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에 이어 응급의학과도 붕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계속된 응급실 과밀화 문제에 의료진에 대한 처벌 기조가 더해지면서 현장에서 이탈하는 전문의들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16일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2023년 학술대회 기자간담회를 열고 응급실 현장에서 의료진 이탈이 본격화한 상황을 조명했다. 올해만 해도 10명의 전공의가 응급의학과 수련을 포기하고 20~30명의 전문의가 개원하거나 다른 직역으로 옮겼다는 설명이다. 내부 추계에 따르면 전체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10% 이상이 개원가에서 활동하는 등 이탈이 본격화했다는 것.
이와 관련 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정부는 응급의학과 의사를 늘리겠다고 하는데 전공의 지원율이 100%가 아닌 상황에서 어찌 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지금처럼 지원율이 감소하는 추세에 같은 응급실 의료진들의 이탈이 심화한다면 응급의료체계 붕괴가 머지않았다. 한 번 망가진 시스템을 고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구체적인 붕괴시기를 묻는 질문에 응급의학의사회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이후 4년 만에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이 26%로 급감한 상황을 조명했다. 올해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율 역시 85%로 감소했으며, 대구 응급실 뺑뺑이 사건으로 전공의가 피의자로 조사 받는 등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이와 관련 이 회장은 "응급의학과 지원율이 내려가는 추세인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안 좋은 일 많아져 계속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 상황을 보면 앞으로도 안 좋은 일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렇다면 지원율은 더욱 떨어진다.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반등 계기가 필요하고 이는 현장 의료진들이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응급의학의사회 김태훈 정책이사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응급의학과 전문의 구인난이 심해진 상황을 지적했다.
김 정책이사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구해달라는 연락 많이 받는데 아는 의사는 많아도 다른 직종이나 과로 일하는 이들이 많아 추천할 수가 없다"며 "코로나19 이전엔 공고가 나기만해도 채용이 됐는데 이제 비공식사이트에서 30여 곳에 구인이 있어도 채용을 못한다. 이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들이 응급실에서 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현재 부각되는 중증응급환자 응급실 이송지연과 환자거부는 새로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전부터 지속되던 문제들이 더욱 심화되는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가장 큰 원인은 응급의학과 전문의나 응급실 침대 부족이 아닌 중환자실·수술인력 부재 등 배후·최종치료 인프라 부족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과거 사전연락 없이 환자를 이송하던 때에도 응급실에서 상급병원으로의 전원은 매우 어려웠다. 이송지연·연락·병원선정 등의 부담을 수용 응급실 근무자가 모두 지고 있었는데, 혼자서 근무하는 응급실이 전체의 50%가 넘어 전원업무에 매달릴 시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를 지나면서 119의 사전수용여부 확인이 일반화되면서 입원·수술 등 최종치료가 어려워 보이는 환자들에 대한 수용거부가 늘어나게 됐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명백한 잘못이 없음에도 의료진에 법적인 책임을 지는 판결이 계속되면서 중증이나 사망 가능성 있는 환자들에 대한 소극적 진료와 방어진료 기조가 확산됐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수용거부를 금지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현장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중증환자가 많은 응급의료 특성상 환자를 받아도 결과가 나쁘면 소송, 환자를 받지 않아도 범법자가 된다는 법적인 불안감이 공존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이 회장은 "수용거부 금지와 강제배정은 중증응급환자 문제해결의 대책이 될 수 없다. 응급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데 응급실을 쥐어짜 해결하겠다는 잘못된 발상"이라며 "응급실 과밀화 문제는 무제한적인 병원선택권, 상급병원 선호현상, 비정상적 의료전달체계와 보상체계, 경증환자를 담당할 1차 의료의 붕괴, 중등도가 아닌 편의를 고려한 응급실 이용 문화 등 복합적 원인에 의해 생긴 현상이다. 응급실 자체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현 상황의 구체적인 원인을 파악하려면 응급실이 과밀화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병원 자체가 과밀화된 것인지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또 과밀화 환자군의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응급의학의사회 최석재 홍보이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잘 살펴야 한다. 근본적인 원인은 권역응급센터가 원활하게 전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경증환자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라며 "퇴원·전원·입원을 빨리 결정되지 않는 것은 권역센터가 가득 차있어 중증환자 보고 싶어도 못 본다"고 말했다.
이어 "더욱이 병원 입장에서 중증환자는 볼수록 손해다. 이런 환자들을 보는 것이 이득이라면 당연히 인프라 늘어난다"며 "실제로 코로나19때 인센티브를 부여하니 중증병상을 늘리는 병원이 나오고 14개 병원은 아예 전담병원을 자처했다. 권역응급센터 자격 뺐고 의사를 처벌하는 것으론 해결되는 게 없다"고 지적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응급상황에서 명백한 과실이 없는 의료행위에 대한 면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가피한 의료사고의 위험에서 환자와 의료진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응급의료 사고 책임보험을 도입하라는 주장이다. 또 환자수용 결정을 법적으로 강제하거나 경찰수사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경증환자의 119 이용 유료화를 통한 이송 중단 유도 및 이송지침 위반 제재 ▲응급실 폭력 가해자 응급실 이용 제한 ▲경찰의 통제불능 주취자 응급실 이송 법안 중단 등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 최 홍보이사는 "경증환자의 진료권을 보장하고 환자를 분산할 수 있는 일차의원, 급성기클리닉 등의 야간진료, 휴일진료에 대한 수가인상과 실질적인 대안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과밀화 해결과 부적절한 응급실 이용문화 개선을 위한 장기적인 대책으로 대국민 홍보와 교육할동에 유관기관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 함께 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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