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로라도 스프링스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몇 번이나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내가 여기 가도 되는 걸까.'
이전에도 해외에 나갈 기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오롯이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지고 떠나는 여정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미국행 비행기에 혼자 몸을 실었다는 설렘은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순간 이미 증발해 버렸다.
Space Generation Fusion Forum(SGFF) 델레겟으로 선발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는데, 막상 현장으로 가는 길 위에서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나는 공학자도 아니고, 관련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우주의학에 관심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이 자리에 와 있는 평범한 의대생일 뿐이었다.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 그 걱정은 더 선명해졌다. 행사장은 이미 각자의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대부분이 우주 기업 현업자이거나 NASA에서 실무나 인턴을 거친 사람들이었고, SEDS 같은 큰 단체의 리더이거나 하버드, MIT, 스탠포드 같은 곳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 우주 산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자꾸 말을 아끼게 됐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도 몰랐고, 내가 뭘 모르는지도 정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확실히 아는 게 아니면 아예 입을 떼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하며 지내왔다. 그래서인지 아무런 배경 지식도 없는 이 낯선 현장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마음이 불편했다.
행사 둘째 날,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만난 룸메이트들과 서툰 영어로 인사를 나누며 조금씩 긴장을 풀어가던 중이었다. 그들은 내가 한국에서 온 의대생이라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왜 우주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지 진심 어린 호기심을 보였다. 그 따뜻한 시선에 용기를 얻어 인간 우주비행(Human Spaceflight) 강연 이후 처음으로 질문자 마이크 앞에 섰다.
손바닥에는 축축하게 땀이 뱄다. '너무 기초적인 질문이라 비웃음을 사면 어떡하지? 다들 아는 이야기를 나만 묻는 거 아닐까?' 수십 번 망설이다 결국 그 순간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질문을 던졌다. 질문이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자, 옆자리의 델레겟들이 환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Way to go, Jiho!" 누군가는 내가 질문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 나중에 보내주기도 했다.
그들의 반응은 의외로 단순하고 명쾌했다. 질문의 수준이나 논리적 완결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 그 자체를 하나의 성취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였다. 그때 비로소 이 커뮤니티가 작동하는 독특한 방식을 인식하게 되었다. 여기 사람들은 "What can you do?"라고 묻기 전에 "What do you want to do?"를 먼저 묻는다. 이미 증명된 능력보다, 그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지향점을 기준으로 사람을 대한다.
이건 그냥 착한 마음씨라기보다, 이 커뮤니티만이 가진 기본적인 약속 같았다. 상대가 당장 완성된 사람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럴듯한 결과물을 낼 거라는 걸 기본값으로 깔고 대하는 거다. 그리고 그게 말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기회를 주거나 사람을 붙여주면서 실현되게 돕는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뒤, 실력도 경력도 부족한 상태에서 SGFF 2026 커뮤니케이션 팀 운영진이나 한국 국가 담당(National Point of Contact, NPoC) 같은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이유도 결국 이 맥락 위에 있었다. 그들은 나의 '오늘'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내일'에 투자하고 있었다.
우주 포럼에 참여하면서 느낀 신기한 점은, 몇몇 사람만 유독 친절한 게 아니라 사람들 전체가 이런 분위기라는 거였다. 우주 커뮤니티는 생각보다 좁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한두 다리 건너면 모두가 연결되는 좁은 동네다. 하지만 그 좁은 울타리 안에서 이들은 유독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데 진심이다.
NASA, Northrop Grumman, Blue Origin 같은 거대 기관과 기업들이 매년 수십 개의 스폰서십을 자처하며 SGAC 같은 비영리 단체를 후원한다. Space Symposium 현장에서는 업계에서 이미 거물이거나 높은 직급을 가진 전문가들이 시간을 쪼개 주니어들과 '스피드 멘토링'을 진행하고, 봉사자들에게는 수백만 원짜리 컨퍼런스 티켓을 무료로 제공한다. 처음에는 이 거대한 자본과 에너지가 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이들'에게 쏟아지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경제적 효율성만 따진다면 이미 완성된 인재를 쓰는 게 맞지 않은가.
