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수억 원을 호가하는 초고가 항암제의 개발과 허가 소식이 매일같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물론 혁신 신약이 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빛이 되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 화려함 이면에서 정작 환자들의 생명을 묵묵히 지탱해 온 '기초 항암제'들은 소리 없이 사라지며 의료 체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악성 흑색종 항암제 '다카바진(Dacarbazine)'의 단종 위기는 우리 보건의료 시스템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다. 다카바진은 암세포의 DNA 합성을 직접 방해해 증식을 억제하는 세포독성 항암제로, 임상 현장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핵심 약제다. 특히 호지킨 림프종의 표준 치료인 'ABVD 요법'에서 이 약물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구체적으로 아드리아마이신(A), 블레오마이신(B), 빈블라스틴(V)과 함께 요법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다카바진(D)은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환자의 생존율을 입증해온 검증된 조합의 핵심 성분이다.
의료진들 사이에서 "D가 빠진 ABVD는 엔진 없는 자동차와 같다"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공급 제약사는 오는 7월 채산성 악화를 이유로 공급 중단을 결정했고, 그 빈자리는 이미 임상 현장에서 도태된 구식 약제들이 서류상 '대체제'라는 이름으로 채우고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기초 필수의약품 전반에 걸쳐 공급 불안정 현상이 상시화되고 있다.
제약사들이 원가에도 못 미치는 약가를 이유로 생산을 기피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신청 위주의 '퇴장방지의약품' 제도 외에는 오직 민간 기업의 선의와 자본의 논리에만 공급망을 맡겨두고 있다.
보다 못한 의학계도 우려를 공개적으로 표시하기 시작했다.
주요 상급종합병원조차 필수 약제의 재고 소진 시점을 장담하지 못해 치료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한혈액학회는 "도노마이신, 빈블라스틴 등 과거 100원도 안 하던 기초 항암제들이 품절되어 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 수십만 원을 들여 가져와야 하는 기형적인 상황"이라며 정부의 관리 체계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결과적으로 약가제도 개편을 통해 고가 신약의 급여화에 수천억 원의 재정 투입을 고민하는 사이, 정작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몇 천 원'짜리 약물을 지켜낼 비상 장치는 작동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기초가 무너진 의료 체계 위에서 초고가 신약의 혜택만을 논하는 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신약의 화려한 미래를 설계하기 전에, 소외된 희귀암 환자들이 '약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는 비극부터 막아야 한다. 그것이 보건의료 제도가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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