간과 사회와의 간극을 좁히는 작업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 'K-방역'이 정권의 치적 홍보 수단에서 불명예의 타이틀로 추락할 조짐이다. 당장 이번달만 해도 100만명당 확진자 세계 1위라는 굴욕을 맛봤다. 치명률이 낮다는 핑계가 있지만 그 성과 역시 8월 기준 세계적으로 100위권에 들지 못하는, 말 그대로 순위권 밖이다. 엄격했던 통제가 오히려 통제 불능의 바이러스의 역습(backlash)을 이끌어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는 것.
단기간 내 평가가 뒤바뀐 건 그만큼 정책이 긍정적인 결과물로 환원되지 못했다는 지표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개인/집단의 희생을 전제로 공공의 이익(방역)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정책은 팬데믹 초기에는 적합했을지 모르지만 현재는 다르다. 변이가 우세종으로 자리잡으로면서 치명률이 낮아지고 전파율이 높아지는 등 2년 전과는 그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미국, 영국 등에선 실외는 물론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로 노 마스크, 일상으로의 회귀는 드문 일이 아니게 됐다. 치명률이 독감과 비슷하거나 더 낮아진 상황에선 위드 코로나와 같은 정책 변화가 오히려 현재의 상황에 더 부합하는 대응책이 될 수 있다는 것.
해외에서의 노 마스크 행렬이 즐비한 축제, 대규모 경기 관람 등을 어리석은 일이라 비웃었지만 어쩌면 그들은 치열한 고민 끝에 느슨한 방역을 통한 집단면역 확보가 개인의 자유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최적의 선택지라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완벽한 정책, 제도는 없다. 어쩌면 초기 K-방역의 성과에 취해 바이러스의 변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실기했을 수 있다. 정책이 시대, 사회와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평가는 늘 현재진행형이 돼야 하는 이유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정책은 늘 그렇다. TV에서나 우리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맨 얼굴의 군중들이 일상으로의 회귀한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건, 희생했음에도, 희생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확진자 수 전세계 1위라는 건,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을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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