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이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뇌졸중 진단 및 치료 시스템 개발로 의료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응급실에서 촬영한 초기 MRI 영상만으로도 환자의 3개월 후 예후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기존 진료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은 특별 좌담회를 열고 AI를 활용한 뇌졸중 치료 혁신 성과를 공개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철호 교수(신경과), 손종희 교수(신경과·연구부원장), 원동옥 교수(의료 AI 전문가) 등이 참석해 연구 성과와 향후 계획을 소개했다.
김철호 교수는 현재 뇌졸중 진료 환경의 변화를 설명하며 운을 뗐다. "뇌졸중은 혈관에 문제가 생겨 기능적으로 마비가 되거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상태"라며 "혈관이 막혀서 생기는 뇌경색과 혈관이 터져서 발생하는 뇌출혈로 크게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2013년 뇌졸중 진단 기준이 대폭 업데이트되면서 영상 검사의 중요성이 급격히 높아졌다. 김 교수는 "과거에는 증상이 갑자기 생겼으니 뇌졸중이라고 단순하게 판단했지만, 이제는 CT나 MRI 등 영상 검사가 치료 결정에 너무 중요해졌다"며 "영상을 빼고서는 뇌졸중 진단과 치료를 얘기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응급실 내원부터 급성기 시술 결정, 원인 분석, 재발 방지, 2차 예방까지 뇌졸중 치료의 전 과정에서 영상 검사가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심지어 증상이 없는 환자들도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동맥류나 혈관 협착 등을 스크리닝하는 데 영상이 활용되고 있다.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이 개발한 AI 시스템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응급실에서 촬영한 초기 MRI 영상만으로도 환자의 장기 예후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철호 교수는 "기존에는 환자의 마비 정도가 심하니까 3개월 뒤에는 예후가 안 좋겠다는 식으로 임상 정보만 보고 판단했다"며 "하지만 우리는 응급실에서 처음 촬영한 MRI에 머신러닝을 적용해 3개월 이내 예후를 훨씬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3차원(3D) 영상 데이터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뇌 영상은 사실 연속적으로 쌓여있는 스택 데이터"라며 "기존에 사용하던 2차원 영상과 달리 3D 모델을 활용해 훨씬 정교한 분석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시스템은 환자의 병이 진행되거나 추가 치료를 받기 전, 순수하게 최초 촬영한 영상만으로 예측하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크다. 병원 관계자는 "환자나 보호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라는 질문에 과학적으로 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뇌경색 환자의 정확한 원인 분석도 AI의 도움을 받고 있다. 뇌경색은 큰 혈관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작은 혈관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심장에서 혈전이 생겨 뇌로 올라가는 색전성 뇌경색 등으로 구분되는데, 원인에 따라 사용하는 약물이 달라진다.
김철호 교수는 "기존에는 심방세동 같은 심장 질환이 있으면 색전성 뇌경색일 가능성이 높다고 임상 정보로 판단했다"며 "우리는 영상만 가지고도 비슷한 수준의 정확도로 원인을 분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응급실에서 초기 대응 시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된다. 예를 들어 심방세동으로 인한 색전성 뇌경색이라면 항응고제 치료가 우선되고, 혈관 협착에 의한 뇌경색이라면 항혈소판제나 스텐트 시술 등이 고려된다.
주목할 점은 조영제를 사용하지 않는 일반 MRI로도 향후 뇌졸중 발생 위험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 이를 'TOF(Time-of-Flight) MRA'라고 하는데, 조영제 주사 없이도 혈관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검사법이다. 김 교수는 "뇌졸중 기왕력이 없는 분들이 외래에 와서 '제가 앞으로 뇌졸중에 걸릴까요?'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며 "TOF MRA 영상을 AI로 분석해 3년 이내 뇌졸중 발생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는 특히 두통이나 어지럼증으로 병원을 찾았지만 뇌졸중 과거력이 없는 환자들에게 유용하다. 기존에는 "큰 문제없으니 안심하세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구체적인 위험도를 제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뇌동맥류 분야에서는 더욱 혁신적인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기존에는 동맥류의 위치와 크기만으로 파열 위험도를 판단했지만, 연구팀은 동맥류의 형태학적 특성까지 정밀 분석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원동옥 교수는 "동맥류의 모양이 파열 위험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며 "우리는 3D 메시(mesh) 기술을 활용해 동맥류의 정확한 형태를 빈 공간 없이 완전히 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파열 위험성을 예측한다"고 설명했다.
