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디칼타임즈=이지현 기자] 과거 제약업계에서 의약품 판촉영업대행사(CSO)는 일종의 '필요악'이자 리베이트 리스크를 떠안아 주는 편리한 '방패막이'로 통했다.
제약사가 수수료를 지급하면, 수면 아래의 CSO업체가 영업을 도맡아 매출을 올리는 구조였다. 문제가 터져도 제약사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며 선을 그으면 그만이었다. 다시말해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던 외주화였다.
그러나 최근 보건당국이 CSO 위탁계약 현황에 대한 고강도 실태조사에 착수하면서 업계의 오랜 관행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정부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유통망 말단의 재위탁 벤더에서 리베이트 사고가 터지더라도 그 책임의 종착지는 결국 원 제약사라는 점이다.
이제 법적 제재를 피하기 위해 서류함에 위탁계약서 몇 장, 형식적인 준법경영 가이드라인을 넣어두는 식의 '방어적 껍데기'로는 버티기 어렵다는 얘기다.
주목할 만한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이음메디컬 등 대형 법인형 CSO들이 'CSO Korea'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을 전면에 내세우며 수수료 정산과 영업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파트너들이 컴플라이언스를 준수하며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자동 정산 기능과 영업 지원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하며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그동안 음지에 머물렀던 영역을 양지화하여, 제약사가 상시로 위탁 영업의 청렴성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취지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이러한 흐름이 대형 CSO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통 제약사들까지 컴플라이언스(CP) 관리 기능을 장착하며 직접 무대 위로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일동그룹의 경우, 수십 년간 쌓아온 내부 CP 실무 노하우를 바탕으로 'CPLINK'라는 독자적인 플랫폼을 고도화해 운영 중이다. 이는 단순한 내부 통제를 넘어 1인 CSO나 법인 CSO, 그리고 다른 제약사들까지 가입시켜 지출보고서 작성과 현장형 CP 교육, 실무 컨설팅을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진화했다. 전통 제약사가 직접 '준법 생태계의 공급자'를 자처하고 나선 셈이다.
대형 전통 제약사들이 비용 절감과 영업 효율화를 위해 잇따라 일부 품목이나 의원급 영업을 CSO 체제로 전환하거나 검토 중인 상황에서, 이제 '준법 시스템'의 유무는 단순한 옵션이 아닌 생존 조건이 됐다.
그러나 시스템의 고도화보다 더 시급한 것은 CSO 업계의 뼈아픈 '자기반성'이다. 아무리 제약사가 준법경영을 강조해도 최전선에 선 CSO들이 "과거엔 다 이렇게 했다", "당장 매출을 내려면 어쩔 수 없다"며 음성적 리베이트라는 '손쉬운 마약'을 끊지 못한다면 백약이 무효하다.
이제 CSO 업계는 스스로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우리는 제약사의 정당한 마케팅 파트너로서 전문적인 학술 데이터와 영업력을 갖추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음성적 자금을 전달하는 '배달부' 수준에 머물러 있는가.
이제 준법은 제약사만의 숙제가 아니다. CSO 업계 역시 과거의 구태의연한 영업 방식을 스스로 도려내는 내부 개혁을 선행해야 할 때다. 이를 외면하고 규제의 눈을 속일 또 다른 우회 경로만 찾는다면, 결국 시장에서 철저히 도태되는 결말만 남았다.
'진짜 준법경영'은 이제 막을 올렸다. 겉포장만 바꾼 관행에 안주하는 제약사는 도태되고, 스스로 뼈를 깎는 자기반성을 통해 체질을 바꾸는 CSO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패러다임의 대전환기 속에서 일선 제약사 등 관련 업체들이 단순 서류상 변화로 그칠 지 뼈를 깎는 체질 개선을 보여줄 지 정부와 시장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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