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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의사과학자가 성장하려면

경북의대 이진규 졸업생
발행날짜: 2026-05-11 05:00:00

경북의대 졸업생 이진규

제주 그랜드조선 컨벤션 센터. 「2026 의사과학자 컨퍼런스」라는 이름의 행사에 100여 명이 모였다. 보건복지부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사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1년에 한 번뿐인 자리였다.

나는 뒷줄에 앉아 있었다. 발표 슬라이드가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무대 위 누군가의 연구 데이터가 빛났다. 박수 소리에 박자를 맞춰 손을 두드리면서,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외롭지 않다는 감정이었다.

박사과정 한가운데, 액체 금속과 탄소나노튜브 사이에서 길을 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길을 잃었다기보다 매일 아침 길의 좌표 자체를 다시 세팅해야 했다. 임상에서는 환자 한 명의 호전이 그날의 답이었지만, 실험실에서는 여섯 달을 매달린 데이터가 마지막 한 번의 측정에서 무너졌다.

그럴 때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임상의 직관 ─ "환자 좋아졌으면 됐지" ─ 은 공학연구의 논리 앞에서는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다. 의사로서 익힌 감각과 연구자로서 요구받는 엄밀함은, 같은 사람 안에서 자주 충돌했다.

동기들은 어느새 고년차 전공의가 되어 있었다. 누구는 이미 펠로우십을 알아보고 있고, 누구는 개원 자리를 보러 다닌다고 했다. 카톡 단체방에 올라오는 그들의 일상에 댓글을 달다가, 가끔 손을 멈췄다. 내가 지금 보내는 한 줄이 응원인지, 부러움인지, 자기변명인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질문이 가족이나 선배가 던질 때보다 내가 나에게 던질 때 가장 무거웠던 이유는, 답을 모를 만큼 멍청해서가 아니라 답을 알면서도 매번 다시 의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길은 분명히 보이는데, 그 길 위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날들. 의사과학자라는 이름은 멋지지만,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주변에 많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같은 표정의 얼굴들을 보았다.

어떤 박사과정생은 단일세포 전사체를 한다고 했다. 누구는 방사선치료와 의료 AI, 누구는 암노화. 누구는 비만. 전공도, 학교도, 단계도 모두 달랐다. 그런데 표정은 닮아 있었다.

특히 어느 후배의 표정이 오래 남았다. "임상으로 빨리 돌아가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한 그 후배의 얼굴에, 내가 지난 시간 삼켜온 모든 망설임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내 옆자리, 앞자리, 뒷자리에서 비슷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 모르지만, 같은 터널 안에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터널 안에 있는가. 의사과학자의 길이 아니더라도, 의정 갈등 가운데 군에 입대한 후배든, 임상이 아닌 다른 길을 모색하는 동료든, 아마 자기만의 안개 속을 걷고 있을 것이다. 외로움이라는 감각은 직역하면 "혼자"지만, 풀어쓰면 "내가 가는 길에 같은 표정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 얼굴을 한 사람이라도 발견하는 순간, 외로움의 무게는 절반이 된다.

휴식 시간에 커피를 들고 모였다. 명함을 주고받기보다 먼저 한숨을 주고받았다.

"선생님 학교에서는 과제 신청 어떻게 하셨어요?" "IRB 통과까지 얼마나 걸렸어요?" "임상 복귀하시고 박사과정은 어떻게 마무리하셨어요?"

시시콜콜한 질문이 오갔다. 하지만 그 시시콜콜한 질문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1년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답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질문을 마음 놓고 던질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였다.

그날 행사를 닫으며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님은 이 길이 결코 외롭지 않다는 메시지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정책의 무게가 실린 따뜻한 말이었다. 2019년 시작된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사업은 7년 동안 의사과학자 79명을 배출했고, 2026년에는 새로운 사업들도 시작된다. 객관적으로 보면, 지난 7년은 진보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학회장을 나오면서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1년에 하루뿐인 이 자리에서 동료를 발견하고 다시 1년을 혼자 견디는 구조라면, "외롭지 않다"는 말은 364일 동안 누가 지켜줄 것인가.

비슷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학회 산하 청년분과, 각 대학별 의사과학자 모임, SNS 단톡방. 모두 "같이 가자"는 마음으로 출발했을 것이다. 다만 단계별·기관별로 분절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먼저 같이 가자"고 끝까지 말해주는 누군가가 부족했다. 모임은 누가 시작은 하지만, 누가 계속 끌고 가지는 않는다. 길이 있어도 혼자 걷게 하면, 결국 사람은 돌아온다. 그래서 시작했다.

KYPSN(Korean Young Physician-Scientist Network), 한국 젊은 의사과학자 네트워크. 단계와 기관을 가로지르는 작은 네트워크다. 함께 시작한 김경훈 부대표와는 의대생 시절 To be doctor라는 비영리단체를 같이 이끌었던 사이다.

그때 우리가 던졌던 질문이 "의사가 되기 전에, 우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였다면, 이번에 다시 던지는 질문은 "의사가 된 다음, 연구의 길을 가는 우리는 누구의 옆자리에 앉을 것인가"이다. 거창한 정관도, 직책도 우선은 본질이 아니다. 우리가 지키려는 건 미션 한 줄이다.

"젊은 의사과학자의 성장 러닝메이트"

마라톤에서 러닝메이트는 우승자가 아니다. 같은 호흡으로 옆에서 달려주는 사람이다. 누군가 페이스를 잃으면 잠깐 속도를 줄여주고, 누군가 길을 헷갈리면 함께 지도를 본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상에 먼저 도달한 영웅이 아니라, 같은 페이스로 한 번 더 발걸음을 내딛게 해주는 옆 사람이다.

학회장에서 마지막 발표가 끝났을 때, 나는 박수를 쳤다. 옆자리, 앞자리, 뒷자리의 사람들과 같은 박자로. 그 박자가 365일 후 다음 학회까지 끊기지 않게 하는 일. 그것이 KYPSN이 하려는 가장 작고,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너, 내 동료가 돼라"

지난 어느 칼럼에서 내가 후배들에게 건넸던 말이다.

이제는 같은 말을 동료들에게 건네려 한다. KYPSN의 첫 번째 약속으로.

"이제, 진짜 내 동료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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