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마주하게 되는 이 평범한 질문 앞에서, 나는 멈칫하곤 한다. 머릿속에 순식간에 수많은 모습이 스쳐 지나가기 때문이다.
밤공기를 맞으며 멍하니 산책하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에 빠지는 것, 서점에서 우연히 마음에 쏙 드는 문장을 발견하고 온종일 대단한 보물이라도 찾은 듯 설레하는 것, 문구점에 가서 새 공책과 사각거리는 필기구를 만지작거리는 것, 혹은 주말 내내 침대에 누워 고양이 릴스를 보며 귀여워하는 것까지.
하지만 내 안의 그 수많은 '진짜 좋아함'의 목록들은 입 밖으로 나오기 전, 보이지 않는 엄격한 서류 면접을 거친다. '시나 산책은 너무 진지하고 지루해 보이지 않을까?', '릴스 보기는 제대로 된 취미가 아닌 것 같은데', '한국무용이나 바이올린은 유난스러워 보일지도 몰라.' 결국 스스로 수많은 취향을 '탈락'시키고 난 뒤, 가장 안전하고 무난한 선택을 한다.
"아, 저 그냥 기타 치는 거 좋아해요."
사실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내 마음을 눈치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릴 때까지만 해도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소중한 것을 소중하다고 말하는 데 단 한 뼘의 망설임도 없었다. 고래들을 살리겠다며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웃는고래 캠페인'의 블로그와 이야기를 직접 디자인하던 초등학교 시절이 그랬다. 내가 꾹꾹 눌러 쓴 시와 글들을 길게 이어 붙여 사진으로 남기고,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친구들에게 "이것 좀 읽어봐 줄래?" 하며 환하게 웃으며 건네곤 했다.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도 참 거침이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날에는 학년 전체 친구들 100여 명에게 한 명 한 명 각기 다른 추억을 담아 다섯 줄이 넘는 다정한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마음을 다 꺼내 놓으면 유난 떤다고 비웃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나 눈치는 없었다. 그저 이렇게 만나게 된 사람들이 소중했고, 삐뚤빼뚤할지언정 내 안의 다채로운 색깔들을 세상에 꺼내 놓는 것이 당연하고 자랑스러웠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조금씩 나이가 들고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이면서부터, 이 당당했던 마음에 묘한 어색함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 사이에는 적당히 세련되고, 적당히 잘 놀고, 결코 너무 진지해지지는 않는 '쿨함'이 미덕이 된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내 진짜 좋아함의 영역을 있는 그대로 꺼내 놓는 일이 어딘지 모르게 멋쩍어졌다.
평소 연구실에서 인턴을 하며 도통 무슨 뜻인지 몰라 헤매던 개념이 수업 시간에 다시 등장해 비로소 이해가 갈 때, 혹은 새로 산 공책에 나만의 방식으로 예쁘게 필기를 정리할 때 찾아오는 순수한 즐거움 같은 것들 말이다. 나 역시 싫어하는 과목 앞에서는 꾸벅꾸벅 졸기 일쑤인 학생이지만, 문득 찾아오는 성장하는 순간에 "공부하는 거 조금 재미있는데?" 라고 눈을 반짝였다간 순식간에 분위기를 다큐로 만드는 지루한 사람이 될까 봐 지레 입을 닫고 만다.
"나 주말에 누워서 고양이 릴스만 봤잖아" 같은 가볍고 무난한 일상은 쉽게 공유하면서도, 정작 나를 가장 설레게 만드는 진짜 '잼얘'들은 입안에서만 맴돈다. 평소 관심 있던 AI 스터디를 준비하느라 밤을 지새운 일, 머릿속으로 새로운 행사를 멋지게 기획해 보며 가슴이 뛰었던 순간, 소설의 결말 뒤편을 혼자 진지하게 상상해 보거나 타인과 깊은 가치관에 대해 대화를 나눈 기억들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참 소소하거나 혹은 '왜 이렇게까지 피곤하게 사냐'며 유난스럽게 보일지 모르는 나의 꿈과 철학적 사색들. 일만 좋아하는 지루한 사람이 될까 봐, 혹은 내 진심이 가볍게 치부될까 봐 지레 겁을 먹고 스스로를 '적당히 쿨하고 무난한 사람'이라는 틀에 가둬두는 것이다.