이 시스템은 기존의 포인트 클라우드 방식보다 훨씬 정교하다. 2차원 영상을 3차원으로 재구성한 후, 메시 데이터로 변환해 볼륨 정보와 텍스처 정보를 모두 포함한다. 원 교수는 "최근 트랜스포머 모델을 적용해 기존에 나와 있던 알고리즘보다 더 좋은 성능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시스템은 동맥류가 있는지 없는지 판별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 언제 문제가 생길지까지 예측할 수 있다. 김철호 교수는 "환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앞으로 얼마나 문제가 생길 거냐, 안 생길 거냐'에 대한 답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뇌졸중 환자에게 흔한 합병증인 삼킴장애 진단에서도 AI가 혁신을 가져왔다. 기존에는 비디오 투시 삼킴검사(VFSS)라는 방사선 검사를 시행해야 했는데, 방사선 피폭량이 많고 환자가 검사 도중 음식물을 흡인할 위험도 있었다.
김철호 교수는 "환자 목 아래에 초음파 프로브를 고정한 후 삼키는 모습을 촬영한다"며 "AI가 삼킴 장애 패턴을 자동으로 분석한다"고 설명했다. 이 시스템은 단순히 삼킴장애 여부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1년 이내 흡인성 폐렴 발생 가능성까지 예측한다. 김 교수는 "방사선 피폭 없이 비교적 협조가 쉬운 검사로 스크리닝할 수 있어 VFSS 검사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이 기술은 뇌졸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선별검사로 활용되고 있으며, 성능도 연구진이 바라는 수준을 확보한 상태다.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의 AI 기술은 이미 강원도 의료 취약지역에서 실제 환자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손종희 교수(연구부원장)는 "현재 강원도 내 4개 병원에 뇌출혈 진단 AI 플랫폼을 설치했다"며 "신경외과나 신경과 전문의가 전혀 없는 응급실에서도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시스템의 작동 방식은 이렇다. 지역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의 뇌 CT를 촬영하면 AI가 자동으로 분석해 결과를 제공한다. 동시에 춘천의 중앙 모니터링 센터에서 전문의가 이를 확인해 "이 환자는 위험하니 빨리 보내주세요" 같은 지시를 내리는 식이다.
실제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손 교수는 "현재까지 8명의 환자가 이 시스템을 통해 신속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며 "지역 응급실에서는 판단하기 어려웠던 뇌출혈 환자들을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치료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런 원격 진료 시스템은 정부의 뇌졸중 적정성 평가 네트워크 사업과도 연계돼 있다. 김철호 교수는 "뇌졸중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질환이라 환자가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며 "권역별 뇌졸중 네트워크에서 AI 기술을 활용해 더 많은 정보를 신속하게 공유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구의 신뢰성과 범용성 확보를 위해 미국 대학과의 공동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김철호 교수는 "미국도 땅이 워낙 넓다 보니 의료 취약지역 문제가 심각하다"며 "보스턴 외곽 지역은 우리 강원도와 비슷한 상황이라 AI 플랫폼이 잘 활용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외부 데이터 검증이 중요한 이유는 병원마다 MRI 장비나 촬영 프로토콜이 다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MRI 장비도 제조사별로 다르고, 자기장 세기도 1.5테슬라, 3테슬라 등으로 다양하다"며 "모든 장비에서 균일하게 작동할 수 있는 범용성 확보가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현재 일부 알고리즘은 외부 검증이 완료된 상태이고, 일부는 검증 중이며, 성능을 더 향상시켜야 하는 단계의 것들도 있다. 연구진은 "한 사이클 돌리는 데 3일이 걸리는 경우도 있어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만, 단계별로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은 뇌출혈 환자의 임상 결과 예측 모델도 개발했다. 이는 미국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연구로, 환자가 수술이 필요한지, 어떤 종류의 수술이 필요한지, 생존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를 예측한다.