하지만 답은 의외로 담백하고 숭고했다. 지금 그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대가들도, 한때는 홀로 비행기를 타고 낯선 땅에 도착해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던 '준비 안 된 델레겟'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군가의 다정한 밀어줌 덕분에 지금의 위치에 올랐음을 잊지 않고 있었다. 성장의 기억을 보존하고, 자신이 받았던 기회를 다시 다음 세대에게 흘려보내는 것.
이 반복되는 대물림이 거대한 우주 산업을 지탱하는 동력이었던 것이다. 많은 분야에서 성공은 개인의 치열한 노력으로만 치부되곤 하지만, 이곳에서는 성장의 과정이 공공의 자산으로 공유된다. 도움을 주는 행위는 특별한 시혜가 아니라, 선배로서 당연히 수행해야 할 '다음 단계'처럼 여겨졌다.
이 구조를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나도 우주 커뮤니티에서 내가 맡고 싶은 역할을 다시 고민해보게 되었다. 단순히 이 다정함을 소비하는 관찰자로 남기엔 내가 받은 기회들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문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Space Symposium 패널에서 우주의학 기업 대표님께 던진 질문 하나가 저녁 리셉션 초대와 본사 방문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한국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싶다는 고민을 털어놓자마자 전임 국가 담당자(NPoC)들과의 단톡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업계 거물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단순히 행사에 참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델레겟 한 명 한 명의 프로필을 미리 읽고 온 듯했다.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최근에 했던 일이나 관심사를 기억해 주는 그들의 세심한 소통 방식은 충격에 가까웠다. 행사 후에도 안부를 묻고 진심 어린 멘토링을 이어가는 그들을 보며 나는 확신했다. '아, 나도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우주에 완전히 매료된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우주의학'이라는 생소한 조합이 신기해서 발을 들인 이방인에 가까웠다. 하지만 자기 일에 대한 낭만과 열정이 눈빛과 말투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우주라는 분야보다 우주를 쫓는 '사람들'에게 먼저 빠져버렸다. 공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우주를 알리고 싶어 하고,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당연하게 돕는 이 생태계는 내가 발붙인 의학의 세계에도 꼭 이식하고 싶은 모델이다.
그래서 나는 작년의 그 고마운 우연들을 필연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보령(Boryung)과 SpaceTalk 인터뷰를 하며 나의 시각을 공유했고, 링크드인을 통해 우주의학 웨비나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나는 작년의 '준비 안 된 델레겟'에서 한 걸음 나아가 행사 운영진이자 한국 국가 담당(NPoC)으로서 다시 그 현장으로 향한다.
이제 나에게 환원은 단순한 도덕적 의무가 아니다.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이 판에 좀 더 편하게 발을 들일 수 있게 '길을 터주는 일'은, 내가 받은 다정함에 응답하는 가장 논리적인 방식이다.
여전히 나는 더 잘하고 싶고 배울 게 많다. 하지만 이제 '성공'의 정의 만큼은 확실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남들보다 앞서가는 도전을 하거나,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목적지였다면, 지금은 그 과정이 다른 사람의 궤적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지를 고민한다.
우주에서 배운 가장 인상적인 것은 로켓 엔진의 원리나 최신 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 즉 '가능성을 대하는 예의'였다. 완성되지 않은 존재에게 기회를 먼저 선물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받았던 다정함을 잊지 않고 다시 공동체로 되돌려주는 것.
이건 타고난 천성이라기보다 치열하게 의식하고 유지해야 하는 태도에 가깝다. 병원이라는 공간과 우주라는 공간은 얼핏 멀어 보이지만, 결국 사람의 '다음'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텅 비어 있는 줄 알았던 우주가 사실은 따뜻한 사람들의 연결로 채워져 있었듯이, 나 또한 누군가에게 기꺼이 그 다정한 우주가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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