그렇게 내 안의 소중한 진심들을 '오글거림'이라는 말 뒤에 꼭꼭 숨겨두던 어느 날이었다. 얼마 전 처음으로 썼던 칼럼에 대해 한 후배로부터 글이 참 좋다는 과분한 칭찬을 들었다. 기쁜 마음이 차올랐지만, 이내 밀려오는 쑥스러움에 나도 모르게 방어 기제가 작동했다. "내가 좋아하는 칭찬이네. 근데 처음 써본 칼럼이라 말투랑 내용이 너무 오글거리지? 고마워"
내 손으로 먼저 내 글을 깎아내리며 민망한 웃음을 짓자, 후배는 단호하면서도 진심 어린 어조로 나를 만류했다. "놉놉, 선배. 오글거린다는 말은 금지해야 돼요. 그건 오글거리는 게 아니라, 그저 감성인 걸요"
그 한마디에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진지함과 순수한 열정을 우리는 언제부터 '오글거림'이라고 부르게 된 것일까? 연애나 미팅, 고양이 릴스 같은 가벼운 일상은 누구나 쉽게 공유하면서도, 왜 우리는 진짜 나를 설레게 하는 비전이나 철학적인 사색 앞에서는 입을 닫게 될까.
물론 모든 사람이 똑같은 주제에 가슴이 뛸 리는 없다. 저마다 몰입하는 영역과 흥미의 주파수는 다 다르니까. 다만 내가 의문을 품은 것은, 왜 유독 '진지함'이 필요한 영역만큼은 유독 눈치를 보게 되는지였다.
어쩌면 그것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느낄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환경에서 누군가 미래에 대한 뚜렷한 설계나 비전을 공유하는 행위는, 의도치 않게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이만큼 준비하고 고민했는데 당신은 어떠냐'는 무언의 압박과 자극으로 다가갈 수 있다.
마치 모두가 공부를 잘하지만 혹시 결과가 안 좋을 수도 있다는 불안 때문에 '나 공부 별로 안 했어'라고 일종의 방어막을 치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이미 저마다의 생각과 가치관이 굳어진 대학 사회에서 너무 진지하고 이질적인 색깔을 드러내는 것은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부담을 준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내 꿈이나 사색을 말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오글거림'이 이성이 아닌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기 때문'이다.
집단 안에서 유난스럽거나 튀는 사람으로 분류되지 않고 안전하게 연결되기 위해, 적당히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결코 선을 넘지 않는 '쿨함'은 우리가 상처받지 않고 매끄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돕는 훌륭한 소재가 되어준다. 다만, 그 안전함에 길들여지는 동안 우리는 가끔 서로의 내면에 숨겨진 진짜 매력적인 이야기들을 들어볼 기회를 조금씩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막상 조심스럽게 내 진짜 '잼얘'들을 꺼냈을 때, 생각보다 나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고 좋아해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 역시 타인의 깊은 취향을 가만히 듣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자기가 정말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행복한 에너지가 번지고,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사실 한 사람의 취향과 가치관만큼 그 인간이라는 존재를 깊이 있게 보여주는 이야기도 없다.
물론 나라고 해서 매일 밤낮으로 이런 진지한 이야기만 붙들고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고양이 릴스를 보며 귀여워하는 시간도 나에겐 소중한 취미다.
다만, 남들이 정해둔 쿨함의 기준에 맞추느라 내 진짜 관심사들을 스스로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을 뿐이다. 가끔은 조금 촌스럽고 진지할지언정, 눈치 보지 않고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꺼내 놓는 단단함을 유지하고 싶다.
다음번에 누군가 내게 "취미가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이제는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수하지만 진짜 내 이야기를 건네보려 한다. "저는 밤공기를 맞으며 시적인 상상을 하고, 예쁜 필기구 모으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이번엔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다정한 눈빛으로 되물어보고 싶다.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무난한 사람이 되는 매뉴얼은 잠시 접어둔 채, 온전히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진짜 취미'는 무엇이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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