김철호 교수는 "의료 취약지역에서 환자 사진을 보내왔을 때 이 환자가 사망할 확률이 높으니 수술을 위해 빨리 보내라는 정보를 제공하고 싶었다"며 "클라우드 플랫폼에 올릴 목적으로 임상적 결과를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시스템은 단순히 수술 필요성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수술 종류까지 제안한다. 예를 들어 머리에 작은 구멍만 낼지, 큰 개두술이 필요한지, 혈관 내 시술이 적합한지 등을 알려준다. 또한 중환자실에서 30일 이상 머물러야 하는 환자도 미리 예측해 병상 관리에도 도움을 준다.
AI 기술 발달로 인한 의료진 역할 변화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실제로 영상의학과를 지원하는 의대생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김철호 교수는 "단순히 판독만 하는 의사는 대체될 수 있지만, AI 시대에는 오히려 영상의학과 의사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AI가 맞는지 틀린지 검증해야 할 의사가 있어야 하고, 의사가 할 수 없는 영상 해석을 담당해야 한다"며 "새로운 역할을 하는 의사는 살아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동옥 교수도 "AI를 도구로 활용하면 생산성이 올라간다"며 "진료할 수 있는 환자가 더 많아지고, 환자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자동차 공장에서 기술 발달로 생산성이 올라갔듯이, 의료 분야도 더 많은 환자를 도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적 책임 문제는 여전히 과제
AI 진단 시스템의 법적 책임 문제도 중요한 이슈로 제기됐다. 김철호 교수는 "AI는 어디까지나 임상의사결정지원시스템(CDSS)으로, 최종 판단과 책임은 의사가 진다"며 "영상의학과 의사가 AI를 참조해 판독했다면 영상의학과 의사 책임이고, 응급실에서 임상의가 AI를 참조했다면 임상 의사 책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AI 시스템이 더욱 발전하면 의사가 AI 지시를 따르는 상황도 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 교수는 "그런 변화를 빨리 캐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며 "AI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의사의 역할이 새롭게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은 올해 강원도 최초로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되면서 AI 연구에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전국 11개 연구중심병원 중 유일한 종합병원이다.
손종희 교수는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되면서 의료 실용화 사업단이 생겼다"며 "병원에서 나온 연구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연구하고, 그 성과를 사업화하고 실용화하는 전주기 연구 체계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의료원 차원의 지원도 파격적이다. 김철호 교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관련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데, 연간 수억 원씩 지원받고 있다"며 "의료원에서 의료 인공지능 기술을 잘 만들고 잘 활용하라는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의료원 산하 5개 병원이 각각의 특화 분야를 정해 최고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클리니컬 코어 센터'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은 뇌신경계 분야로 선정되어 신경과와 신경외과가 협력하는 '융합뇌신경혁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연구 성과의 국제적 확산을 위해 올해 9월 한림대 컨퍼런스 센터에서 뇌질환 AI 관련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할 예정이다. 손종희 교수는 "뇌질환과 AI 빅데이터 연구에 대해 외국과 협업하고 공동연구하는 성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김철호 교수는 "우리나라는 데이터가 많이 축적돼 있어 AI 알고리즘 개발에 유리한 환경"이라며 "의료 데이터는 포맷이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어 다른 나라보다 활용도가 높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한편 연구진은 현재 개발한 알고리즘들의 성능을 더욱 향상시키고 외부 검증을 완료한 후, 정식 의료기기 인허가를 받아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술들이 현실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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