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분야에서 의료진에 억대의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심장수술 후 10여 분간 심정지가 발생해 식물인간 상태가 된 환자와 관련해 수술을 진행한 의사측에 2억원의 배상책임이 있다는 판단이다.
15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광주지방법원 제11민사부(재판장 유상호)는 환자 A씨 등이 B병원을 향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병원 측에 2억원의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환자 A씨는 지난 2019년 1월 B병원 순환기내과 외래로 내원해 심장 이상에 관한 진료를 받았다. A씨는 검사 도중 심방중격에 크기 3.32㎝ 및 2.3㎝의 결손 및 이로 인한 폐동맥 고혈압을 발견해 같은 해 5월부터 흉부외과에서 외래진료를 시작했다.
B병원 주치의는 7월 3일 오전 10시부터 약 3시간 동안 A씨에 대한 자가 조직 심막을 이용한 심방중격결손 폐쇄술(patch closure of ASF with autologous paricardium)을 시행했다.
해당 수술을 진행할 때는 환자에게 심장 정지액을 주입하는데, 신체의 나머지 조직들은 지속적인 혈액 공급이 필요하기 때문에 심폐바이패스(체외순환)를 시행해 인공심폐기가 심장과 폐의 역할을 대신하도록 한다.
심폐바이패스를 시행하는 도중에는 심장으로 돌아오는 혈액을 모두 차단해 관을 통해 인공심폐기로 뽑아내고, 모인 혈액은 산화기를 거치면서 혈액 내 이산화탄소가 제거되고 산소가 공급돼 동맥혈로 바뀐 후, 인공심폐기 내 펌프에 의해 대동맥을 통해 전신으로 운반된다.
이처럼 혈액이 체내에서 나와 인공심폐기를 통과할 때는 혈액이 체내에 있을 때보다 더 응고되기 쉽기 때문에 혈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항응고제인 헤파린을 투여하는데, B병원 또한 A씨에게 헤파린 136.8㎎을 투여했다.
헤파린 투여 이후에는 이를 중화하기 위해 헤파린의 길항제인 프로타민을 투여하게 되는데, A씨는 프로타민 205.2㎎을 투여받았다.
A씨는 수술을 마치고 7월 3일 오후 1시 15분경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당시 환자의 혈압은 130~61㎜Hg로 정상 범위에 있었으며, 혈색소 수치는 12.8g/㎗이었다.
오후 3시경 A씨가 메스꺼움과 구토 증상 및 수술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자 의료진은 항구토제 및 마약성 진통제 페티딘 등을 처방했다.
그의 혈압은 7월 3일 오후 10시경 94~62㎜Hg에서 7월 4일 새벽 2시 88~62㎜Hg로 떨어졌으며, 혈색소 수치 또한 4일 새벽 2시 9.5g/㎗에서 새벽 5시 8.2g/㎗로 측정됐다.
4일 오전 7시 A씨의 혈압이 59~45㎜Hg로 측정되고 빈호흡 증상을 보이며 의식상태가 저하되자, 의료진은 7시 55분 농축적혈구 수혈을 시작했으나 결국 A씨는 의식상태가 악화되고 심정지가 발생했다.
의료진의 심폐소생술로 10여분만에 A씨의 심장순환은 회복됐으나, 자발적 의사표현 및 거동이 불가능한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이에 A씨의 보호자 등은 병원 의료진의 과실을 문제 삼으며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했다.
이들은 "수술 당시 환자의 체중은 45.6kg으로 헤파린 권장량은 136.8㎎이지만 의료진은 이보다 많은 166.8㎎을 투여했다"며 "또한 통상 헤파린의 반감기는 2~6시간으로 의료진은 오전 11시 25분 헤파린 투여 후 늦어도 오후 5시 환자의 혈액응고 수치 등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지만 A씨 혈색소 수치가 10.5g/㎗에 불과하고 메스꺼움과 구토 등 증상을 보였음에도 의료진은 헤파린 재활성화로 인한 출혈을 의심하지 않았고, 환자가 다량의 혈액이 소실됐을 때 발생하는 저혈량성 쇼크 증상이 나타났음에도 적극적인 수혈 및 검사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환자에게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약 10분 동안 뇌에 산소가 원활히 공급되지 않아 의료진은 저체온요법을 시행했어야 함에도 머리에 아이스팩을 올려둔 것 외에는 조치가 없었다"며 "이 모든 과정에 대한 설명도 없어 설명 의무를 위반했다"고 강조했다.
■ "심정지, 헤파린 재활성화 원인 추정…의료진 진료 과실 인정"
하지만 병원은 환자에게 권장량의 헤파린 및 프로타민을 투여했다고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B병원은 "의료분쟁중재원은 헤파린 재활성화로 심정지가 발생했다는 소견을 제시한 반면, 법원 감정의는 인공심폐기 또는 기저질환인 폐동맥 고혈압을 원인으로 추정해 A씨의 저산소성 뇌손상은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헤파린 재활성화로 인한 출혈을 예측하고 막을 방법은 없을 뿐 아니라 A씨는 활동성 출혈이 아닌 수술 후 12시간 동안 서서히 진행돼 치료 과정에서 의료진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환자에게 헤파린 재활성화로 인한 출혈이 의심되는 증상이 나타났음에도 의료진이 적절한 검사 및 조치를 취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중재원은 A씨의 심정지 원인을 헤파린 투여 이후 길항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발생한 현상으로 판단했으며, 법원 감정의 또한 환자의 혈액검사 수치 결과를 기반으로 헤파린 재활성화 현상 및 혈액응고장애 증상이 함께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A씨는 빈혈 양상, 의식 저하, 빈맥 등 저혈량성 쇼크에 해당하는 증상을 보여 수술 중 인공심폐기 사용에 의한 뇌손상으로 볼 가능성은 없으며, 수술 전 검사로 측정한 폐동맥 크기를 고려하면 고혈압 역시 문제될 정도는 아니었다"며 "결국 환자는 수술 후 헤파린 재활성화가 나타나 우측 늑강 부위에 삼출 출혈이 발생했고, 서서히 출혈이 누적되면서 다량의 출혈로 이어져 저혈량성 쇼크와 우측 늑강에 고인 혈액으로 인한 심장 압전이 중첩돼 약 10분 동안 심정지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의료진은 A씨에게 헤파린 및 프로타민을 투여한 시각 등을 고려해 최소 수술 당일 오후 5시부터 혈액검사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수치가 떨어짐에도 출혈 발생을 의심하지 않고 진통제만 투여했다"며 "진료 과정에서 과실이 있었던 것으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의료진의 설명의무 위반 또한 인정했다.
법원은 "변론 전체 취지 및 증거를 기반으로 살펴보면 의료진이 A씨에게 헤파린 재활성화 및 심정지, 저산소성 뇌손상 등의 위험에 대해 설명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만 A씨 상태를 고려했을 때 헤파린 재활성화 부작용에 대해 설명했어도 수술을 선택했을 것으로 보이는 점을 고려해 설명의무 위반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수준으로 한정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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