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없이도 제도 개선으로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사수급추계 결과가 나왔다. 무엇보다 의대 증원으로는 지역 의료격차를 해결할 수 없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27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의사 인력 수급 전망 의료정책포럼을 열고 2025년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의사 수급 전명을 조명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홍윤철 교수는 발제를 통해 의료 수요·공급 및 생산성 증가, 정책 변화에 따른 시나리오별 의사수급추계 결과를 공개했다.
앞서 그가 진행했던 연구가 2030년 의사 1만 명이 부족하다는 정부의 의대 증원 근거가 된 바 있는데, 이는 여러 가정 중 하나일 뿐 실제 의료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의료 체계 개선 시, 자연스러운 의사의 생산성 향상과 맞물려 증원 없이도 의사가 부족하지 않은 시나리오가 타당했다. 지역 의료 격차는 아무리 의사 수를 늘려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요한 지표인 의사 생산성 가정과 관련해 홍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의사 1인당 하루 51명의 환자를 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생산성은 기술 발전에 따라 자연적으로 매년 0.25% 증가하는데, 우리나라의 역량을 보면 증가율을 0.5%로 설정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것. 현재 하루 51명인 의사 1인당 진료 환자 수가 10년 뒤엔 54명 정도로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매년 의사 생산량 0.5% 증가 조건으로만 보면 5년간 의대 정원 1만 명을 늘리는 정부 계획은 어느 정도 타당했다. 의대 증원하지 않을 시, 2037년부터 의사 공급 부족이 시작돼 2072년 2만1251명이 부족하게 된다.
하지만 의료전달체계 및 수가제도에 변화가 있을 시 이런 결과가 180도 바뀌었다. 의대 증원이 없어도 오히려 의사 공급 과잉이 발생한 것.
홍 교수는 의료 수요를 해소할 수 있는 주요 정책 중 하나로 노인주치의제를 들었다. 의료 수요 증가의 주원인은 고령화인 만큼, 이들에 대한 ▲다학제 진료 ▲재택의료 ▲비대면 진료 ▲주치의 팀 관리 등을 제공하는 식이다.
이 제도가 도입됐다는 가정하에 의대 증원 없이 15년 후 매년 3%씩 정원을 감소해도 의사 부족이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2030년 1만 명의 의사 과잉이 일어났으며, 2050년 이후에도 1000~2000명의 의사가 남았다.
수가제도 변화를 적용한 수급추계 결과는 더욱 많은 의사 과잉 가능성을 시사했다. 가치기반의료 시범사업 적용으로 의료서비스 제공량과 비용이 모두 20% 감소한다면, 의사 생산성 0.5% 증가 조건에 2030년 1만5000명의 의사 과잉이 발생한 것. 의대 증원 없이 15년 후 매년 3%씩 정원을 감소해도 2050년부터 5000명대의 의사 과잉이 유지됐다.
반면 지역 의료격차는 어떤 조건을 대입해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았다. 특히 아무런 생산성 변화나 제도 개선 없이 2050년이 온다면 우리나라 의료는 붕괴 수준에 이른다는 우려다. 또 의사 생산성이 늘어나도, 15년간 매년 1000명의 의대 정원을 늘려도 비수도권의 의사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정부가 말하는 의사 부족 문제는 의대 증원 없이도 제도 개선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며, 지역의료는 의대 증원 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는 제언이다.
홍 교수는 "정책은 어느 한쪽의 주장으로만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근거가 있어야 한다. 앞선 연구 역시 의사 증원만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의료 제도 개혁 없인 지역 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다"며 "특히 비수도권 의사 부족 문제는 의대 증원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전혀 다른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합의될 수 있고 실현가능한 제도를, 자발적 참여 기반으로 시범적으로 운영해 검증할 필요가 있다. 지역격차 문제는 지역에 의사공급을 늘리는 방안 외에 네트워크 체계 안에서 원격의료 이용 등으로 해소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의사 공급이 지나치게 많은 수도권 의사가 비수도권 수요를 어느 정도 담당하기 위한 논의를 더욱 진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정책연구원 박정훈 책임 연구원 역시 발제를 통해 의사인력수급추계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이 연구는 현재 인력양성체계를 유지하는 경우와 증원하는 경우를 가정해 장래 의사인력을 추정했다.
또 과거 성별·연령구간별 1인당 의료이용량과, 통계청 장래인구추계를 적용한 목표연도 의료이용량 등 수요를 적용해 의사 근무일수에 따른 4개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그 결과 2020년 전국의사조사 활동의사 근무일수인 289.5일을 적용할 경우 3000명의 의사인력 과잉곱급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계획대로 의대 증원할 시 1만 명 의사 과잉공급이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주장했던 2035년 의사인력 1만 명 부족은 265일이라는 비현실적인 근무일수를 적용한 결과라는 것. 이는 일반 국민 기준인 주말·공휴일 제외 근무일로 의사의 평균 근무일보다 현저히 적다는 설명이다.
OECD 조사 결과에서 나온 대한민국 의료인력 부족분과 관련해서도, AI 기술의 발전으로 업무 효율성이 향상되면서, 상쇄될 것이라고 봤다. 행정업무 등 기존 활동량의 36%가 자동화되면서, 불필요한 소요 시간 단축으로 진료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다.
박 연구원은 정부 의대 정원 정책의 부작용으로 의료시스템 붕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역·전문과별 쏠림현상이 심화해 요양급여비용의 폭발적 증가가 예상된다는 지적이다.
또 그 근거로 미국 내 의사 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더 많은 의료비가 발생하는 것이 관찰되는 상황을 들었다. 특히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을 비교하면, 지역적 인력 격차 감소는 의사 공급을 증가시키는 것보다 다른 정책개입의 효과로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2009년 의대 정원을 늘린 일본 역시 2023년부터 의대 정원 감원을 검토 중이다.
의대 증원에 따른 의학교육의 질 저하 우려도 나왔다. 실제 영국에서 학습규모에 따른 5개 그룹의 학업성취도를 분석한 결과, 학습 규모가 클수록 부정적인 영향이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또 미국에서 1928개 과목 교수 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많은 수의 학생을 가르칠 때의 교수자 위주 수업방식으로 학생의 학업성취도·만족도에 악영향이 있었다.
미국 의대 임상교수 110명 대상 조사에선 ▲공간·수련병원·자원 부족 ▲환자 노출에 제한 ▲멘토링 부족 ▲교수 채용 어려움 등이 의대 증원에 따른 문제로 보고됐다.
박 연구원은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의사인력 수급계획은 실패했다. 지속적으로 의료공급자 및 관련 단체 등과 논의를 통해 한국의 의료환경을 고려한 중장기적인 수급추계모형과 방식을 논의해 합의가 필요하다"며 "이를 바탕으로 주기적인 수급추계를 통해 장기적인 의사인력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사의 절대적 부족보단 상대적인 지역·전문과목별 분포의 불균형 문제로 해결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며 "단순히 의사 수를 늘려 해결하겠다는 단편적 사고에서 탈피해 지역·전문과목별 편중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의료사고 위험이 큰 필수의료 분야에서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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